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춘의 <초의선사의 다도연구>왼쪽, <여연스님의 동다송 이야기> 오른쪽.
박동춘의 <초의선사의 다도연구>왼쪽, <여연스님의 동다송 이야기> 오른쪽.

최근 『초의선사의 다도 연구』(박동춘 지음, 조계종출판사)와 『여연스님의 동다송 이야기』(효서여연·나웅인 지음, 이른아침)가 한 달 간격으로 잇따라 나왔다. 『초의선사의 다도 연구』는 서문에서 “2010년에 출간한 『초의선사의 차문화 연구』를 대폭 수정하고 보완하였다”고 했다.

또 『동다송 이야기』는 서문에서 “우리 차문화와 역사가 얼마나 유장하고 깊은지 말하고 싶었다. 『동다송』을 최대한 쉬우면서도 정확하게 읽어보자는 것”이라고 하여 책 출판 동기와 목적을 각각 밝혔다. 『초의선사의 다도 연구』는 저자 소개에서 “초의선사의 다맥을 이은 응송스님에게 ‘다도전게’를 받은 유일한 인물 ... ”이라고 했고, 『동다송 이야기』는 (저자 효서여연에 대해) “효당스님에게 차를 배우고 18년 동안 일지암에서 살았다. 목포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초의차문화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둘의 저자 소개와 책을 낸 목적을 보면 저자들이 이른바 ‘초의 다맥 계승자’ 또는 초의차문화연구원 이사장으로서 그동안 자신들의 자산으로 삼아 온 ‘초의차’와 『동다송』에 관한 입장을 이 시점에서 확인하여 강화하고자 한 심경이 느껴진다. 또 오랜 기간 특정한 차를 내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차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해 온 이들이 이 시점에 갑자기 앞다투어 유사한 책을 낸 연유가 차계의 궁금증을 유발할 만하다.

필자 역시 그런 궁금증에서 두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주요한 대목들에서 궁금증의 해소보다는 저자들이 평소에 견지해 온 주장들에 대한 의혹이 더 짙어졌다. 고전 다서와 전통 제다를 현장연구해 온 필자로서 두 책의 내용중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오류나 애매한 해석 또는 자의적 추론들이 일반 독자의 차 인식이나 한국 차문화사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여 토론을 제안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는다.

사실근거 미약한 추론,

『동다송』 취지의 아전인수 해석

『초의선사의 다도 연구』는 제목이 밀하는 것처럼 초의의 ‘다도’에 대해 다른 데서 들을 수 없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들어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초의의 『동다송』이 홍현주의 ‘다도’ 질문에 대한 답변서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는 『여연스님의 동다송 이야기』에 대해서도 갖게 되는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두드러지게 다가오는 인상은 (특히 『초의선사의 다도 연구』에서) ‘차인’으로서 초의 및 ‘초의차’를 강조하기 위하여 팩트 체크가 미흡한 ‘추정’ 및 한국 제다사와 차문화사를 의심케 하는 견강부회가 눈에 띄고, 때로는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두 책에서 『동다송』을 “초의가 우리 차를 칭송하기 위해 쓴 책”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지점에서는 ‘초의차’를 내세우기 위한 저자들의 조급한 의도가 빚은 왜곡이 느껴졌다.

