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품위와 상호존중의 원칙 아래 순수한 학술적 공방을 생명으로 하는 학술대회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사태가 국립 순천대 ‘전통차 ... ’ 학술대회에서 벌어졌다”는 취지의 기고문(24일자 <뉴스차와문화>)에 대해 이욱 순천대 교수가 25일 반론을 실었다. 이에 반론한다.

먼저 내가 <주제와 먼 발표내용, 청중의 ‘전문성 결여’ 지적에 인신공격까지-순천대의 이상한 ‘한국 전통차... ’ 학술대회>라는 기고를 한 것은 현장을 목격한 청중의 한 사람이자 전통 제다의 진정한 정체성 확립을 걱정하는 사람으로서, 무엇보다도 어느 학술대회에서도 일어나서는 안 될 청중 질의에 대한 인신공격이라는 당혹스런 사태가 한국연구재단의 국비지원 프로젝트의 일환인 국립대학의 ‘전통차’ 관련 학술대회에서 벌어졌고, 그것을 대하는 주죄측의 태도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당화하는 데서 받게 된 충격, 그리고 내용이 빈약하고 안하무인식인 차 관련 학술행사는 지양되어야 한다는 우환의식 때문이었음을 밝힌다.

이욱 교수의 반론은 “한국 차의 전통과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고 그 현대적 의의와 활용에 대해 심층적으로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으나, 심층적인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나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여기에서 끝났거나 같은 맥락의 연장이었다면 이욱 교수의 말 그대로 잘못된 학술대회에 대한 겸허한 사과로 받아들여져서 나의 반론이 불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몇 가지 오해와 왜곡을 바로잡을 필요를 느꼈다”고 하면서 진술을 길게 이어가고 있다. 이런 류의 말이 지나치게 장황해 지면 변명의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이욱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 책임자라면서 이 사안의 가장 심각하고 총체적인 문제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는 청중에 대한 인신공격성 폭언에 대해서는 사과는커녕 근거 없는 당사자의 ‘평소 언동’까지 거론하여 정당화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내 글에서 이 교수가 오해 또는 왜곡이라 한 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 이 교수의 반론이 과잉 감정 표출의 변명으로 들리는 이유를 말해 보겠다. 이 교수가 “달을 봐야지, 손가락만 보아서야”라고 한 데 대해 달을 가리킨다는 손가락이 달과 반대 방향으로 심하게 굽은 것을 지적하여 수술을 권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전통 제다를 DB화하는 우리의 연구작업이 박제화된 지식의 집적에 그치는 것을 우려하여 전통차의 발전과 활성화를 바라는 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강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 우리의 고민을 풀어놓고 해결책을 강구할 욕심으로 ... 현실적 대안을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전 단계로, 다양한 가능성과 방법을 모색하는 수준”임을 밝혔다고 말한다. 그런데 매스컴에 보도되고 홍보 현수막에 적힌 이번 학술대회 주제 및 발표(토론)문집 제목은 <한국 전통차의 현대적 활용>이고 발표문 항목에도 <전통 차문화의 현대적 적용>이 들어있다. 나를 포함한 제다인이나 차인 및 참석 청중 대부분은 이 주제와 발표 제목을 보고 한국 전통차나 전통 차문화에 대한 설명이나 전통차의 현대적 활용에 대한 구체적 답을 듣기 위한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청중으로서 질의를 했다가 인신공격 당한 청해진다원 김덕찬 대표도 그런 기대를 갖고 왔으나 내용이 그렇지 않아서 실망했다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발표내용의 전문성이 미흡하다고 한 것 같다.

이욱 교수가 “전통차의 발전과 활성화를 바라는 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강구할 필요성이 있어서” 열었다고 한 학술대회에서, 오랜 현장 제다경험을 밝히고 주제와 동떨어진 내용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불분명한 15년 전 개인사를 끄집어내 인신공격하고, 학술대회 총책임자인 이욱 교수는 “실망했다”는 그의 전문가적 견해를 ‘질의’가 아닌 ‘소회’라고 꼬투리 잡아 성토하고, 이어 이번 반론에서 “평소 그 청중과 안면이 있어서 언행을 알고 있던 토론자 중 한 분이 ... 그 분의 평소 언행에 대해 지적하였다. 그 비판 전에 청중의 무례한 발언을 지적하는 것이 정당한 순서일 것이다”라고 토론자의 인신공격을 옹호하고 있다.

