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차의 현대적 활용이 제다뿐일까?”라는 이욱 순천대 교수의 재빠른 반론에 답한다. 우선 이 제목을 이교수가 달았다면, 이교수가 이끄는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이 18억원의 국비를 받아 수행하고 있다는 프로젝트가 ‘전통 제다 DB화’ 작업 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 핵심 키워드인 ‘제다’를 논외로 밀어내는 말을 할 수 있는가?

이 교수는 국립대학 부설 연구원 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계시므로 자타가 인정하는 중견학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분이 자신들이 주최한 학술대회로 야기된 논쟁에서 논점을 벗어난 방어 수단으로써 상대에게 제자 대하듯 감정적 인신공격성 훈계를 하는 듯한 언어사용은 자제해 주기를 부탁드린다. 이 교수는 ‘교학상장’이라는 말을 동원하여 내가 권위의식으로 상대를 지적할 뿐 본인도 배울 위치에 있지 않다고 여기는 듯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지적이 상대의 약점이나 미비점을 신랄하게 지적할 뿐이라고. 여기서 ‘교학상장’이라는 말과 (지적) 권위의식에 젖어 자신은 배울 위치에 있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다는 말을, 앞 글에서도 말했지만 학술행사에서 청중의 의견표명을 ‘무례’라고 재단하고 인신공격으로 제압한 데 대해 그 폭력성과 반학문적 행태의 심각성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이 교수에게 돌려드리고자 한다.

이 교수에게 묻는다. 언제 이 교수가 또는 이교수가 아는 어떤 정황에서 누가 나에게 정당한 무엇을 가르쳐 주려 했는데 내가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중견 학자가 제자들도 볼 수 있는 공론의 장에서 근거없는 편견과 선입견으로 상대를 잣대질하는 것은 볼썽사납다. 나는 비로소 오늘 이 교수의 반론에서 이 교수가 제다와 전통차에 대해서 일갈하는 것을 보고 배울만한 대목이 있는지 눈여겨 보았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전통차의 현대적 활용이 제다뿐일까?”라는 제목도 무슨 말인지 생뚱맞고, 이 교수가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는 맛있는 전통차”라고 하고, 차장사꾼들이 차를 한낱 기호상품으로 격하시키는 데 즐겨 쓰듯 “차는 기호식품”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데 경악하였다. 특히 이 교수가 이번 학술대회에서 다양한 장점을 지닌 한국 전통차가 커피와 같은 수입차에 밀리는 이유를 말해 보고자 했다면서 전통차 자료 DB화 목적의 하나로 든 “전통차가 대표적인 기호음료의 입지를 갖게 한다”는 말에서는 경악한 입이 오래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 교수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이 교수의 약점이라고 하여 신랄하게 비판하지는 않겠다. 고명한 역사학자이신 이욱 교수님이 하루 아침에 전통 제다나 전통차, 또는 차 전문가가 될 수는 없으니까. 전통 제다와 상당한 거리가 있는 분이어서 전통 제다의 철학적 원리와 전통차의 수양론적 속성을 모르기에 “전통차의 현대적 활용이 제다뿐일까?”라는 초형이상학적인 발상을 하거나, 차상인들과 명리추구에 골몰한 일부 차명망가들이 그러하듯 차를 ‘기호식품’의 반열에 추락시켜 폄훼하는 우를 범할 수는 있다고 본다.

다만 나를 인터뷰한 김대호 연구원의 말을 빌려 “몇몇 유명 제다인의 제다 기법에 부정적인 견해를 전했다”한 대목과 그 ‘유명 제다인’들이 일본이나 중국의 제다기법을 참고하여 ‘맛있는 차’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주장은 이 교수의 지리산권문화연구원이 수행하고 있는 ‘전통 제다 DB화’ 작업의 기본 틀을 규정하는 전통 제다의 ‘인식’에 관한 문제이기에, 이교수의 양해를 구하며 신랄한 지적과 비판을 하겠다.

우선 김대호 연구원에게 내가 몇몇 ‘유명 제다인’의 제다기법에 부정적인 견해를 말했다는 것. 나와 일면식이 없고 김대호 연구원을 통해 들은 이 교수가 앞에서처럼 나를 선입견과 편견으로 재단하고 있는 데서 김대호 연구원의 전언에 주관과 왜곡과 거두절미가 심했다고 본다. ‘몇몇 유명 제다인’의 제다에 대해 나는 단순히 부정적인 견해를 말한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전통 제다를 포함한 제다의 원리와 차의 본질을 무시한 돈벌이 목적 제다를 하는 데 급급하고, 이른바 ‘유명함’을 이용하여 상업적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함으로써 한국 전통 제다는 물론 대중의 차 인식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고 신랄히 비판하였다. 예컨대 “제다는 차의 냉기를 없애기 위해서 한다”라든가 “찻잎의 독소를 없애기 위해서 제다한다” “차는 대중의 기호에만 맞추면 된다”라는 등 제다 원리를 철저히 왜곡하고 시류에 편승하는 게 그들의 제다 ‘비법’이자 제다 원리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맛없는 차라면 소비자가 엄격하게 평가하고 결국에는 도태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라고 했다. 혼돈에 빠져 있는 한국 전통 제다와 전통차의 진정한 의미와 본질부터 탐구해야 하는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학자로서 어쩌면 그렇게도 저 차장사꾼들의 말을 되뇌고 있는지 참으로 걱정된다.

