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 학술세미나에 관련된 지상토론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본 지상토론에 참여해주신 남도정통제다 다도보존연구소 최성민 소장, 순천대학교 이욱교수, 정영식 교수에게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주>

명나라 초배법(炒焙法)과 한국 전통차, 타당한 콜라보일까?

-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전통제다 자료 DB화’ 프로젝트 논란에 부쳐

글 최성민.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생활예절다도학 과 초빙교수. 철학박사

‘전통제다 자료 DB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이욱 원장 및 그의 동료들의 반론이 더 이상 없기에 이번 논쟁의 마무리 삼아, 그리고 이욱 원장과 지리산권문화연구원이 추진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 관련 토의에 내가 달리 조언할 기회가 없을 것이기에, 한국 전통차의 발전과 활성화를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다른 차인이나 차학자들이 하지 않거나 감히 하지 못하는 학술적 조언을 상세히 하고자 한다. 혹시라도 훗날 ‘전통제다 DB화’ 프로젝트 결과평가에서 목표설정이나 연구방법론이 문제되어 불행한 사태가 생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다.

전통차 살리기와 “기호음료 전통차 입지 마련”은 자가당착

모름지기 차란 무엇인가, 왜 차를 마시는가, 좋은 차란 어떤 차이며 그 본질은 무엇인가, 이욱 원장과 위 프로젝트 추진팀의 바람대로 어떻게 전통차의 장점을 살려 대표적 기호식품의 입지를 마련하느냐 등등을 생각할 때, 전통제다에 관한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오늘날 한국 차가 처한 현실을 면밀히 분석해 봐야 할 것이다. 이욱 원장의 진단이 아니더라도 한국 차는 지금 서양 커피와 중국 보이차에 밀려 질식상태에 있다. 그렇다면 한국 차가 커피와 보이차에 밀리는 원인을 생각해 봐야 할 것 아닌가. 이욱 원장은 이번 학술대회 개최 목적 중 하나가 “한국 전통차가 커피와 같은 수입차에 밀리는 이유와 그 대책을 발표한다”는 것이라고 하였으나, 커피가 (수입)차도 아닐뿐더러 학술대회 발표문 어디에도 전통차가 그 (수입)차에 밀리는 이유와 대책은 없었다. 이욱 원장과 프로젝트 담당팀이 문제는 인지하고 있으나 아직 그 해답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된다.

커피의 특징은 쓰고 강한 맛과 향이다. 보이차의 특징은 초가지붕 ‘썩은새’ 비슷한 독특한 냄새와 “녹차는 냉하고 보이차는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근거없는 선전문구의 덕을 본다는 것이다. 즉 커피와 보이차가 한국 전통차를 누르는 원인 또는 특성은 강한 ‘기호성’과 그것을 활용한 선전문구이다. 사람들이 녹차는 쓰고 떫어서 싫다고 하면서도 녹차보다 훨씬 쓴맛이 강한 아메리카노와 같은 커피에 쏠리고, 녹차의 꽃다운 진향(眞香,芳香)과는 퍽 다른 냄새가 나는 보이차를 맹종하는 데서는 맛에 대한 이중성 안에 도사린 맹목적 유행 좇기 성향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전통차 진작을 위해서는 커피나 보이차와 같은 ‘기호음료’가 아닌 ‘심신건강 수양음료’로서의 녹차의 차별성을 부각시켜 그것이 녹차유행의 단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욱 원장이 “전통차의 장점을 살려 대표적 기호식품의 입지를 마련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전통차가 커피와 보이차에 밀리는 원인이 전통차를 ‘기호식품’ 수준으로 격하시켜 경쟁에서 낙오되게 한 것인데 전통차의 ‘기호식품으로서 입지’를 마련하겠는 것은 전통차의 무덤을 더 깊이 파겠다는 일이 아닐까?