초의가 『동다송』 발문에서 밝혔듯이, 『동다송』은 초의가 한국 차를 칭송하기 위한 저술이라기 보다는 “옛사람의 말을 빌려” 정조 사위 홍현주의 ‘다도’ 질의에 답한 글임을 누구나 알 수 있고, 그 답은 『동다송』 제60행의 주석에 있는 ‘評曰~ 茶道盡矣’ 대목이다. 박동춘은 초의가 『동다송』에 인용한 이덕리의 견해를 초의의 견해인 양 말하고 있다(『초의선사의 다도 연구』 165쪽). 그런 논리라면 『동다송』에 훨씬 앞선 이덕리의 『동다기』(『記茶』)가 우리 차를 칭송한 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탓에 ‘초의차’ 옹호자들의 저런 주장을 접하는 차학과 학생들이나 차인들은 『동다송』의 핵심부분을 놓치고 『동다송』을 단지 한국 차를 칭송한 책으로만 알게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차 담론을 주도하는 이들의 검증안된 일방적 주장이나 자의적 추론이 한국 차문화사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두 책을 말하기에 앞서 전제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앞에 말했듯이 초의선사의 다도나 『동다송』의 핵심 과제는 초의가 『동다송』 제60행 주석에서 말한 “評曰 採盡其妙 ~ 茶道盡矣” 대목 및 차계 일부에서 이른바 ‘한국의 다도정신’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동다송』 ‘포법泡法’에 나오는 ‘중정中正’이란 말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초의선사의 다도 연구』는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전의 저서 『초의선사의 차문화 연구』의 개정 증보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연구’의 내용 보다는 이전에 썼던 ‘초의선사의 생애’ 등 사실관련 내용 나열을 반복한 분량이 많다. 또 한국의 차문화사와 관련된 대목은 저자의 평소의 주장대로 라말여초 구산선문 개창시 도당 구법승들이 선차문화를 도입했다는 등, 근거제시 없이 개연성에 의존한 ‘추정’이 많다. 이는 한국 불교가 차문화의 중심이고 “초의선사가 한국 차를 부흥시켰다”는 저자의 평소의 주장을 되풀이하기 위한 초석으로 보인다.

여기서 “필자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지적을 피하고 일반 독자는 물론 한국 차인과 차학자들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저자에게 묻고자 한다. ‘초의차’를 주장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이 질문에 당당하게 답해 주기를 바란다. 『초의선사의 다도 연구』의 저자 박동춘씨는는 “민멸(泯滅)된 조선의 차문화를 초의가 대흥사의 다맥을 이어받아 중흥시켰다”고 하고, 조선시대 “차문화 피폐”의 한 원인을 불교탄압과 경제적 압박이라고 주장해 왔다.

박동춘 저자에게 묻다

1. 초의 이전에 조선의 차문화가 민멸(자취나 흔적이 아주 없어짐)됐다면 한재 이목의 『다부』 저술, 『부풍향차보』와 『동다기』에 기록되어 전해지는 부안과 진도 일대의 생배 및 증배 제다, 초의의 눈앞에서 다산이 제자들에게 다신계를 조직하도록 하여 긴 세월 구증구포 및 삼증삼쇄의 독창적인 제다를 했거나 하도록 한 사실은 허구인가?

2. 조선의 차문화가 민멸되었다는 것과 초의가 대흥사의 (민멸되었을) 다맥을 이어받았다는 주장의 논리적 연결성은 무엇인가?

3. 불교탄압과 불교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 조선시대 차문화를 쇠퇴시켰다는 근거가 무엇인가? 조선시대 이전에 불교에서 차문화의 핵심인 제다를 직접 했으며, 조선시대에 불교탄압이나 불교에 대한 경제적 압박으로 못하게 되었는가?

4. 초의가 『다신전』 발문에서 “총림에 조주풍은 있으나 다도(이른바 『다신전』의 ‘제다-장다-포다’)를 모른다”고 한 말과 ‘초의의 대흥사 다맥 계승’ 및 저자의 초의 다맥 ‘다도전게’ 전수(傳受)는 배치되지 않는가?

5. 초의가 조선시대에 민멸된 차문화를 중흥시켰다면 초의는 『동다송』에서 왜 자신의 독창적인 제다법을 기록하지 않고 “造茶篇云... ”이라고 하여 명나라 덖음제다법을 『다신전』에 이어 재소개하는 데 그쳤는가?

6. “범해 역시 초의가 실현한 차문화 중흥을 이어 발전시키지는 못했다”(『초의선사의 다도 연구』 304쪽)면, 초의의 차문화 중흥이 초의 일대(一代)로써 의미를 상실했다는 말인가?

7. 절 바깥 민간인인 저자가 응송으로부터 ‘유일하게’ 초의 다맥 계승을 의미하는 ‘다도전게’를 받았다면, 저자가 대흥사에 전해왔다고 주장한 ‘사찰다맥으로서 초의 다맥’의 단절을 의미하는가?

