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차 부흥을 위한 제언 ➁

한국 차계나 차학계에서 한국차·차문화·차산업의 침체현상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은(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도 않지만) 그 원인을 주로 “커피와 보이차의 범람”이라고 말한다. 피상적 진단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그 말에는 한국차의 쇠망과 부흥의 답이 다 들어있다. 한 마디로 ‘한국차의 정체성 상실과 회복’의 문제이다.

‘한국차의 정체성 상실’은 “차는 기호식품”이라는 말이 대변한다. 단적인 예로 ‘00차’ 계승자임을 자처하며 ‘00차’가 한국 전통차의 대표인 양 주장하는 이들도 “차는 기호식품일 뿐”이라고 말하며 “차를 덖는 일은 떫은 맛을 덜어내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차학자들이나 이른바 ‘차의 대가’들이 이렇게 말하니 일반인들이야 당연히 녹차를 기호식품으로 가볍게 인식하여 멀리하고 향과 맛이 자극적이서 기호성이 강할 뿐인 커피와 보이차류를 찾게 된다. 즉 한국차와 차문화를 시들게 하는 병원체는 커피와 보이차의 범람이 아니라, 한국 차계와 차학계 일부에서 한국차의 정체성을 왜곡·말살하는 무지와 몰지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차가 커피와 같은 기호품이라면 쓰디 쓴 커피는 잘도 마시는데 그보다 덜한 한국차의 떫은 맛은 왜 없애야 하는가? 이런 단적인 일면을 염두에 두고, 여기에서 왜 한국차, 특히 한쪽에서 한국차의 대표라고 내세우는 ‘초의차’를 비롯한 전통 녹차를 기호품 반열에 떨어뜨리는 일이 한국차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인지를 제다사(製茶史) 등 차문화사적 관점과 식품분석학적 맥락에서 살펴보자.

제다사製茶史상 최고의 차는 ‘건강·수양음료’인 녹차

차의 고전 『다경』에 나오는 당대(唐代)의 제다법-차종류-차의 형대-찻그릇의 주류는 증제(蒸製)-녹차(綠茶)-떡차(餠茶)-청자(靑瓷)이다. 우선 당시엔 요즘과 같은 종이나 질좋은 포장재가 없어서 찻잎을 짓이겨 떡모양으로 만들고 단단하게 말려두는 방법이 최선의 보관·운반법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생잎을 짓이겨 놓으면 쉽게 갈변(카테킨 산화)돼 향과 탕색에 있어서 바라지 않던 괴상한 차가 돼버리므로 찻잎을 쪄서 살청을 했다. 즉 제다와 차종류에 있어서는 일찍이 차의 좋은 본래 성분을 보존하기 위해 증제-녹차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찧어서 떡(餠茶)이나 덩이차(團茶)로 만든 것은 속속들이 건조가 되지 않아 곧 부패 또는 갈변돼 버렸다. 그렇게 곰팡이가 끼거나 누렇게 색깔이 변해 거북스럽게 변질돼버린 것이 요즘 복원했다고 하는 것과 같은 형태의 차종류인 옛 떡차류이다. 그리하여 당대 차인들은 차탕색만이라도 녹차색으로 보이게 하도록 찻잔은 월주요 청자를 선호하였다. 이게 모두 『다경』 ‘제다’ 및 ‘찻그릇’ 항에 나오는 내용이다.

특히 채소가 귀하고 긴 겨울을 보내야 했던 티벳이나 몽골 등 북쪽 지역에서는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에서 본 것처럼 채소의 영양성분 대용으로 운남성 보이의 차를 말과 바꾸어 대량 실어갔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런 ‘보이차’는 질 보다는 양 위주로 한꺼번에 많이 가져가야 했으니 살청을 대충하거나 생찻잎 상태로 구겨넣었을 것이다. 그것을 멀리 가져다 ‘건습보관’ 개념을 떠나 오랜 기간 잔득 쌓아놓았으니 두엄처럼 곰팡이가 끼고 발효돼 차탕과 차향이 묵은 초가의 처마(썩은새)에 내리는 빗물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곳 사람들은 야마젖과 같은 유제품(乳製品)을 타서 마셨다.