‘전통제다 자료 DB화’ 프로젝트, 주춧돌부터 다시 놔야

그런데 차를 상업적 대상으로 생각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이 순수한 학구적 자세라고 할 수는 없다. “전통차가 수입차에 밀리는 이유와 대책 마련”이라든지 “전통차를 대표적인 기호음료의 입지로...”라는 구호의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전통제다 DB화’ 프로젝트는 한편으로 학문의 이름을 빌려 ‘차 상업주의’에 부역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차학이나 차문화의 본령이 차를 얼마나 많이 팔고 마시게 하느냐의 명제에 갇히는 모습은 학문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초라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런 프로젝트에 국립대 학술연구원의 이름이 실려있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가 순수한 학술적 전문성 지향을 도외시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싫다. 이런 우려는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전통제다 DB화’ 프로젝트 책임자들이 대부분 전통차에 대한 전문성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사실에서 더욱 커진다. 이들에게 전통차에 관한 학술적이고 현장성 있는 전문적 조언이 필요한 이유이다.

‘전통제다 자료 DB화’ 목적은 두 말할 것 없이 이욱 원장 말대로 전통 제다의 장점을 살려 오늘에 활용하고 내일에 전승시키자는 것일 터이다. 그렇다면 우선 전통제다가 무엇인지, 그 정체성에 대한 확인과 규명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 바탕 위에서 DB화 자료로서 채택할 전통 제다의 특장점이 무엇인지를 가려내는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욱 원장은 전에 “기록만 하고 평가는 하지 않는다”는 DB화 작업 원칙을 밝힌 바 있다. 또 이번 ‘전통차의 현대적 활용’이라는 학술대회 개최 취지 설명에서는 “우리의 연구결과가 현장성이나 실용성이 없어 널리 활용되지 못하고 박제화된 지식의 집적에 그치는 것을 우려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내 글에 대한 반론에서 “유명 제다인들..., 척박한 한국 전통차 제다 현장에서 힘들게 노력하고 계시는 분들"이라고 하였다. 또 DB화 작업의 근본 목적을 “한국 전통차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재해석되어 우리 사회에서 널리 음용되고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우리 전통차의 우수성을 인정받도록 하는 데 있다.”고도 하였다.

‘전통제다 자료 데이터베이스화’ 총책인 이욱 원장의 이러저러한 말은 지리산권문화연구원이 이 프로젝트 수행에 있어서 현행 “유명 제다인들”의 제다 양상을 ‘그 가치가 재해석되어야 할 전통제다’라고 보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박제된 지식의 집적’이어서 현장성이나 실용성이 없을 것을 우려하여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학술대회를 열었고 앞으로도 열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욱 원장의 앞뒤 상충되는 듯한 발언은 이 프로젝트의 기본틀이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비전문가들이어서 애초에 기본틀을 확고하게 세우지 못하고 도중에 문제를 깨달아 보완하겠다는 자세를 탓할 수는 없겠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여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지리산권문화연구원의 전통제다 기록화 사업의 기본틀은 흔들리면 보완하여 고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첨부터 단추가 잘못 끼인 것이니 주춧돌부터 갈아야 할 정도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와 근거를 말하겠다.

오늘날 한국 전통차의 불행은 어디에서 시작됐는가?

이욱 원장 말대로 “척박한 한국 전통차 제다 현장에서 힘들게 노력하고 계시는 ‘유명 제다인들’”이 실행하고 있는 “해석하여 활용할 가치가 있는” 현행 제다는 대부분 ‘덖음제다(炒焙法)’일 것이다. 최근 김대호 연구원이 녹화하여 페이스북에 올린 제다모습도 모두 덖음제다이다. 초배법은 초의선사가 『동다송』과 『다신전』에 연거푸 소개한 명나라 제다법임을 두 책을 면밀히 읽은 사람이라면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최근에 ‘초의차’가 한국 전통차의 전형인 것인 양 내세우는 이들이 이른바 ‘초의제다법’ 또는 한국 전통제다법인 것처럼 포장하여 선전하고, 이욱 교수가 말한 이른바 “유명 제다인”들이 문제의식 없이 따라 하게 되면서 확산되게 된 것이다. 나는 그것이 명나라 제다법이기에 한국 전통 제다법일 수 없다는 사실을 그 초배법이 명나라에서 부각된 연유 및 이욱 원장이 말한 “유명 제다인”의 대표격이자 대표적인 ‘초의차’ 옹호인이 내세우는 ‘초의제다법’ 또는 ‘초의차’의 황당한 원리를 근거로써 설명해 보겠다.

