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와 본 나라奈良의 겨울은 청명하고 온화합니다. 유유자적 거리를 걷다가 새우튀김과 우동 한 그릇을 싹싹 비운 뒤 온천물에 몸을 푹 담그고 나왔습니다. 머리를 말리면서 오늘 밤은 우롱차, 그 중에서도 수선을 마셔야지, 합니다. 그리고 이미 마음은 거기에 가있습니다.

향香-

젖은 잎사귀의 두터운 화과향이 나를 반겨줍니다. 하지만 그 진득한 구수함에 속으면 안됩니다. 금새 탄배향이 몰려 올테니까요. 대신 찻물의 향은 수줍게 많은 것들을 품고 있네요. 그 어떤 것도 도드라지지 않지만 있을 건 다 있으니 뭔가 기대되는 향입니다.

차茶-

한번 윤차를 했는데도 첫 두세포는 맛이 거슬립니다. 시큼하고 꼬소하고 스모키한 맛이 혼잡하게 다가오니 언짢게 느껴지기도합니다. 입에 한참물고 숙성이라도 시켜서 삼켜야하나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네포째부터 드러나는 본성은 아주 말끔합니다. 특히 혀 위에 점잖게 남는 밀키함이 참 인상적입니다. 과하지 않은 무게감과 수선 특유의 맑음으로 차분한 기운을 줍니다. 신기하네요~ 이 장소 이 날씨에 너무도 딱 맞는 차가 우려진 것 같습니다. 청명하게 그리고 온화하게.

오늘은 함께 자리해 주신 선생님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략 열다섯포는 내리 마셨습니다. 그럼에도 이 점잖은 수선은 끝없이 맑은맛을 내어주고 있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엽저는 이리 뜯기고 저리 찢겨서 못생겼지만 유난히 윤기가 흐릅니다. 차가 주는 마음이 빛이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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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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