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클리퍼 (차 범선). 그림 이경남.
티 클리퍼 (차 범선). 그림 이경남.

그림으로 만나는 차이야기 12

19세기 차의 대중화로 영국인들은 중국에서 들여오는 신선한 차에 대한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고, 1833년 두 세기 반 동안 이어져 왔던 동인도회사의 중국차 수입 독점권이 폐지되고 무역이 자유롭게 되자 차의 자유 경쟁 시대가 열렸다. 동인도회사의 독점 시대에는 중국에서 영국으로 차를 싣고 가는 배의 속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 무역시대가 열리면서 각 국의 배가 청나라에서 런던까지 얼마나 빨리 운송할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되었다. 운송 시간이 단축될 수록 차의 신선도가 더 올라간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당시 동인도회사 소속이었던 육중한 배는 중국에서 어마 어마한 양의 차를 싣고 여유롭게 일 년 여 걸려 영국까지 운송 항해를 했다. 크고 느린 배들은 화물 운송에 주로 사용되어 왔지만 이제 속도가 문제였다. 이들 대부분은 대포를 장착 선체가 둔하고 무거워 미국이 개발한 신형 배를 따라 잡을 수 없었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강력한 신흥 대국으로 부상한 미국 뉴욕의 해운 회사에서 1845년 제작된 새로운 형태의 쾌속 차범선 ‘티클리퍼Tea Clipper’는 중국에서 차를 실어 오기 위해 건조되었다. 매끈하면서도 빠른 속도를 내면서 날카로운 뱃머리와 높은 돛대를 가진 클리퍼형 범선으로 차 무역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1849년 항해법의 철폐로 영국 회사들이 미국 쾌속 범선인 클리퍼를 제작 의뢰했다. 그렇게 제작된 배들은 대서양 위를 날아다니다시피 불티나게 오고 갔다.. 1850년 12월 3일 미국의 오리엔탈호가 홍콩을 출항 런던까지 91일이라는 기록적인 속도로 차를 배달하였다. 동인도회사 소속의 배보다 절반 밖에 걸리지 않았다. 따라서 차 값은 두 배로 받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런던의 조선업자도 미국의 설계를 모방한 자신들의 클리퍼를 만들어 국제적인 경쟁이 시작되었다. 1850년부터 1860년대 까지 영국에서는 해마다 영국인에게 신선한 햇 찻잎을 어느 클리퍼가 빨리 운송하는지 경쟁하는 ‘티 레이스Tea Race ’가 흥미로운 내기 거리였다. 티클리퍼 라고 불리는 쾌속 범선이 영국에서 중국까지 왕복하면서 런던 경매장에 신선한 차를 누가 먼저 갖고 들어오는지를 두고 마치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처럼 경쟁한 것이다. 차 항해는 팬클럽을 가지고 아슬아슬한 내기 도박까지 벌어지며 ‘더 빠른 배’ 에게 프리미엄도 주어졌다. 런던 시민은 템스강 하구에 서서 부두를 가득 메우고 관전하며 응원했으며 누가 가장 신선하고 새로운 차를 맛보는 최초의 인간이 될 지가 엄청난 관심거리였다.

그러나 뜨거웠던 티 레이스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이 무렵 증기 기관의 발명으로 해상에는 범선보다 더 빠른 증기선이 바다를 빠르게 정복하기 시작하였다.. 불과 20여 년 전 동인도회사의 배들을 클리퍼가 정복해 버린 후, 증기선은 또 클리퍼의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시켜 버렸다. 중국에서 런던까지 일 년이 넘게 걸렸던 차 운반 시간을 29일로 줄여 버린 것이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1869년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가로 지르는 수에즈 운하 개통이었다. 운하는 대형 범선이 지나기엔 너무 좁았고 증기선은 가능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커티샥(Cutty Sark)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최신형의 티클리퍼였다. 그러나 수에즈운하의 개통으로 단축된 엄청난 거리의 이점으로 클리퍼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우리에게 영국의 유명한 스카치위스키 이름으로 알려진 커티샥호가 만들어진 것은 1869년 11월 2일 ,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닷새 후 였으니 본격적인 티레이스에 참여해 보지도 못한 비운의 클리퍼였던 것이다.

티클리퍼의 종말과 함께 중국차 시대도 끝나가고 있었다. 이 무렵 영국은 중국산 차를 대체할 차를 인도와 실론에서 재배를 시도했다. 1843년 중국으로 갔던 로버트 포천이 인도로 보낸 차 씨와 차 묘목으로, 인도 아삼 지방에서 차 재배에 성공할 수 있었다. 1872년 인도 다원 규모의 확대로 제다 기계가 만들어 지고, 제다의 기계화로 차 생산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35%의 관세가 붙었던 중국차와 달리, 무관세인 인도 차의 영국 시장 점유율이 급상승 하자 중국차 시장은 사양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더 빠른 증기선이 티클리퍼를 대체하였고, 영국 식민지 거대 다원이 중국의 작은 다원을 대체했다. 증기선은 더 빨리, 더 어마 어마한 양을 실어 나르며, 동양인의 정신문화의 중심이었던 차가 서양인에게 엄청난 이윤을 창출하는 대중적 상품으로 변신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던 것이다.

홍차의 세계사, 그림으로 읽다,이소부치 다케시,글항아리, 2010, p.202

차의 세계사, 베아트리스 호헤네거,열린세상, 2012,p,252

홍차학개론, 정영숙, 차와 문화, 2021, p,40

 

 

SNS 기사보내기
글 그림 이경남
저작권자 © 뉴스 차와문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