이욱 교수에게 묻는다. 위와 같은 취지의 학술대회에서 현장 경험 많은 전문 제다인이 주제와 동떨어진 발표내용에 실망하고 발표내용의 전문성이 미흡하다고 한 것이 인신공격을 당할 만한 ‘무례한 일’인가? 그것이 있지도 않은 일을 꺼내어(김덕찬 대표는 인신공격을 한 ㅈ씨가 자신의 오해라고 사과했다고 한다) 국립대 학술대회라는 공식석상에서 학술대회 본질과 무관한 인신공격을 한 것보다 먼저 지적당해야 할 ‘무례한 발언’이라는 근거나 기준이 무엇인가? “전통차의 발전과 활성화를 바라는 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강구할 필요성이 있어서” 열었다는 국립대 학술대회에서 이 학술대회 총책임자이자 좌장인 이욱 교수가 전통 제다 현장 전문가의 지적을 폄하하고 인신공격보다 먼저 지적당해야 할 ’무례한 일‘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게 ’전통차의 발전과 활성화를 바라는 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강구하고자 한다는 이 학술대회의 취지에 걸맞는 태도이고 거액의 국비지원을 받는 행사의 목적에 부응하는 자세인가?

이욱 교수는 내가 사실확인 없이 스스의 느낌만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소기의 목적상’이라는 문구를 ‘인상 비평’이라고 시비하고 있다. 이는 이욱 교수가 내 글을 대하는 자세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현장 제다전문가의 지적을 “무례한 일”이라고 단정하여 그에 대한 인신공격 보다 더 나쁜 일로 치부하는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지적을 대하는 ‘닫힌 자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판단한다. 이욱 교수는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하는 제다인들의 폐쇄성을 강조하여 지적하였다. “미워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이욱 교수와 동료 연구진에게 해당되는 구석은 없는지 살펴보기를 권한다. 자칫 ‘지적 오만’으로 보일 수 있는 태도에 익숙해져 있지 않은지 경계하라는 조언으로 받아주기 바란다.

이 교수는 필자(최성민)가 스스로 자신이 없는지 ‘ ’를 사용함으로써 근거 없음을 밝히고 있지만, 굳이 뭔가 목적이 있는 학술대회라는 인상을 주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였다. “스스로 자신이 없는지 ‘ ’를 사용함으로써 근거 없음을 밝히고 있다”는 이 교수의 말은 학자로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 아닌 황당한 과잉 감정의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이 교수 자신이 그토록 비난하는 ‘무례한 일’로서 중견학자의 관록이나 학구적 성취에 어울리는 진중함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이욱 교수는 ‘ ’(작은 따옴표)를 자신이 없을 때 취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것이 문맥상 누구나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을 함축적으로 표기하는 기법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뭔가 목적이 있는 학술대회라는 인상을 주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는데, 이욱 교수가 초보적인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학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욱 교수에게 묻는다. ‘뭔가 목적이 없는 학술대회’가 있을 수 있는가? 목적이 없는 학술대회를 내가 무슨 목적이 있는 것처럼 왜곡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뭔가 숨기고 싶은 특정의 목적을 내가 ‘ ’로써 암시하고자 했다는 것인가? 이 교수가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 의혹의 답은 이욱 교수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것은 위에 있는 “전통 제다를 DB화하는 연구작업이 박제화된 지식의 집적에 그치는 것을 우려하여 전통차의 발전과 활성화를 바라는 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강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 우리의 고민을 풀어놓고 해결책을 강구할 욕심으로 ... ”이다. 그런데 이 교수가 그러한 목적으로 기다렸을 ‘전통차의 발전과 활성화를 바라는 분’이 학술대회 발표내용의 허술함을 지적하는 것을 인신공격으로 대하고 그 인신공격을 옹호하는 행태가 ‘전통차의 발전과 활성화를 바라는 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자세인가? 나는 학술대회 목적으로 내 건 내용과 그 목적에 배치되는 실제 학술대회 주최자들의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고 그것을 표현하는 유효한 방법이자 상대에 대한 배려로써 직설법 대신 ‘ ’를 취한 것이다.