우선, 나는 위에 말한 ‘“유명 제다인”’의 대표격이자 대표적인 ‘초의차’ 옹호인이 초의 제자 응송스님으로부터 ‘다도전게’라는 걸 받아 초의 다맥을 ‘“유일하게” 잇고 있다고 자처하는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이라고 생각한다. 그 자신도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는 것 같고 거기에 아직 아무도 이의제기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를 ’초의차‘ 옹호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나 실례는 아닐 것 같다. 박소장은 “난만했던 고려시대 차문화가 조선시대에 민멸된 것을 초의가 중흥시켰다”는 주장을 강하게 해 왔다. 그는 초의 제다법의 특징으로 ’온돌방 말리기‘와 강한 비비기를 든다. 또 “초의차의 장점이 깊은 비비기로 엽록소가 차탕에 산출돼 맑고 시원하다”고도 했다. 계명대 목요철학원 주최 ‘2020년 하반기 차문화학술심포지움 <차나무, 꽃과 열매가 만나다>’에서 그가 한 말이다. 그러나 박동춘 소장은 최근에는 엽록소가 들어있는 차의 진액을 짜낸 차를 만들어서 고려시대 ‘백차’를 복원했다고 주장하고, 또 고려청자 다기를 복원했다고 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나는 박동춘 소장의 여러 주장이 학술적인 근거가 없이 상충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런 언행 탓에 그의 ‘초의차’ 관련 주장이나 제다이론의 신뢰성이 매우 적어 보인다.

‘온돌방 말리기’는 초의 당시에 마땅한 마무리 건조 시설이 없었기에 편의상 사용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번잡하지만 정교한 홍배법(烘焙法)과 비교하면 ‘온돌 건조’ 방식을 특징이라고 말하기는 옹색하다. 깊고 강한 비비기로 엽록소가 (차탕에) 산출된다는 말은 엽록소가 물에 녹지 않음을 모르고 하는 억지 주장이다. 또 강한 비비기는 엽록소 안에 든 티폴리페놀산화효소를 자극하여 폴리네놀 산화를 앞당김으로써 폴리페놀 보전이 일차적 목적인 녹차의 질을 떨어뜨릴 뿐이다.

이른바 ‘유명 제다인’들의 제다 및 차 이론에 대한 무지 또는 착각

이런 정도의 모습이 이욱 원장이 말하는 이른바 “유명 제다인” 또는 차학자들의 전통차와 전통제다에 관한 인식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나는 “박제화된 지식의 집적”을 걱정하는 이욱 원장께서는 “유명 제다인”들을 무조건 숭상하는 듯한 자세를 취할 것이 아니라 제발 학자로서의 비판정신과 전통제다 디비화작업의 책임자로서 “유명 제다인들”의 진술에 대한 변별력을 갖기를 바란다. 박동춘 소장의 주장이 학술적 근거가 없음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겠다.