『동다송』의 ‘다도’ 및 ‘中正’ 해석의 오류 또는 애매함

위에 말한 ‘초의선사 다도’ 해석의 관건이자 『동다송』의 핵심 부분인 “採盡其妙 ~ 茶道盡矣‘에 대해 저자는 ”차를 딸 때는 그 오묘함을 다해야 하고, 차를 만들 때는 그 바름을 다해야 하고... 차를 다릴 때 중도를 얻어야... “라고 하여, 알아듣기 어려운 예전의 관행적 직역을 되풀이하고 있다. 차를 딸 때 그 오묘함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도대체 ’그 오묘함‘이란 무엇인가? 또 왜 차를 만들 때만 ’그 바름‘을 다해야 하는가? ’그 바름‘이란 또 무엇인가? 포법에서의 ’중정‘은 바름과 관계가 없는가? 저자가 오랜 기간 제다를 해 온 경험을 살려 이 대목을 일반 독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더라면 새 책을 내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또 ”제다는 찻잎의 독성을 중화키는 일“이라는 저자의 종전 주장 되풀이 역시 저자의 제다 및 살청 개념 파악에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中正’ 해석도 마찬가지이다. 中·正의 의미는 『다신전』 ‘泡法’ 항의 “茶多寡宜酌 不可過中失正 茶重則味苦香沈 水勝則色淸氣寡... ”의 ‘過中失正’에서 찾을 수 있다. 동다송에서는 제60행에서 ‘中正不過健靈倂’이라고 중정의 의미를 단언하고, 주석에서 『다신전』 ‘포법’ 항의 ‘不可過中失正’를 인용한다. 여기서 중정의 의미는 ‘健靈倂’, 즉 차와 물의 양이 적절히 조화되어(中) 물의 건강성과 다신의 영험함이 공존하는 차탕의 정상적인 상태(正)를 지칭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이때 ‘중정’은 차를 우릴 때(저자는 “차를 달인다” 또는 “다린다”고 했으나 ‘달인다’는 煎茶法의 용어이고 泡茶法에서는 “우린다”고 해야 한다) 차의 양과 물의 양을 상호 과부족 없이 적절히 하면(中) 차탕이 정상적인 상태(正)가 된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즉 ‘중정’은 차탕의 상태를 지칭하는 부사 또는 형용사로서 이념을 말하는 ‘다도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중정’이 “『중용』에 나오는 ‘중정’과는 다르다”고 하면서, 불교의 ‘중도(中道)’라는 말을 차용하여 차원 높게 해설하고 있다. 그런데 중정 또는 중용과 중도는 다른 개념이다. 중용은 ‘크다-작다’처럼 비교 대립 상황에서 중간을, 중도는 ‘살다-죽다’처럼 모순 대립 상황에서 둘을 지양한 제3의 선택을 의미한다. 또 “『중용』에 나오는 ‘중정’”이라는 저자의 말도 부적절하다. 『중용』엔 ‘중용’과 ‘중화’라는 개념은 있어도 ‘중정’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저자는 ‘다선일미’와 관련하여 “차는 선수행의 장애요소를 해소시키는 ‘정심음료’”라고 말하여 차와 선의 목표지점이 다르다고 하면서도 “차의 眞體는 깨달음의 궁극적 목표인 바라밀”이라고 초의의 싯구를 인용하여 초의의 다도사상을 설명하려고 애쓴다. 다도사상이란 ‘차로써 이루고자 하는 궁극의 정신적 경지‘일 터인데, 차가 선의 한 방편일 뿐이라면 선이 도달하는 정신적 경지 외에 따로 다도사상이 있겠는가?

저자는 초의의 다도사상을 중정, 불이선, 다삼매, 전다삼매, 자연합일 등으로 나열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초의가 지녔던 초의의 정신적 사상은 초의 본인만 알 뿐, 타인이 추론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그래도 굳이 짐작하여 말하려거든 초의가 처했던 당시의 사상적 입장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된다. 그럴 경우 선승인 초의의 다도사상은 선승들 일반 공유의 ’불성‘이라고 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다삼매나 전다삼매는 차를 만들거나 달일 때(전다법)의 방법론일지언정, 차로써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의 정신적 경지를 나타내는 이념어는 아니다.