이욱 교수는 ‘급조한 학술대회’라는 말에 민감한 반응을 하고 있다. ‘급조한 학술대회’라는 말은 상대방의 노력이나 의도를 인정하지 않는 필자(최성민)만의 인상비평이라는 것이다. 급조한 것이든 오랜 기간 진중하게 준비한 것이든 그만한 비용 지출과 노력은 있게 마련이다. 나는 앞의 기고문에서 그 ‘노력’을 무시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급조한 학술대회’라는 말을 쓴 이유를 말하자면,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원장 이욱 교수)은 2022년부터 6년 동안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18억원의 국비지원을 받아 ‘전통 제다 자료 DB화 작업을 한다”는 발표가 매스컴에 보도된 바 있고, 이 연구작업과 관련하여 연구원측은 “기록은 하되 평가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밝힌 바 있고, 이 역시 매스컴에 보도되었다. 이에 대해 오랜 기간 전통 제다를 현장 연구해 온 한 사람으로서 대학원에서 ’전통 제다‘를 가르치고 있는 필자는 지리산권문화연구원의 ’전통 제다 자료 DB화 작업‘의 중대성을 생각하는 한편 그 내용의 부실 가능성을 걱정하였고, 연장선상에서 “기록은 하되 평가는 하지 않는다”는 연구원의 원칙에 대해 연구책임자의 한 사람인 김대호 연구교수와의 면담 등 여러 경로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즉 진정한 ’전통 제다‘라고 할 수 없는 잡다한 상업성 제다를 분별하고 취사선택하는 평가작업 없이 한국연구재단과 국립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이라는 이름의 무게로써 기록만 할 경우 전통 제다를 포함한 한국 전통 차문화의 왜곡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또 나는 지리산권문화연구원이 ’전통 제다‘에 대한 전문성이 없어서 ’전통 제다‘의 진위를 가리는 평가작업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전문성 문제‘ 지적의 중요함과 정당성은 이번 학술대회에서 “발표내용에 전문성이 없다”는 청중의 지적으로 확인, 지지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평가는 않고 기록만 하겠다 했으니 봄철 여러 제다 현장 녹화와 정리에 바쁠 연구진이 돌연 “전통 제다를 DB화하는 자신들의 연구작업이 박제화된 지식의 집적에 그치는 것을 우려하여 전통차의 발전과 활성화를 바라는 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강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 ”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이번 학술대회를 열었다. “평가는 않고 기록만 하겠다”는 연구사업 수행 원칙과 “연구작업이 박제화된 지식의 집적에 그치는 것을 우려하여 ... 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우리의 고민을 풀어놓고 해결책을 강구할 욕심으로... ”라는 학술대회 개최 목적은 분명 상호 배치되고 이율배반적이지만, 후자는 ‘전문성’ 지적을 수용하여 연구작업의 내실을 보완하고자 진일보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이 이율배반 및 학술대회 개최 목적과 동떨어진 발표내용, 그리고 그것을 지적하는 청중에 대한 주최측의 방어성 인신공격, 그러한 반학구적이고 원시적인 행태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욱 교수라면 당당히 “오랜 기간 매우 진지하고 치밀하게 고민하고 노력하여, 청중들에게 홍보한 학술대회 주제에 발표 내용이 잘 부합하고, 전통차와 전통 제다의 현대적 활용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강구한 학술대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급조한 학술대회’라는 말의 어감이 불편하다면 더 묻고자 한다. 이번 학술대회 좌장인 이욱 교수를 포함하여 발표자와 토론자 가운데 ‘전통 제다의 발전과 활성화를 바라는 분들’에 걸맞게 전통 제다의 충분한 현장경력을 쌓은 전문가가 한 명이라도 있는가? 연구총책임자인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원장 이욱 교수는 역사학자이신 듯하고, 발표자 중 한 명 역시 역사학자, 발표자이자 연구책임자의 한 사람인 김대호 연구교수는 경영학 전공, 또 한 분은 수질전문가, 나머지 한 분의 발표는 전통차 또는 전통 제다와 직결성이 없는 주제와 내용이었다. 토론자들은 한국사학과 박사과정,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직원, 이학자로서 녹차연구소장, 음료학자 들이다. 