신선한 바람이 분다. 여름 같은 가을의 연속이다. 하지만 자연의 변화는 미동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낙엽들이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다. 자신의 생각 속에서. 이처럼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요, 사유思惟의 계절인 것이다. 가을바람은 늘 귓가를 스치며 붉게 물들인다. 마치 단풍처럼 말이다. 가을 속에는 예전부터 사상가들의 삶과 시간 이었다. 차를 마시고 책을 보았다. 낙엽을 밟으며 산책을 떠나곤 했다. 은둔의 시간이다. 때론 긴 여행의 길을 향했다. 보이지 않는 사상의 정수리를 향해 영원한 항해를 떠나는 것이다. 시대를 앞선 사상가는 늘
하루, 하루 차를 달이고 마시는 나날들이다. 필상에 앉아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어떤 날은 고향의 집처럼 문 닫고 하루 종일 잠을 잔다. 근심 걱정 모두 털어버리는 홀가분한 마음이다. 하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의 삶을 되새겨 보기도 한다. 작고 작은 분쟁들은 또 다른 암투로 번지고, 그 여파에 치이고 치인 것이라고 답한다. 혹자는 술로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제일이고, 독서와 글씨 쓰는 일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 다독인다. 젊은 혈기에 앞장서서 금이니 옥이니 구별 못하고 날뛰었던 것, 이제야 생각하니 후회스럽기 그지없다.유중교는
연잎이 즐비한 저수지. 시원한 물줄기가 얼굴을 때린다. 소나기. 짧고 강력한 여운, 뜨거운 여름날의 청량수다. 더위에 지친 나뭇잎들이 생기를 얻는다. 비단 사람만이 더운 것은 아닐 것이다. 동물이며 식물을 포함한 자연의 모든 것 또한 그럴 것이다. 팔딱팔딱 개구리는 뛰어 올라 저수지로 뛰어 든다. 저수지의 물고기도 수면 위로 날아오른다. 신이 난 모양이다. 뜨거운 여름인데도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햇살을 피하기 위한 파라솔이 소나기까지 막아준다. 아름드리 오동나무 밑. 커다란 키. 숫한 세월을 마주한 듬직한 나무다.오동나무 잎사귀가
세상이 불타고 있다. 극한의 더위와 극한의 추위가 수시로 몰려오고 있고, 세상 곳곳은 코로나 19로 인해 아사餓死직전이다. 소통과 교류는 멀리가고 통제와 단절만이 살길이라고 곳곳에서 외치고 있다. 격세지감이다. 글로벌네트워크를 통한 모든 만남이 단절되고 말았다. 초단위로 움직이던 세상이 마치 정지된 느낌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코로나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거라고. 처음엔 그말이 먼 나라의 이야기로 느껴졌다.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조금씩 단절된 세상의 고독과 고립에 대해 납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더욱 강팍해지고 바다의 부유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쏟아지는 ‘폭염暴炎’이다. 폭염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방법중 하나가 뜨거운 차를 마시는 일이다. 향을 사르고 탕관에 물을 올린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다. 어떤 차가 좋을까. 아무래도 여름을 식힐 수 있는 백차가 좋을 듯 하다. 청량한 바람을 담은듯한 백차에 어울릴법한 다관은 백자일 듯 하다. 백차의 색을 감상할 수 있는 유리 숙우와 백자 찻잔을 준비한다. 어느덧 탕관에서 작은 소리가 생겨난다. 마치 물고기의 눈 같은 물기포가 생기고 아주 미세하게 물끓는 소리가 난다.첫 번째 물이 끓는 ‘일비一沸’. 물끓는
어렸을 적부터 공부를 하며 오로지 입신양명을 쫒아가던 선비가 있었다. 젊은 날 과거에 급제한 그는 나날이 그 품계가 높아졌다. 그의 권력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자연스럽게 그에게 입신양명을 위한 청탁이 줄을 이었다. 어느날 그에게 친분이 있던 한사람이 그가 좋아하는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느 한적한 고을의 현령이 되고 싶다는 청탁을 하러 온 것이다.그는 유능하지는 않았지만 덕망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사실 그 청탁을 거절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청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가 좋아하는 죽로차를 직접 만들어 해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매우 중요한 철학적 명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지향하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순간 매순간 어떤 대상에 격렬한 분노를 폭발시킨다. 