다산 제다에 대한 경박한 관찰과

“제다사에 제시된 적 없다”는 언어폭력!

『여연스님의 동다송 이야기』는 새로이 해설을 덧붙여 이해가 쉽도록 독자를 배려한 점이 눈에 띈다. 또 친절하게 ‘한글해석’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동다송』을 최대한 쉬우면서도 정확하게 읽어 보자는 것”이라는 서문이 주는 기대와 달리, ‘채진기묘~다도진의’ 부분을 “찻잎을 따는 데 그 묘함을 다하고 만드는 일에 정밀함을 다하여야 한다. ... ”라고 해석하여 기존의 관행인 ‘애매한 직역’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동다송 이야기』는 또 (다산의) ‘구증구포’ 증배법의 오용 사례를 지적하고, “다산이 초의에게 차를 가르치지 않았다”고 강조하였다.

구증구포와 삼증삼쇄는 다산이 각각 특유의 단차(團茶)와 차떡(茶騈)을 제다한,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독창적인 한국의 전통 제다법이라는 게 필자와 동학들의 연구결과이다. 구중구포와 삼증삼쇄에서 ‘曝’와 ‘曬’는 찐 차를 일단 바싹 말렸다는 의미이니, 찐 찻잎을 그대로 절구에 짓찧어 청태전과 같은 당나라적 변질된 떡차를 만들지는 않았다는 증거이다. 다산이 ‘구증(큰 잎)’ 또는 ‘삼증(어린 잎)’을 할 만큼 찌는 횟수에 민감하게 정성을 들인 이유는 시간 측정 계기가 없던 시절에 녹차의 자연성(찻잎에 들어있는 녹향 등 茶神) 보전을 위한 살청에 그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음을 뜻한다. 이른바 ‘초의차’와 같은 덖음 녹차와 다산의 구증구포 또는 삼증삼쇄 증배녹차는 녹향 및 연록색 차탕의 깊이와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이 구증구포 및 삼증삼쇄 증배제다를 실제로 해 본 사람들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그만큼 현철한 실학자이자 창의적 발명가였던 다산의 제다법은 한국 제다사나 차 연구가라면 간과해서는 안 될 과제이다. 그러나 『여연스님의 동다송 이야기』의 공동 저자(나웅인)는 삼증삼쇄가 “세 번 찌고 짓찧어 틀에 넣고 말린다”는, 다산이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 내용과도 동떨어진 추측을 하고 있다. 또 박동춘씨는 “(다산 제다가) 제다사에 제시된 적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다산이 초의에게 차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추론의 자의성과 견강부회