박동춘 소장은 초의차의 특성이 난향이 나는 것이라고 위와 같이 주장하면서, 차가 허브과이니 난향은 차의 허브향을 말한다고 하였다. 초의가 쓴 『다신전』과 『동다송』에 ‘제다’의 어려움을 말하면서 ‘차의 4향’을 소개하였다. 그 4향은 純香, 淸香, 蘭香, 眞香이다. 순향은 안팎이 같은 향, 청향은 타지도 설익지도 않은 향, 난향은 불기운이 고르게 든 향, 진향은 우전 찻잎이 지닌 싱그러운 향이라고 했다. 단지 ‘유명 제다인’뿐만 아니라 다원에서 4계절 차의 생태를 관찰하며 유의깊게 제다를 하는 현장 제다전문인이라면 ‘차의 4향’의 의미를 몸으로 감지하여 잘 알 것이다. 즉 초의나 장원이 제다에 앞서 4향을 말하는 것은 향과 제다의 관계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4향에 대한 설명을 보면 순향에서 난향까지는 특정한 향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안팎’ ‘설익거나 타지 않은’ ‘불기운이 고루게 든’이라는 말로써 제다에서 불기운 조절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즉 너무 세거나 약하지 않은 불기운으로 적당한 시간 동안 살청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전 찻잎이 지닌 싱그러운 향”이라는 진향에 대한 설명은 제다와 무관함을 알 수 있다. 향(香) 앞에 진(眞)자가 붙은 것은 진향이야말로 진정한 차의 향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4향’의 의미는 제다에 있어서 진향을 잘 보전시키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진향은 곧 우전 찻잎이 갖춘 다신(茶神)으로서 녹향을 말한다. 제다인들만이 알 수 있듯이, 우전 생찻잎을 따서 한 웅큼 맡아보면 추사가 말한 “심폐를 시원하게 하는” 향이 몸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학술적으로 녹향은 ‘청엽알코올’이라고 하는데, 피톤치드 효능의 일종으로서 스트레스를 없애주고 심신의 활력을 증진시켜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차의 3대 성분인 티폴리페놀·테아닌·카페인이 발휘하는 수양다도의 기능이 이 녹향에 함축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선현들이 남긴 차시(茶詩)들에도 이 녹향을 칭송하는 문구들이 많이 눈에 띈다.

전통제다 비전문인들에 의한 ‘전통제다 DB화’ 프로젝트 수행의 문제점

이욱 원장은 “전통차의 현대적 활용이 제다뿐인가?”라고 하였다. 이 교수가 제다와 4향의 이런 중요한 관계를 알았다면 ‘전통 제다 자료 디비화’ 프로젝트를 이끄는 총책임자로서 결코 저토록 무모하고 무책임한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완제차에서 녹향을 살리는 전통 제다의 중요함, 그리고 한국 전통 제다를 왜곡하고 오염시켜서 제다를 비롯한 한국 차문화를 뒤처지게 한 원인이 ‘덖음제다’라는 사실을 학술적 근거에 기반해 설명하겠다.

완제차 또는 그 차탕에서 진향이 난다 함은 완제된 차에 녹향이 잘 보전돼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차의 4향’의 견지에서 제다가 이상적으로 잘 되었다는 말이다. 초의가 『동다송』 제60행 주석에서 유일하게 창의적으로 “評曰 採盡其妙~ ... 茶道盡矣”라고 하여 ‘다도’를 규정한 것은 제다에서 진향을 잘 보전하여 완제차에 담고, 그것을 차탕에 정상적으로(中·正하게) 발현시키는 방법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향 곧 녹향을 차에 잘 보전시키는 제다법은 어떤 것인가?

녹향 곧 청엽알코올은 비등점이 섭씨 157도이다. 바로 여기에 녹향을 보전하느냐 못하느냐의 제다 포인트가 있다. 여기에서 녹향을 보전하는 관건이 제다(살청) 공정에서 찻잎의 온도가 섭씨 157도까지 올라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임을 똑똑한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제다가 철저하게 증배법(蒸焙法)을 채택해 오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욱 원장은 “일본 제다기법 참고”를 말했는데, 이런 사실을 알고 말했는지 궁금하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 전통제다사상 중요한 사실을 소개하겠다.

