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한국 차와 차문화가 침체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커피자본주의의 무자비한 침투 및 맹목적 보이차 추종 등 직접적인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한국 차계와 차학계의 잘못이 없는지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성찰과 자기 반성의 관점에서 한국 차와 차문화를 되살릴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위한 문제 제기로서 ‘한국 차 부흥을 위한 제언’ 시리즈를 시작한다. 토론의 활성화와 건강성을 위해 이에 대한 반론이나 같은 시리즈 제하의 다른 제언을 환영한다.)

다예茶藝, 다례茶禮, 다도茶道 구분 못해 질책당한 한국 차학계

모든 지속가능한 문화와 문명의 근저에는 그것을 유지 지탱시켜 주는 뼈대로서 기반 이론 및 그것을 개발하여 제공하는 학문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이는 차문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차문화의 지속가능을 위해서는 그것을 견인하는 오롯한 차학이 있어야 한다. 한국에도 한국차학회가 있어서 분기별로 학회를 열고 논문집도 낸다. 그런데도 오늘날 한국 차문화와 차산업의 실정은 왜 이토록 어두운가? 단언컨대 역대 한국차학회 회장을 비롯하여 한국차학회 어느 누구도 지금까지 한국 차의 현실을 면밀히 분석하여 시의적으로 적절한 학술적 대안을 충분히 제시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단적인 예로서, 2021년 12월 2일 대구 계명대에서 운영하는 학술강좌 <목요철학>에서 「차문화 학술 심포지움」으로 ‘한국 차문화와 대중화’라는 주제의 발표회가 있었다. 이 모임에서 발표된 논문과 발표자들의 학구적 수준은 ‘목철tv' 유투브를 통해 볼 수 있으므로 여기서 논할 필요가 없겠다. 다만 차인이자 한국 차와 차문화를 공부하는 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날 발표회를 보고 당한 민망함을 떨궈버리기 위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발표회 말미 질의응답 순서에서 다예, 다례, 다도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이 나왔다. 그런데 발표자들의 대답이 제 각각일 뿐만 아니라 누구 한 사람 알맹이 있는 답변을 하지 못하고 버벅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나의 질문에 대한 학술적 답이 차학자라는 사람들 마다 다르다는 것은 한국 차학계에서 한국 차의 중요한 명제에 대해 학문적으로 정리돼 있지 않다는 것이고, 이는 한국 차학자들이 여태 한국 차학의 기본 과제(또는 용어)에 대해 명확한 견해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국 차학계 전반의 학문적 후진성과 나태함을 보여주는 증표라 할 수 있다. 어떤 발표자는 “일본 다도는 영국 홍차를 수입하면서 수출품으로 개발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 사회자가 이런 동문서답 또는 황당무계함을 대하기가 안타까워서인지 “학계에서 이런 문제를 좀 규명해서 한국 차문화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밝혀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이게 점잖게 말해서 사회자의 부탁이거나 주문이라는 것이지, 차학 외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한국 차학계나 차인 또는 차학자연하는 이들은 “한국 차학자들은 다예, 다례, 다도의 의미도 모르느냐?”라는 조롱성 질책으로 삼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다예·다례·다도는 차계와 차학계에서 한·중·일 삼국 차문화의 구별을 말할 때 흔히 쓰는 공식용어라 할 수 있다. 중국 차문화는 ‘다예(茶藝)’, 한국 차문화는 ‘다례(茶禮)’, 일본 차문화는 ‘일본 다도(日本 茶道)’라는 말로 각각 대표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차학계는 현행 ‘다례’의 내용이 어떻고, ‘한국 다례’라는 말이 국제 사회에서 한국 차문화의 수준을 어느 자리에 매김하고 있는지를 일찍이 살펴보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이에 관한 진술을 하고자 한다.

중국 다예茶藝- ‘공부차工夫茶’에서 유래

‘다예(茶藝)'라는 말은 일본의 '다도'와 구별하기 위해 1970년 종반 대만에서 본격 부르게 된 명칭으로서 차에 대한 지식과 기능을 행다(行茶)에 발휘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일본 다도‘의 수준을 능가한다는 함의를 지닌다. 여기서 ’예(藝)‘는 지식인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素養)을 말한다. 『소학(小學)』에서는 중국 주대에 행해지던 교육과목으로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육예(六藝)‘라 하였다. 이들은 모두 군자를 지향하는 선비가 갖춰야 할 수양의 덕목들이었다. 따라서 ’다예‘라는 말의 “예(藝)’ 개념에는 수양의 의미도 들어있다.

다예(茶藝) 개념은 명말청초에 다향(茶鄕)인 복건성의 ‘공부차(工夫茶)’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명말청초에는 초제법(炒製法)의 발전과 더불어 복건성 무이암 반발효차의 유행에 따라 차 우림법과 다기들이 진화되었다. 광동성 북부 조주·산두(潮州·汕頭)에서는 ‘공부차(工夫茶)’라고 불리는 이른바 ‘조산다법’이 유행했다. 현재 공부차 우림법은 중국 국가비물질문화유산(무형문화재)이 되어 있다. 공부(工夫)란 ‘세밀하게 배우고 익힌다’는 뜻이다. 그런점에서 ‘공부차’란 청대에 음다와 행다에 있어서 정밀한 지식, 기능, 예술성을 강조한 것이다. 즉 일본 다도가 차의 색, 향, 미 등 본질을 중시하기 보다 행다의 격식과 질서를 존중하는 것에 비해 공부차는 차와 다구의 선택, 물 끓이기, 차 우리기, 차의 품평에 이르기까지 차의 본질 구현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조주공부차’ 또는 ‘조·산공부차’ 양태가 바로 ‘중국 다예’라고 할 수 있다.

