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바르와 로모노소프 찻잔이 있는 러시아 찻자리. 그림 이경남.
사모바르와 로모노소프 찻잔이 있는 러시아 찻자리. 그림 이경남.

카라반Caravan의 낭만

홍차의 나라로 널리 알려진 영국과 더불어 또 다른 홍차 강국 러시아는 1700년대부터 중국과 차무역이 시작 되었다. 1727년 러시아와 중국 간 조약을 통해 접경 도시인 카흐타에서 차의 중개 무역이 시작 되었다. 영국과 달리 중국과 국토가 이어져 있는 러시아는 배 대신 주로 수백 마리의 낙타떼를 모는 대상 카라(Caravan)들이 중국의 차를 18,000km나 되는 모스크바로 공급하였다. 다양한 브랜드의 Russin Caravan Tea는 유럽인이 좋아하는 훈연향을 품고 있다. 중국에서 19세기 초 까지 수입된 홍차는 값이 비쌌기 때문에 일반 서민이 마시기에는 부담이 되었다. 1900년대 들어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완공으로 저렴한 가격에 많은 차를 신속하게 들여 오면서 가격이 내려가 러시아는 순식간에 홍차 대국이 되었다. 국가별 홍차 수입량 통계에 따르면 약 18만톤으로 세계 1위~3위 수준일 정도로 홍차 소비 대국이며 미국, 파키스탄과 순위가 해마다 바뀐다. 오늘날 차는 러시아 국민 음료일 정도로 러시아인의 94%가 거의 매일 차를 마신다.

사모바르samovar

러시아에서 주로 사용하는 다구는 ‘사모바르’라는 급탕기인데, 러시아 차문화의 상징적인 도구이다. 사모바르는 러시아어로 ‘스스로(sam) 끓인다(varit)’는 뜻으로 뜨거운 물을 끓이는 도구이다. 아래 쪽에 물이 있고 항상 뜨겁게 유지 시킨다. 위에는 진하게 우린 차가 담긴 작은 주전자가 놓여 있고 마실 때 뜨거운 온수로 농도를 맞춘다. 사모바르는 몽골의 화로를 본 따 만든 것으로 작은 난로 위에 물통과 찻주전자가 함께 올라가 있는 모양이다.

18세기 홍차 보급으로 크게 발달한 사모바르는 모든 러시아인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으며 문학이나 그림에 자주 등장해 왔다. 사모바르는 혹한의 기후에 하루 종일 더운 물을 공급하는 온수기이자 난방기와 가습기의 역할 까지 하였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투명한 유리잔에 차를 마시는데 에나멜과 은으로 세공해서 장식한 컵 홀더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러시아 특유의 인정 넘치는 차문화에 필수적인 사모바르는 주변국가인 터키, 파키스탄, 이란 등에 전파되어 어느 가정 에서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모바르 보다는 주로 전기 포트를 사용한다.

하루세끼 식후 오후 4-5시경 티타임도

러시아인들에게 영국 홍차가 가장 인기가 있다. 그중에서도 ‘립톤(Lipton)’ 과 ‘아마드티(Ahmad Tea)’의 인기가 가장 좋다. 하루 세끼 식후에는 물론 오후 4~5 시 경이나 손님 초대시 티타임을 가지는 러시아인들은 홍차와 케이크, 간단한 식사를 쉽게 즐기는 러시아 찻집 ‘차이 하네’도 많다

러시아에서는 대화와 사교에 촛점을 두고 차와 함께 쿠키, 비스킷, 케이크 등 디저트와 러시아식 수프 보르시 등 식사도 곁들인다. 차에 오렌지 껍질과 향신료를 넣거나 체리 설탕 졸임인 바레네(varenye) 등 과일 잼을 넣어서 마시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홍차를 마시면서 작은 접시에 담은 잼이나 벌꿀을 숟가락으로 찍어 조금씩 빨아 먹거나, 잼을 빵이나 비스킷에 찍어 먹는다. 이때 케이크, 와플, 비스킷 등은 항상 넉넉히 준비해야 손님이 환영 받는다고 느낀다. 러시아에서는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 하면 그 사람의 진짜 얼굴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렇게 차를 마시며, 깊이 있는 대화를 중시하는 차문화 때문에 러시아 가정에 초대 받았을때 마시는 차의 양은 평소의 몇 배가 된다. 이러한 차문화는 어쩌면 러시아 특유의 혹독한 추위와 긴 긴 겨울을 견뎌내는 자연스런 지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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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자대학교 이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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