‘반발효차’가 아니라 산화·변질된 녹차인 떡차餠茶와 덩이차團茶

그러면 오늘날 ‘기호식품’으로서의 차의 대명사와 같은 복건성 무이암 대홍포와 같은 잎차 형태의 ‘반발효차’는 어떤 계기로 나오게 됐는가? 제다사에서는 민초 출신인 명(明) 태조 주원장이 당시 유행한 증제 떡차인 연고차 제다의 민폐를 막기 위해 칙령을 내려 초제(炒製, 덖음) 산차(散茶, 떡차가 아닌 잎차 형태)를 만들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이때는 한지류 종이도 나오고 제법 포장재가 개발되었을 터이다. 명말청초에 이르러 어떤 경우엔 찻잎을 따서 바로 덖지 못하고 시간을 지체하다 보니 찻잎이 갈변(카테킨 성분이 산화)된 것을 덖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런 차에서 당대(唐代)의 불순하게 갈변된 떡차류와는 사뭇 다른, 상쾌하고 감미로운 향이 발산되었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찻잎을 잎차 상태에서 일부러 어느 정도 산화갈변시켜서 도중에 덖는 ‘반발효차’ 제다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반발효차가 차의 기호식품화를 촉진한 것은 반발효차는 차향이 녹차와 다르고 변질된 녹차성 떡차와도 사뭇 다르게 후각을 자극하는 강도가 세고 떫은 맛은 덜했기 때문이다. 즉 반발효차 제다는 덖음제다법 개발에 힘입어 녹차로 대변되는 차의 ‘건강·수양음료’로서의 정체성을 ‘기호음료’로 변질시킨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차가 인간에게 주는 이로움이나 차가 다른 음료에는 없는 ‘다도(茶道)’라는 수양론적이고 문화적인 기능으로써 차별적 존재가치를 유지해 온 역사와 전통에서 그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나라 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녹차가 차의 주류로서 선호된 데는 흔들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녹차는 차의 3대 성분인 카테킨(항산화작용, 면역력 증진 효능등 건강기능), 테아닌(정신안정 효능으로 잡념제거의 수양기능). 카페인(각성효능으로 ‘깨달음’을 얻게 하는 수양기능)을 잘 보존하고 있고, 그렇게 하도록 제다된 차이다. 『동다송』 ‘다도’ 규정에서 제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채진기묘, 조진기정...’은 녹차 제다에서 찻잎이 지닌 신묘한 정기인 차의 3대 성분이 유실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이다.

옛차 복원에 올인하는 지자체와 차학계의 무지와 부도덕성

위와 같은 제다사의 교훈이나 차가 지닌 월등한 효능과 차별성의 차원에서 볼 때 한국 차학계나 차계에서 녹차로 대표돼 온 한국차를 한낱 ‘기호식품’ 반열에 추락시킨 것이 한국차 쇠퇴의 원인이라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이는 단지 기호식품일 뿐인 ‘반발효차’ 계통이나 보이차류가 한국차의 주류가 되려 하거나 또는 옆으로 끼여들어 한국차의 정통이자 정체성을 대표하는 전통 녹차를 밀어내는 일의 심각성에 대한 경고이기도 한다. 또 일부 차학계와 지자체가 일찍이 폐기된 당나라 떡차류를 복원하는 일의 부당성을 드러내 주면서 그런 일에 부화뇌동하는 학자들의 학구적 도덕성 회복을 촉구하는 의미를 갖는다.

최근 코로나 난국에서 하동 등지 차산지에서 녹차의 면역력강화 기능을 강조하여 차를 ‘코로나를 이기는 건강음료’라고 마케팅 포인트를 잡은 것은 현명한 일이다. 이는 녹차에 카테킨성분이 잘 보존돼 들어있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녹차의 떫은 맛은 카테킨이 내는 것이다. 이처럼 카테킨은 녹차의 차별성과 우월성을 대표하는 것이고, 카테킨의 산화발효를 막아 차탕에 온전히 발현되도록 하기 위해 차를 살청하는 일이 차를 덖어 녹차를 제다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녹차의 떫은 맛을 나쁜 것으로 치부하여 “떫은 맛을 없애기 위해 차를 덖는다”거나 “한국차는 맑고 시원하다”고 말하니, 그것도 한국 전통차를 운운하는 차계의 명망가 또는 차학자라는 이들이 그러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다.

차의 문화적 차별성인 ‘다도茶道’는 오직 녹차로써 가능

녹차의 정체성 중에서 가장 뛰어난 차별성은 ‘다도’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동양사상 수양론에서 도(道)는 수양언어이다. 다도는 다른 음료가 갖지 못하는 차(특히 녹차)만의 독특한 문화정체성이자 차의 장점을 이야기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다. 수양은 정신적 깨달음을 지향하고, 다도는 차로써 깨달음을 얻는 일이다. 이는 차의 테아닌과 카페인 성분의 합작으로 이루어진다. 차의 성분분석 연구결과에 따르면 테아닌은 정신안정 효능을, 카페인은 각성 효능을 발휘한다. 차를 마셔서 테아닌의 신경안정 작용을 이용해 정신을 지극히 안정된 상태(숙면시의 뇌파 상태)에 이르게 할 수 있고, 그 상태에서도 카페인의 각성 작용으로 숙면에 빠지지 않고 밝게 깨어있는 정신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우주 자연의 섭리와 근원적인 마음(유식불교의 아뢰야식)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의 경지를 지눌스님은 ‘적적성성寂寂醒醒’, 원효대사는 ‘성자신해(性自神解)’, 유가에서는 ‘허령불매(虛靈不昧)’라 했다. 차를 마심으로써 이런 최상의 정신상태에 쉽게 다가갈 수 있기에 선현들은 차를 한낱 기호품으로 대하지 않고 도를 닦는 길의 도반(道伴)으로 삼은 것이다.