“다산이 초의에게 차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근거로서 저자(나웅인)는 다산이 관련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고 했다. 또 이유원이 다산의 구증구포를 말한 것은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신빙성이 없다고 하였다. 제삼자가 보거나 들었을 수 있는 이야기는 “출처 불명”이고, 다산 본인이 관련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니 “다산이 초의에게 차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주장은, ‘초의 제다’의 독립성을 내세우기 위한 전략임을 감안하더라도 그 근거가 자의적 추론이자 견강부회가 아닐 수 없다. 같은 논리라면 초의가 명대 초배법 소개 외에 자신의 제다법을 기록한 일이 없으므로 초의는 자신의 제다법으로 ‘초의차’를 만든 일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산은 다신계를 결성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계속 제다를 하게 하면서도 초의 뿐만 아니라 여느 제자에게도 제다를 가르쳤다는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다. 즉 다산의 제다 교육은 다중의 제자들을 상대로 한 자발적 현장 집단학습이었지 초의라는 특정인을 위한 개입교습은 아니었다. 즉 제자들이 다산의 제다를 보고 스스로 배우는 것이었으므로 다산이 초의에게 제다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는 일은 변명을 위한 변명찾기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위와 같은 여건에서 제자로서 초의만 다산의 제다를 배우지 않았다면 그것은 초의의 차에 관한 무관심과 태만을 탓할 일이지 다산의 책임을 거론할 일은 아니다. 다산과 초의를 차로써 분리하고자 하는 목적이라면 삼증삼쇄 제다의 장본인인 이시헌이 살았던 백운동에 다산을 따라가 <백운동도>를 그렸던 초의만 다산의 제다를 보지 않았거나 배우지 못했을 이유를 찾아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동다송 이야기』에서는 ‘차의 오미(五味)’에 대해 ‘한의사의 전문적인 식견’을 빌려 색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다도 문헌에 나오는 차의 오미 중 신맛 매운맛 짠맛은 차에는 없는 맛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차의 오미’의 의미맥락을 잘못 짚고 있다. ‘차의 오미’로 일컬어지는 맛은 ‘단맛 쓴맛 짠맛 신맛 감칠맛’이지만(매운맛과 떫은맛이란 맛이 아니라 통감 또는 촉감에 속한다), ‘차의 오미’를 말하는 이유는 ‘오미의 조화’를 강조하고자 하는 것으로서, 차의 특정한 맛 보다는 오미의 조화로운 차맛이 중화(中和)의 아름다움이라는 자연의 속성을 상징한다는 의미이다.

‘초의차’의 실질 및 전통차문화의 진실에 대한

객관적이고 생산적인 토론 필요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차 관련 저술에 있어서 평소에 소기의 목적상 특정의 차나 차문화사상 특정의 차인을 강조하는 주장을 해 온 저자들의 진술은 그들의 일방적인 주장 되풀이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 주장이 확실한 팩트에 의존하거나 면밀한 근거로써 객관성과 설득력을 담보한다면 차문화 발전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 저자의 바램과 달리 그저 일방적인 주장에 그치거나 차문화 발전을 왜곡시키는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두 책 출간을 계기로 ‘초의차’와 차인으로서 초의의 한국 차문화사상 위치를 점검하고, 아울러 ‘한국 전통차’와 ‘전통 차문화’에 대한 객관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두 책은 ‘초의차’와 그 제다법인 명나라 ‘초배법’이 한국 전통차 및 전통 제다법의 전형인 것처럼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초의차’가 구체적으로 어떤 특장점이 있고 ‘초의 제다법’이 명나라 덖음 방식과 뚜렷한 차별성이 있는지 말하지 않고 있다. 박동춘씨는 유일하게 초의 제다의 온돌건조방식을 특징으로 들고, 초의차가 “심폐를 시원하게 한다”는 추사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향과 질을 높이는 데 있어서 온돌건조를 烘焙法보다 정갈한 건조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 오늘날 기준으로 볼 때 再乾 후 온돌건조로 차가 완제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온돌건조가 오늘날에도 유용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한 초의가 『다신전』에 소개하고 『동다송』에 “造茶篇云....” 하여 재소개한 명나라 덖음제다법이 초의가 한국 차문화 중흥을 위해 창안한 한국 전통 제다법이라고 할 수 있는가? 오늘날 누구라도 덖어서 만들 수 있는 이른바 ‘초의차’나 그것을 계승했다는 ‘동춘차’가 중국과 일본에 없는 차류이거나 중국과 일본 녹차를 능가하는 한국 전통차라고 할 수 있는가? 초의차만 심폐를 시원하게 하고 다른 차는 차 성분 공통의 그런 효능이 없다는 것인가? 다산의 구증구포와 삼증삼쇄 제다는 왜 세밀한 분석도 없이 “제다사에 제시된 적이 없다”는 한 마디로 무시해 버리는가? 초의 제다는 그 독창성에 있어서 다산 제다가 <다신계 절목>과 ‘이시헌에 보낸 편지’에 명시된 것 이상으로 제다사에 제시된 적이 있는가?

최성민.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생활예절·다도 전공과정 초빙교수. (사)남도정통제 다·다도보존연구소·산절로야생다원 대표

SNS 기사보내기
최성민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대표
저작권자 © 뉴스 차와문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