언어의 폭력, 권위의 폭력, 육체적 폭력등 매우 다양한 양식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사회적 법규의 처벌을 받는다. 대상화된 분노는 법적인 제약으로 귀결되지만 대상화되지 않은 분노는 자신을 번뇌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그 어떤 제약에도 빠지지 않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자연에는 주체하지 못해 격렬하게 분노로 치닫는 인간의 욕망을
모든 것은 변화한다. 시간도 자연도 인간도 시시각각 변화를 한다. 변화란 운동성이며 유동성을 뜻한다. 흐르는 물처럼 끝없이 운동을 한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아침에는 웃고 점심에는 찡그리고 저녁에는 분노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다고 한다. 시시각각 생각이 바뀌는 것을 이른바 번뇌라고 한다. 좋은 번뇌도 있고 좋지 않는 번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뇌의 궁극적인 현대적 표현은 스트레스다. 대부분의 인간이 시간과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양한 생각의 물결을 일으켜서 행동을 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이로울땐 즐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중 하나다. 즐거움은 인간에게 많은 것들을 선사한다.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즐거움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다. 먹는 즐거움, 보는 즐거움, 듣는 즐거움, 그리고 향을 맡는 즐거움, 대화를 하는 즐거움. 이렇듯 즐거움의 종류는 셀수도 없이 많다. 그 즐거움을 하나씩 선택해서 주기적으로 행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취미라고 한다.취미를 넘어선 경지를 우리는 벽癖이라고 한다. 주벽酒癖에 빠진사람, 서벽書癖에 빠진사람, 화벽畵癖에 빠진사람등 이른바 벽에 빠
진리에 목말라 목숨을 걸고 수행을 하던 한 사람이 진리를 깨우쳤다는 스승을 찾아갔다. 그는 다짜고짜 물었다.“이 세상을 살아갈 참 진리는 무엇입니까”“ 차나 한잔 하고 가게”“저는 한가하게 차를 마시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모든 이치를 꿰뚫는 참 지혜를 찾아왔으니. 그 답을 해주시기 바랍니다.”“차나 한잔 하고 가라니까”“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궁극의 참 지혜는 어디에 있습니까.”“그냥 차나 한잔하고 가게”그는 찻상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진리를 깨우쳤다는 스승옆에서 차 심부름를 하던 제자가 물었다.“스승님 왜 차나 한잔하라
어느곳에서 생긴 바람인가. 뻥뚫린 하늘에서 바람이 휙 지나가자. 꽃들이 우수수 흰눈처럼 떨어진다. 달빛아래 새들처럼 주절거리고, 하늘거리며 놀던 꽃잎들이 누구나 할 것없이 순서도 없이 소리없이 웃으며 진다. 봄이 이렇게 찬란하게 소리없이 진다. 권력은 10년을 가지 못하고(권불십년權不十年), 봄꽃은 열흘을 가지 못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잠깐 스쳐지나가는 봄 꽃도 이와같다. 봄 꽃들은 제 스스로 얼굴을 내밀지만 결코 다투지 않는다. 봄 꽃들은 또 다투지 않고 조용히 꽃비로 순서없이 내린다. 생과 사의 절묘한 교차가 자연스럽다
우리의 삶은 인연과 인연의 넓은 그물에 펼쳐져 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평소에 잘 살아야 해. 언제 어디서 어떤 인연으로 만날줄 모르니까.”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그 흔한 경고의 메시지를 일상에서 잃어버리고 산다. 혁신을 말하고 혁신을 모르고,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모르는 경우와 같다. 세상은 다채로운 인연의 그물로 엮여져 있다. 그속에서 투쟁과 번뇌와 고통을 삶속에 껴안으며 산다.그리고 그 인연의 그물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고통을 스트레스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합리화한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그런 당연한 인연의 그물로부터 해