우선 제다사 및 그것과 궤를 함께 하며 다기를 위주로 했던 도예사의 요점을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제다사는 다기를 중시했던 도예사와 함께 중국과 한국이 유사하게 흘러왔다. 『다경』 제4항(‘찻그릇’)을 보면 떡차 제다가 성행했던 당나라때 청자 다기를 선호한 이유가 있다. 당나라 때 차의 주류는 떡차였다. 그런데 녹차로서의 차의 본질 구현을 지향하면서 보관 및 운반 편의상 떡차 형태로 만들었으나 건조과정의 미흡으로 산화차가 돼 버렸다. 녹차의 녹색 탕색을 기대했던 당시 차인들은 변질돼 ‘쉰 차’가 돼버린 떡차의 황적갈색 탕색이 조금이라도 녹색으로 보이도록 형주요의 백자보다 월주요 청자를 선호했다. 즉 청자 다기가 이상적이어서가 아니라 녹차 탕색 갈구 의지가 거기에 담겨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근거로 당대의 산화된 녹차로서의 떡차 음다 양태는 청자 다기 위주의 도예문화와 함께 고려로 이입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녹색 차탕색이 변하지 않는 잎녹차와 그 제다법인 초배법이 유행한 명나라때는 녹색 차탕색을 그대로 받쳐주는 백자 다기가 선호되면서 백자 위주의 도예문화가 펼쳐졌고, 그것이 그대로 ‘조선 백자’ 문화로 이입돼 이행되었다. 이런 사실은 잎녹차 시대인 오늘날 ‘산화 변질된 녹차’라고 할 수 있는 당나라 떡차의 아류인 청태전 복원이 얼마나 학술적으로 무지한 짓이며, 박동춘 소장이 잎녹차인 ‘초의차’의 “엽록소가 산출된 차탕”을 ‘초의차’의 특성으로 주장하면서 동시에 엽록소를 짜낸 ‘백차 복원’과 함께 고려청자 다기를 복원했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 학술적으로나 제다사상으로 얼마나 허무맹랑한 지 가늠할 수 있다.

다산이 창안한 구증구포·삼증삼쇄가 진정한 한국 전통제다인 이유

“제다사는 다기를 중시했던 도예사와 함께 중국과 한국이 유사하게 흘러왔다”는 관점에서 파악할 때, 위에 소개하겠다고 말한 ‘중요한 사실’은, 중국 송나라에서 연고차 제다가 성행할 때 한국 조선에서 다산이 강진 다산의 야생다원 현장 제다 전문가로서 구증구포 단차(團茶) 제다는 물론 송나라 연고차 제다의 단점을 보완한 뛰어난 연고차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삼증삼쇄 차떡(茶騈)’을 제다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다산이 1830년 강진 제자 이시헌에게 보낸 차떡 제다 지시 요점은 “... 지난 번 보낸 차는 거칠어서 문제가 있었네. 우전 찻잎을 세 번 찌고 말려서 곱게 갈아 돌샘물로 반죽하여 떡처럼 만들어야 죽처럼 마실 수 있다네”이다. 이때 송나라에서 임금께 바친 공납차로서 ‘용단승설’과 같은 연고차 제다법은, 찻잎을 쪄서 진액을 짜내고 말려서 곱게 갈아 떡처럼 만든 것이었다. 다산은 송대 연고차처럼 진액을 짜내는 일이 번거롭고 차의 본성을 잃게 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보완 대체할 목적으로서 삼증삼쇄로 차의 효능을 100% 활용하는 ‘다산 차떡’을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명나라때 잎녹차 제조법이 성행하게 된 유래는, 명태조 주원장이 이런 연고차 제다의 민폐를 없애기 위해 초배법을 쓰도록 칙령을 내린 것이었다. 초배법은 육우의 『다경』에 나오듯이 일찍이 대중지성이 만들어낸 제다법이다. 『다신전』의 원전인 장원의 『다록』에도 그것을 ‘초의 제다법’처럼 누가 창안한 제다법이라고 하지 않았다. 또 『다신전』과 『동다송』에서 초의도 분명히 “옛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그것을 소개한다고 했지 초의 자신이 고안해 낸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주원장이 초배법을 실행하도록 칙령을 내린 것은 연고차 제다의 민폐를 덜어주기 위해 쉬운 제다법으로서 초배법을 말한 것이지 초배법이 연고차를 만든 증배법보다 좋은 차를 만드는 제다법이기 때문이라는 흔적이나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송대 연고차 제다의 심각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등장한 초배법과 그에 의한 녹색 차탕의 ‘초의차’를 한국 전통제다와 전통차의 전형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박동춘 소장이 찻잎의 진액을 다 짜낸 송대 연고차 제다법에 의거하여(박소장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 아류인 ‘고려 단차’와 고려청자 다기를 복원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내가 이욱 원장 더러 “유명 제다인” 맹목적 추종을 지양하고 학자적 비판의식을 갖고 그들을 분별하여 바라보기를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덖음제다와 다산의 구증구포·삼증삼쇄 증배제다 비교