이욱 교수는 ‘급조하지 않고 오랜 기간 진지하고 치밀하게 준비한 학술대회’임을 입증하려면 전통차 제다인들의 작업과정 관련 “전통차의 발전과 활성화를 바라는 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강구할” 학술대회의 발표 및 토론자의 이런 인적 구성의 타당한 이유나 목적을 설명해 주기 바란다. 또 이욱 교수는 토론자인 ㅈ 교수가 “00대에서 20명이나 동원하여 왔다”고 한 말을 들었을 것이다. 20명이면 이날 참석자의 거의 과반에 이르는 숫자이다. 이욱 교수는 이 말에 근거하여 ‘급조한 학술대회’라고 말하는 것이 필자만의 근거없는 ‘인상비평’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욱 교수는 상대방의 노력이나 의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비난이나 폄훼라고 했다. 나는 이욱 교수 팀이 ‘전통차 자료 DB화’라는 거액의 국고지원 사업의 중대성에 적절하거나 상회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하고, 앞에 말한 바와 같이 “평가는 않고 기록만 한다”는 원칙 표명 및 “박제화된 지식의 집적을 걱정하여 전통차의 발전과 활성화를 바라는 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강구하고자 한다”는 학술대회 개최목적이 야기하는 혼란과 그것이 던지는 ‘의도’의 예측불가성을 걱정하여 개선을 충고하는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엄혹한 비평은 환영한다”면서 나의 이런 비판을 비난이나 폄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이욱 교수의 주장이야말로 자신들의 잘못을 호도하기 위한 근거없는 비난이자 폄훼가 아닌지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이 교수는 또 “학술대회 현장에서는 한 마디도 없다가 불쑥 언론에 기고해서 꾸짖는 것은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 전통차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동행이 늘어났다는 달을 보기 바란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학술대회 발표 내용에 “실망했다”는 말 한 마디에 인신공격을 해대고, 질문이 아닌 소회를 말했다고 성토하는 분위기에서 나의 이런 비판이 가능했을 것이며, 이 교수와 주최측이 그만큼의 열린 자세를 취했다고 착각하고 있는가? 나의 비판과 지적이 이 교수 팀의 연구사업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 외에 내가 무슨 도움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밝혀주면 고맙겠다. 이 교수는 나의 이런 비판이 이 교수 팀의 전통차 자료 DB화 작업에 방해가 된다는 전제에서 “전통차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동행이 늘어났다는 달을 보라”고 말하는가? 연구책임자가 이번 학술대회 발표자로서 “잎녹차가 외면당하고 있으니 떡차와 발효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욱 교수의 견해와 다른 주장을 하는 상황에서 전통차의 밝은 미래란 어떤 것이며, 그것을 열어가기 위한 동행이 늘어났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 교수는 “부족하거나 미비한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보완점에 대해 의견을 주는 것이 한국 전통차에 먼저 발들인 선배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라고 했다. 이 교수가 자신들의 전통차 자료 DB화 작업의 문제점 지적과 이번 학술대회에서 드러난 잘못에 대한 비판을 부족하거나 미비한 점의 지적과 보완점에 대한 의견이 아닌 비난과 폄훼라고 판단하는 근거와 까닭이 무엇인가?

끝으로, 학술논쟁에서 상대의 호칭을 ‘모 선생’으로 부르는 것은 이욱 교수도 동의할 ‘예의 갖춤’에 적절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기고문에 성명과 직함을 밝혔다. 다음 반론을 한다면 그대로 불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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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민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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