밤새 비가 창문을 두드리고 바람이 건물사이를 흉폭하게 할퀴고 지나갔다. 비가 마르지 않는 땅 위로 만개한 백목련 꽃들이 흰 눈송이처럼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대지를 일깨우는 비가 내리면 바람결에 꽃을 피웠던 꽃들이 고개를 숙이고 대지로 돌아간다. 자고 일어나면 꽃은 피어있고 자고 일어나면 꽃은 어느덧 우리 곁을 떠나고 없다. 자연은 이렇듯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몸을 바꾼다. 자연의 변화는 세상 그 어느것도 해치지 않는 조화로움을 담고 있다. 순응과 역응의 절묘한 지혜를 지닌 것이 바로 자연이다. ‘조도현로鳥道玄路’. 현
꽃이 피면 봄인가. 아니다. 살랑이는 부드러운 바람이 코 끝에 나비처럼 다가오면 그때가 봄이다. 땅끝속에 숨어있던 실핏줄 같던 얼음들이 녹아 사라지고 하얀 백목련 노란 개나리가 하늘하늘 춤추면 우리는 지금 봄이 온줄 안다. 그러나 우리의 번뇌와 고뇌는 사라지지 않는다. 매일 매일 생과 사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며 힘겹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백척이나 되는 높은 대나무 끝에 매달린 그들의 삶에는 출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 크기만 다를 뿐 늘 공평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늘 내리막도 있다. 우리가 그걸 그때
행여나 하얀 솜털이 망가질까봐 조심히 물을 붓습니다. 보송보송한 잎사귀들이 물 위로 고스란히 떠올라 개완 뚜껑을 닫기도 조심스러운 차. 오늘은 특급 백모단입니다. 향 香-잎사귀의 시원한 싱그러움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박하향이 한 김 가시면 묵직한 수지의 향이 납니다. 이 기름진 나무의 향 역시 처음에는 신선하게 왔다가 나중에는 패티한 느낌만 남습니다. 마치 방안에서 감자를 찌고있는 것 같네요. 미味-거칠고 떫은 기운이 감도는 두터운 단맛입니다. 보
재미있는 차를 만났습니다. 암차의 향이 나면서 강한 신맛이 나는 이 차는 러시아와 터키 사이에 위치한 조지아라는 나라에서 재배된 홍차입니다. 조지아, 이름도 낯선 이나라가 중국과 인도, 스리랑카를 뒤잇는 주요 홍차 생산국가일 줄이야! 전 세계가 가장 오랜시간 사랑해온 음료, 역시 ‘차’구나, 다시금 고개를 끄덕여봅니다. 향 香-짙고 기름진 고소함에 강렬한 시큼함! 곧바로 무이산 수금귀가 떠올랐습니다. 점점 새콤함이 도드라지는데도 ‘어, 이것은 무슨 암차일까? 아니지 홍차인가?’ 의아하게 만들만큼 풍미가 강렬한 향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미뤄둔 생각들을 정리도 할 겸 괜히 종이를 꺼내서 끄적여보다 그만두고 개완을 꺼냈습니다. 찻잔이나 기울이다 여유가 생기면 그때 다시 하던가하지요. 올해도 끽다거 . 향 香-정말 감동적인 차향 입니다. 매우 기운찬 구수함속에서 새콤함이 퍼져 나옵니다. 그리고 다시 검은콩을 쪘을때 나는 그런 맑고 또렷한 단향으로 나타납니다. 포다를 거듭하며 사포닌의 단향이 점점 시원해지는 동안에도 고소한 향은 단단하게 지속됩니다. 미味-두터운 단맛에 신맛과 고소함이 아주 녹진합니다. 혀 양쪽에 침이 곧바
일본어를 전혀 모르니 드문드문 보이는 한자 간판 몇개에 의존해서 골목을 휘젓고 다닙니다. 그러다 들어온 반가운 그 한 글자, 차 茶 ! 차茶-센차 (일본 녹차)일본 나라현 아무개 골목의 낡은 차가게 구입 향香-평범한 센차 향입니다. 사실 센차를 많이 마셔본 경험이 없어서, 그냥 센차는 이런 맑은 미역 향 또는 이끼 향이 나는구나 합니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좀 지나니 젖은 찾잎에서 풀의 향긋함도 느껴집니다. 찻잎은 균일하지 못하고 큰 줄기나 지푸라기 같은 것도 섞여있지만, 이 정도 깔끔한 향이라면 맛도 크
처음 와 본 나라奈良의 겨울은 청명하고 온화합니다. 유유자적 거리를 걷다가 새우튀김과 우동 한 그릇을 싹싹 비운 뒤 온천물에 몸을 푹 담그고 나왔습니다. 머리를 말리면서 오늘 밤은 우롱차, 그 중에서도 수선을 마셔야지, 합니다. 그리고 이미 마음은 거기에 가있습니다. 향香-젖은 잎사귀의 두터운 화과향이 나를 반겨줍니다. 하지만 그 진득한 구수함에 속으면 안됩니다. 금새 탄배향이 몰려 올테니까요. 대신 찻물의 향은 수줍게 많은 것들을 품고 있네요. 그 어떤 것도 도드라지지 않지만 있을 건 다 있으니 뭔가 기대되는 향입니
강원도 속초에 여행 왔습니다. 아침 눈을 뜨자마자 커텐을 여니 유리창을 자욱하게 덮은 성에가 바깥의 온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차가 익숙하지 않을 나의 동행을 위해 가장 무난할 차로 골라왔습니다. 입에 맞아야 할텐데요. 향香-소나무들에 둘러싸여있는데, 방안에서도 나무향이 솔솔 피어나고 있습니다. 향이 은은합니다. 저 멀리 바닷바람에 젖은 굽어진 소나무나, 파도에 닳아가는 서글픈 바위의 아득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_ 미味보이차 특유의 까끌한 느낌 위로 미끄덩한 막이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