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부산여자대학교 이경남.
그림. 부산여자대학교 이경남.

미국독립의 도화선 ‘보스턴 차 사건’

1674년 영국이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네덜란드로부터 뉴암스텔담(New Amsterdam)을 빼앗아 많은 영국인이 그곳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식민지 미국인들은 영국인을 따라 동양의 차를 음용하는 생활을 하면서 젠틀맨이 되려고 하였다. 뉴암스텔담은 이곳을 선물로 받은 찰스 2세의 동생 요크 공의 이름을 따서 뉴욕(New York)으로 개명하게 되었고, 런던을 흉내 낸 뉴욕시는 수많은 커피하우스와 티가든의 설립을 지원했으며, 식민지 미국인에게 영국인의 차 마시기 습관이 그대로 전해졌다. 하지만 유럽 대륙에서 ‘7년 전쟁’이 일어나자 미 식민지에서도 영국과 프랑스가 대립했다. 프렌치 인디언 전쟁이라 불리는 9년간의 전쟁 끝에 영국은 프랑스 세력을 몰아내고 패권 확립에 성공하였다. 전쟁 중 지게 된 막대한 채무와 새로운 영지 지배 비용을 고심하던 영국은 1762년 차에 대한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타운젠트 법안’을 만들어 미 식민지에서 충당하기로 하였다.

이미 차가 일상생활이 된 미국인들은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반발이 거세지자 모든 관세를 폐지하였다. 그러나 홍차를 너무 많이 매입해서 경영 위기를 맞게 된 동인도회사가 문제였다. 영국은 동인도회사에 차 무역의 독점권을 넘겨주는 차 조례를 제정하여 식민지 상인의 차 무역을 전면 중단시켰다. 이러한 영국의 차 조례에 미국 내의 상인들은 크게 반대하였다. 미국인들은 1773년 인디언으로 위장하여 보스톤 항에 정박 중인 동인도회사의 선박을 습격 7,500달러에 상당하는 차 상자를 모두 바다에 던져 버렸다. 이렇게 해서 일어난 일명 ’보스턴 차 사건’으로 인해 독립전쟁이 일어났고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잠시 차 불매 운동이 발생했고 커피 선호도가 높은 라틴계 사람들의 이민으로 커피 수요가 증가했다. 위기를 느낀 홍차 산업이 홍차를 다양하고 획기적인 상품으로 새롭게 변모시키는 과정에서 우연이 가져다준 선물이 바로 티백과 아이스티인 것이다.

티백의 기원

현재 영국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에서 차를 마시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바로 티백으로 우리는 것이다. 티백의 사용은 차호에 잎차를 넣고 우리는 전통적인 방법을 파괴한 사건으로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미국에서 우연하게 발명되었다. 1908년 뉴욕의 차 수입상인 토마스 설리번은 고객들에게 주석 용기에 차 샘플을 넣어서 시음용으로 보냈다. 그러나 설리반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비싼 주석 용기보다 값이 싼 비단 주머니에 1회분의 찻잎을 넣어 보냈는데, 얼마 후 작은 비단 주머니를 더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고객들은 설리반의 의도를 오해해서 비단 주머니까지 찻주전자에 넣어서 끓여 마셨다. 차 찌꺼기를 씻는 귀찮음도 없고, 차를 덜어낼 필요도 없는 편리함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비단 주머니는 후에 거즈나 면으로 최근에는 종이 티백이 되어 전 세계 차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설리반의 발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920년대에 티백이 제품화되어 일반 가정은 물론 레스토랑이나 호텔에 ‘간단하고, 빠르며, 항상 일정하게 우려지는’ 편리성 때문에 티백 수요는 급격히 늘어 갔다.

다국적 차 브랜드인 스코틀랜드 립턴사가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1952년 티백차를 출시하였다. 립턴이 전통과 신용의 기업 트와이닝사에 필적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바로 이 티백을 적극적으로 생산하여 수출했던 결과이다. 티백의 편리함과 실용성은 미국인 다운 발명이지만 당시 영국인들의 미각에는 전통적인 방식이 차의 맛이나 풍미를 더 살릴 수 있는 방식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영국 차 소비의 80% 이상을 티백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의 많은 차인들은 싸 매어진 좁은 티백 안에서 찻잎이 우러나는 그것보다는 넓은 차호 안을 찻잎이 유영하면서 말려 있던 찻잎이 충분히 풀어지면서 특유의 맛과 향이 충분히 우러나는 전통적인 방식을 여전히 선호하고 있다.

아이스티의 탄생

아이스티 역시 티백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발명되었다. 아이스티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의 국제제무역박람회장에서 리처드 블렌친든에 의해 태어났다. 리처드 블렌친든은 찌는듯한 7월의 불볕더위 아래서 뜨거운 인도 홍차를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뜨거운 차는 원치 않고 그냥 지나칠 뿐이었다. 블렌친든은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로 유리잔에 얼음을 채우고 뜨거운 홍차를 부었다. 박람회의 부스는 시원한 아이스티를 마시려고 관람객들이 몰려 왔고 순식간에 블레친든의 새로운 음료수는 전 세계로 퍼져갔다. 이렇게 해서 우연히 탄생한 아이스티는 미국에서 차 소비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가정에는 냉장고에 항상 아이스티가 준비되어 있을 정도로 아이스티의 선호도가 높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홍차를 수입하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파키스탄이며 영국은 4위이다. 북부는 단맛이 없는 아이스티, 남부는 단맛이 있는 아이스티가 유행했고 남부의 아이스티를 스위트 티라고 부른다. 또 미국의 일반적인 음식에 곁들이는 장식 문화인 가니쉬(Garnish)로 음료나 음식 위에 주로 레몬이나 라임, 민트 등을 얹어 낸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페트병에 든 아이스티를 많이 볼 수 있다.

홍차의 나라 영국은 어떠할까? 뜨거운 홍차를 고집해 왔던 영국도 최근 달라진 영국의 음식문화로 인해 대표적인 기업인 트와이닝사에서 새로운 아이스티를 개발 판매하고 있다. 전통의 나라 영국인들은 미국의 발명품들인 티백과 아이스티를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함께 살아나갔기 때문에 새롭고 편리한 것을 더 빨리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스티와 티백을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나라가 미국이다. 시대의 변화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는가 보다. 지금은 영국에서도 티백과 아이스티가 보편화되어 대세인 것이 잘 말해주고 있다.

홍차학개론, 정영숙, 차와문화, 2021, p35.

홍차의 세계사 그림으로 읽다, 이소붙이 다케시, 글 항아리, 2010, p297.

차의 세계사 , 베아트리스 호헤네거, 열린세상, 2012,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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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이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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