여기서 다산의 구증구포 단차 제다와 삼증삼쇄 차떡 제다를 실례(實例)로 하여 이른바 ‘초의 제다법’으로고 주장되고 있는 ‘덖음제다’가 왜 한국 전통차와 전통제다를 비롯한 한국 차문화를 후퇴시키고 있는지를 정리해 보자. 다산의 구증구포 단차 제다는 물론 삼증삼쇄 차떡 제다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이 최상급의 일본 말차를 생산하는 일본 증배 제다의 장점을 뛰어넘는 증배제다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옛 선현 차인들의 이상인 녹향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전하는 녹차 제다법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녹향 보전과 관련하여 ‘초의 제다법’이라고 하는 초배법의 문제를 들어보자.

이욱 원장이 말하는 “유명 제다인들‘의 초배법에 있어서 차를 덖는 솥의 온도는 섭씨 300도에서 400도에 이른다. 그들은 그 높은 온도에서 덖는 것을 무용담처럼 자랑하기도 한다. 얼마전 지리산권문화연구원 프로젝트 책임자의 한 사람인 김대호 연구원이 선암사차를 페이스북에 소개하면서 “볶은 차”라고 한 기억이 있다. 솥온도가 오죽하면 깨를 볶듯이 볶았다고 하겠는가. 이렇게 센 온도로 차를 덖는 초배법이 유행하면서 “한국 차의 특성은 고소하다”라는 말과 함께 차에서 녹향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사라지게 되었다. 300~400도에서는 찻잎이 솥바닥에 닿는 순간 따발총소리가 나면서 표피가 터지고 순간에 녹향이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는 고춧잎 데친 풀냄새만 남는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 고춧잎 냄새를 덮고 풀냄새와는 다른 냄새를 내기 위해 ’구증구포‘라는 말까지 동원해 가며 여러번 뜨거운 솥에 넣게 된다. 이런 초배법이 제다나 살청을 “차의 냉기를 없애기 위해서 한다”거나(혜우) “찻잎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한다”(박동춘) 또는 “초의가 한국 차문화를 중흥시켰다”는 주장과 함께 한국 전통 제다법의 주류로 행세하고, 그렇게 해서 만든 차가 “고소한 맛”과 더불어 한국 차문화를 주름지게 하면서 차의 품격을 ’기호음료‘로 떨어뜨려 커피와 보이차에 밀려나는 운명을 맞게 하고 있다. 박동춘 소장은 “다산 제다가 제다사에 제시된 적이 없다!”고까지 말하면서 ‘초의 제다(초배법)’를 옹호하고 있다. 여러 차시와 <다신계절목> 및 다산이 이시헌에 보낸 편지를 통해 무엇보다 뚜렷이 역사(제다사)적으로 기록된 월등한 제다법인 다산 제다를 백안시하면서 명나라 제다법을 한국 전통 제다법이라고 우기고, 그 제다법으로 만든 차가 한국 전통차의 주류가 되었는데, 그런 차가 커피와 보이차에 형편없이 밀리고 있다면, 한국 전통차와 차문화를 후진시키고 있는 주체는 누구 또는 무엇이겠는가?