이처럼 다도는 차의 3대 성분인 카테킨·테아닌·카페인이 제다과정에서 잘 보전된 녹차로써만 가능한 일이다. 한국 제다사적으로도 덖음 잎차인 이른바 ‘초의차’는 물론 ‘쪄서 곱게 갈아 돌샘물로 짓이겨서 떡처럼 빚어 죽처럼 타 마신‘ ’다산차떡茶(餠)‘이 모두 녹차였다. 선현들은 테아닌 성분이 많고 카테킨 성분이 적은 한국의 온대소엽종 찻잎이 건강기능인 카테킨 성분을 잘 보존시키면서 수양기능인 테아닌 성분을 활용하는 ’건강·수양음료‘로서의 녹차 제다에 절대적으로 유리함을 아셨던 것이다. 또 카테킨 성분이 부족한 한국의 온대소엽종 찻잎으로는 카테킨 산화를 주 요인으로 하는 반발효차 제다에 불리하다는 사실도 인지했을 것이다. 이는 녹차를 기호성을 포함한 기호식품 이상의 차원 높은 음료로 선전하고 마켙팅 포인트를 잡아야 하는 이유이자, 카테킨 성분이 부족한 한국 찻잎으로 반발효차나 보이차류를 만드는 일이 허구임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보이차나 커피 따라놓고 ‘다선일미茶禪一味’?

요즘 사찰에도 커피와 보이차 바람이 한창이다. 커피자판기가 설치된 절도 있고, 객(客)에게 녹차 보다 보이차를 내주는 스님들이 많다. 상상컨대 혹시라도 어느 큰 절 주지스님이 거대한 차탁 위에 보이차 따라놓고 근엄하게 “다선일미(茶禪一味)... ” 운운한다면 “불교가 한국 차문화의 중심”이라고 주장한 이들은 뭐라 할까? 또 혹시라도 깊은 골짜기 토굴에서 독거수행하는 젊은 선승이 “끽다거(喫茶去)!”라고 하신 조주선사 초상 밑에서 즉석 커피를 갈고 있다면 조주스님께서 “불교의 현대화”라 하실까?

결론으로, 녹차는 차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차로서 단순한 기호식품 이상의 ‘건강·수양음료’라는 정체성을 갖는다. 한국차의 쇠망은 한국차의 대표인 녹차의 이런 특장점을 망각하고 ‘기호식품’ 수준인 다른 차들과 혼동하거나 섞어 그 저급한 반열에 추락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저급한 기호성’이라는 말은 반발효차에서 후발효차(보이차류)에 이르는 산화·발효 계통의 차류로 갈수록 차의 주요 성분인 카테킨과 테아닌이 줄어든다는 데 근거를 둔다. 그런 차류는 ‘건강·수양음료’로서 차의 차별적이고 월등한 정체성 보다는 단지 자극적인 향으로써 주로 일순간의 말초적 호감과 허영심만을 충족시키는 기호식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 차계와 차학계는 커피와 보이차가 한국 전통 녹차를 밀어내고 있음을 목격하면서도 그것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대책수립에 대해서 속수무책이다. 속수무책일 뿐만 아니라 ‘AI시대의 한국 차문화’ ‘중국 차문화의 어제·오늘·내일’(최근 한국차학회 학술대회 주제들)을 읊거나, 일부에서는 폐기 박제돼 고리짝에 들어있거나 박물관 전시품이어야 할 옛차를 아무런 근거자료도 없이 ‘복원’한다고 쇼를 벌이고 있다. 한국차 부흥을 위해 무엇보다 한국 차학계와 차계의 각성이 절실한 이유이다.

예전의 경향은 더했겠지만 요즘 차의 본향 중국 차소비량의 60%~70% 이상이 녹차류이다. 일본 차류는 전부가 녹차라고 할 수 있고, 녹차의 영어 명칭인 일본 ‘그린티’는 ‘일본 다도’라는 문화적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세계적 브랜드가 되었다. 왜 다산(茶山)과 초의(草衣), 『다부(茶賦)』와 『동다송(東茶(頌)』이라는 걸출한 차인들과 고전(古典)을 보유한 한국의 차계와 차학계는 ‘건강·수양음료’인 전통 녹차를 사지(死地)로 내몰고, ‘기호품’에 불과한 산화 · 발효차류 맹종(盲從)의 길로 대중을 유도하고 있는가?

최성민(철학박사.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예·다학과 강사.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 사단법인 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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