이 교수는 비판의식 없이 저들을 ‘유명 제다인’이라고 부르며 “척박한 한국 전통차 제다 현장에서 힘들게 노력하고 계시는 분들”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들이 한국 전통 제다 또는 전통 차문화의 정체성 확립과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분투하는 항일 독립투사라도 된다는 말인가?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오도르노는 “학문은 적극적인 바판이어야 한다. 타협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정치”라고 하였다. 이 교수는 ‘박제화된 지식의 집적’을 걱정하시는 분이 어떤 기준과 확인을 거쳤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위와 같이 문제를 지적한 제다인들을 ‘유명’이라는 이름의 시류로 포장하고 편승하여 나의 제다 지식과 논리를 비판하는 무기로 삼고 있다. 아무리 제다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전통 제다 DB화’ 프로젝트의 총책임자가 학자로서 가져야 할 비판정신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어 보인다.

나는 이 교수가 차를 ‘기호식품’으로 인식하고, 일본이나 중국의 제다기법도 참고하여 맛있는 차를 만들어 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애초부터 ‘전통 제다 DB화’작업의 기본틀이 잘못 짜여서 삐걱거리던 소리가 이번 학술대회에서 인신공격 등의 형태로 증폭돼 터져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차의 고전인 한재 이목의 『다부』, 다산과 그 제자들의 ‘다신계절목’과 구증구포 단차(團茶) 및 삼증삼쇄 차떡(茶餠) 제다, 그리고 초의가 『동다송』 제60행의 주석에서 “評曰 ... ”이라 하여 ‘다도’를 정의한 대목 등을 보면 우리 전통차의 정체성은 녹차로서 단순한 기호음료가 아닌 ‘심신건강 수양음료’이고, 전통 제다는 심신건강·수양 에너지로서 찻잎이 지닌 다신(茶神)이 최대한 보전되는 녹차를 만들어 내는 작업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초의가 말한 ‘다도’는 제다에서 그런 다신을 완제차에 보전시키고 포다에서 차탕에 중정하게 발현시키는 일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박미경 교수가 차와 관련한 웰니스를 말하고 이 교수가 그걸 되풀이하는 맥락이 바로 거기에 닿아있지 않은지 살펴보기 바란다. 우리 차 선현들은 그런 성취를 얻어내는 데 이미 중국 다서와 중국의 제다기법을 많이 참고하였다. 새삼스럽게 중국 일본 제다기법을 참고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김대호 연구원의 발효차 중시 연장선상에서 중국 보이차를 더 들여다 마시고 방사능 걱정 말고 일본 그린티를 수입하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 교수가 걱정하듯이 오늘날 녹차를 위주로 한 한국 전통차가 커피와 보이차에 밀려 맥을 못추는 이유가 이 교수처럼 녹차를 기호음료 반열에 추락시켜서 말초감각을 순간적으로 자극해 주는 커피와 보이차의 강한 ‘기호성’에 밀리도록 한 탓이 아닌가? 외람되지만 이 교수가 차 지식을 보강하여 ‘전통 제다 DB화’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수행하는 데 일조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의 졸저들인 『차와 수양』 『神妙-한국 차 전통 제다와 다도의 핵심원리』 『한국 차의 진실』의 서문과 목차만이라도 들춰보시기를 권한다. 한국연구재단이 18억원의 연구비를 준 취지 또는 그 연구비를 타내기 위해 신청서에 써낸 ‘연구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끝으로, 이 교수가 굳이 또 ‘소기의 목적’이 뭔지를 밝히라고 압박하고 있으니, 앞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이 교수의 뜻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다시 말씀드린다. 그 ‘소기의 목적’이란 이 교수가 뒤늦게 학술대회장에서 밝힌 대회개최 취지 설명으로 유추하건대 “평가는 않고 기록만 한다”는 DB화 작업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학술대회를 열었다는 것이다. 더 쉽게 설명하면 “평가는 않고 기록만 한다”는 것의 문제 지적을 수용하여 학술대회를 열면서 경위설명이 솔직하지 않다는 것, 거액의 국비사업에 있어서 그나마의 구색 맞추기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구색 맞추기’라는 말은 학술대회 내용의 허술함의 비유이다

또 다시 이 교수는 김덕찬 대표가 소회를 말한 것을 질문시간에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한 것인 양 매도하고 있다. “약점을 신랄히 지적당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이 학술대회의 결정적 장면인 청중 소회에 대한 인신공격이 논란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보고자 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학자로서 또 토론 좌장으로서 청중의 소회 표현을 무례라고 단죄하고, 그에 대한 인신공격을 비호하는 것은 정상적인 학문 탐구 자세나 일상적 도덕 기준에 비추어 너무 나가는 것 아닌가? 여느 학술대회에서도 청중의 질문은 장단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그 학술대회에 대한 소회를 앞세운다. 또 학술대회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중요함을 아는 좌장은 일부러 청중에게 학술대회를 본 소감을 먼저 부탁하기도 한다. 즉 소감이나 소회는 ‘질의’의 범주에 들어있다. 왜 이욱 교수가 좌장인 순천대 ‘전통차 ... ’ 학술대회에서만 이런 의사표현의 자유가 주최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억제되어야 하는가? 이 교수는 김덕찬 대표가 “이 학술대회에 전문가가 없다”고 함으로써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오랜 기간 닦은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하루 아침에 비전문가가 돼버렸다“고 흥분하고 있다. 좌장 이욱 교수를 비롯한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김덕찬 대표의 한 마디로 학위가 박탈되고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원장이나 하동녹차연구소장 자리 등지에서 물러나게 되었는가? 

SNS 기사보내기
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최성민 소장
저작권자 © 뉴스 차와문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