청태전·뇌원차 ‘복원’의 기시감, 같은 일 재연않기를

이쯤이면 누구라도 한국 전통차가 커피와 보이차는 물론 고소한 냄새가 강한 보리차와 옥수수수염차에도 밀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욱 원장이 한국 전통차의 장점을 살린다면 녹향 아닌 누룽지 냄새를 더 강하게 하겠다는 것인가? 선현들이 차시에서 녹향을 주로 강조했던 시기는 대체로 초의가 초배법을 소개하기 전이었다. 그 당시에는 이덕리의 『(동)다기』와 다산 제다에서 볼 수 있듯이 차원 높은 증배제다가 실시되고 있었다. 내가 덖음제다가 한국 전통 차문화를 후퇴시킨 주범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유는 이런 데 근거한다. 이욱 원장은 덖음제다를 “유명 제다인들이 척박한 제다 풍토에서 힘겹게 하고 있는 전통제다”라고 생각하여 그것을 평가 없이 녹취만 하겠다 하고, 또한 그것을 “박제화된 지식의 집적”이라고 하여 이율배반으로 보이는 프로젝트 수행 방법론을 채택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프로젝트의 기본틀을 주춧돌부터 새로이 하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전통제다 DB화’ 프로젝트의 바른 수행을 위해서 내 말이 ‘쇠귀에 경읽는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나 역시 오랫동안 ‘한국 전통 제다와 전통차’라는 주제의 연구를 해왔고 그 연구보고서를 곧 발표할 예정이다. 이욱 원장과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전통제다 DB화’ 프로젝트 수행팀이 성공적인 프로젝트 완결을 위해 참고하기 바란다.

이욱 원장이 걱정하는 ‘박제된 지식의 집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첩경은 이욱 원장 말대로 “한국 전통차의 발전”을 가장 바라는 사람들이자 오랜 경험을 지닌 현장 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다. 뒤늦게라도 학술대회 소회를 말한 김덕찬 대표에게 가한 ‘무례’를 반성하고 그를 다음 학술대회 토론자로 초대하기 권한다. 김대표는 직접 전통제다를 실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차 관련 학술행사를 찾아다니며 청취하고 있어서 남다른 학구열을 가진 현장 제다 전문가중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지식기반에서 말한 “전문성이 없다”는 지적을 전통제다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 자신들의 한정된 분야 학위를 근거로 학술적으로 무시하는 행태를 보인다면 그것은 학자적 오만의 표현으로서 차학 발전을 막는 곤란한 일이다.

끝으로, ‘청태전’과 ‘뇌원차’ ‘복원’을 사례로 들어 ‘DB화 프로젝트’가 같은 일을 재연하는 기시감을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2년째 접어들었다는 이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전통차와 전통제다의 의미를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청태전‘ 복원의 기시감이 느껴져서 하는 말이다. 또 이욱 원장이 말하는 “차를 마시는 이외에 차를 활용하는 방법, 심리 치료나 정신적 안정과 같이 차가 갖는 웰니스적 가치와 그 적용에 대한 연구”는 이미 다른 데서 상당히 진척되어 많은 논문으로 발표된 바 있고, ‘차훈명상’처럼 이상한 상품화로 퍼지고 있는 것도 있다. 이욱 원장이 포부를 실현하려면 이런 논문이 갖는 지나친 형이상학성 및 차가 갖는 웰니스적 가치의 상품화가 빚을 부작용부터 첵크해 보기를 권한다.

또 이미 있는 자료를 DB화 하는 데 잘 하면 1년, 아무리 길어도 2, 3년이면 족할텐데 우주 로켙 개발 사업보다도 길게 6년씩이나 끌고 갈 이유가 무엇인가? 6년 세월이면 앞서 채록한 자료는 이미 자료로서 가치가 탈색돼 정말로 “박제화한 자료의 집적”에 자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더 이상의 좌고우면 없이 주춧돌을 곧추 세우고 전문성을 보강하여 “전통차의 발전을 바라는 분들”의 기대를 하루라도 빨리 채워주기 바란다. 그게 이 프로젝트 수행이 갖춰야 할 진정성과 가성비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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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민 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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