다예의 이러한 특징과 차별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다예(공부차)에서 사용되는 찻잔 ‘문향배(聞香杯)’이다. ’문향(聞香)‘이란 차향을 단순히 감각적으로 맡는 게(廳) 아니라 차향을 마음으로 듣고 차향이 우주의 청신한 기운을 담아 전해주는 기(氣)로서의 속성을 이해하고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즉 ’문향‘이라는 말에도 수양의 의미가 들어있다. 이렇게 보면 다예의 ’예(藝)‘ 자는 앞의 ’육예(六藝)‘의 ’예(藝)‘ 자와 마찬가지로 지식 함양 및 수양의 의미가 들어있고, 따라서 ’다예‘는 단순한 ’차 우리는 기능‘만이 아니라 진정한 수양론적 ’다도‘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 다례茶禮- 봉건적 시대 계급질서 유지 강조한 조선 성리학의 잔재

‘다례(茶禮)’ 또는 ‘차례(茶禮)’라는 말 자체는 본래 제의(祭儀)에서 유래한 말로, 봉건적 권위주의시대의 계급질서 유지를 강조한 조선 성리학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예(禮)’는 공자가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한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인의 자유에 우선하는 ‘사회적 질서’를 뜻하는 말로서, 개인적 감정이나 의사를 억누르고 공적인 질서를 존중하자는 의미가 들어있다.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는 교육론 또는 수양법으로 예를 강조하였다. 외적인 강제로써 인간의 심성을 제어한다는 의미로서 집단적, 전체주의적 경향이 들어있는 게 유학의 ‘예’ 개념이다. 한국의 다례에서 알 수 있듯이 ‘규방다례’ ‘선비다례’ 등이 모두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의 계급질서를 강조했던 성리학적 행다 양식이다.

수년전에 타계하신 경주 사등이요의 도예가 무초 최차란(崔且蘭, 1926~2018)) 님은 저서 『한국의 차도』에서 1970년대 후반 한국차인회 결성 과정의 웃픈 사연을 말하고, 거기에서 비롯된 오늘날 한국 다례의 기형화(奇形化) 현상을 일찍이 경고했다.

“언제부터인지 차문화의 맥이 끊겨버리고, 그 맥을 다시 잇자고 필자가 1979년 박동선씨에게 한국차인회 설립을 건의한 것인데, 저마다 차인이라고 나타난 사람들은 순리며 도리의 뜻을 해명하지 못한 채 차도라는 간판을 걸고 모르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을 가르치니 모두가 모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 차문화의 현주소이다. 한국차인회 설림 후 차인회라는 명칭을 업고 차도(茶道)는 우후죽순처럼 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도의 원리를 모르는 채 행해져 다도라고 할 수 없었고 모든 것이 잡차(雜茶)가 돼버린 것이다.”

진정한 수양론적 ‘다도’의 수행을 위해 한국차인회 설립을 제안했으나 다도가 아닌 ‘잡차’, 즉 각종 형식의 의미없는 다례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최차란 님의 말을 더 들어보면 자신이 당시 한국차인회에 가입한 차인회들의 행다 양식을 진정한 의미의 ‘다도’로 통일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회원 차인회들이 각기 자신들의 다례 형식을 고집하여 뜻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즉 현행 한국의 ‘다례’라는 말은 제사의례인 ‘차례(茶禮)’에서 나왔으나 한국차인회 설립과 더불어 회원 차인회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차별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꾸민 형식이라는 것이다. 최차란 님은 그것을 ‘잡차’라고 했다. ‘순리’ 또는 ‘도리’ 등 본래의 수양론적 의미가 배제된 무의미한 행다 양식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점이 오늘날 늘 한국 차문화의 정체성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한국 차문화는 전통과 단절된 채 70년대 말 ‘다례’라는 정체 불명의 비문화적이고 각종 차인회의 집단이기적인 요소가 개입된 결과 오늘 혼돈의 늪에 빠져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전통 차문화의 흐름에 진정한 수양론적 다도의 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재(寒齋) 이목(李穆)이 『다부』에서 주창한 ‘오심지차(吾心之茶)’는 물질적 차를 정신 차원의 차로 승화시킨 수양다도의 결정적 국면을 표현한 말로 일컬어지고 있다. 또 초의선사가 『동다송』 제60행의 주석에서 ‘採盡其妙 ...... 泡得其中’이라고 표현하여 규명한 ‘다도(茶道)’는 숭유억불 시대에 유가의 최고위 지배층인 홍현주에게 그들의 정서에 맞게 유가의 최고이념인 ‘성(誠)’을 다도정신으로 설명한 것으로서, 이목의 ‘오심지차’와 함께 한국 수양다도의 정체성과 한국 다도정신을 잘 아우러 천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본 다도茶道- ‘화和·경敬·청淸·적寂’의 다도정신을 표방하는 ‘수양 다도’

‘일본 다도’는 무가(武家)의 호화스런 서원차(書院茶)에서 시작되어 막부(幕府) 시기를 거치면서 불교의 수행(修習行道) 정신 및 일본 전통 신도(神道)적 존숭(尊崇) 정서와 예(禮)를 강조하는 유교의 가치관 등이 결합돼, ‘와비’(단순미)와 검박 겸허를 좇는 초암차(草庵茶)로 발전돼 오면서 ‘화(和)·경(敬)·청(淸)·적(寂)’의 다도정신을 표방하는 ‘수양 다도’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 다도에서는 중국 공부차의 다예에서 보는 것과 같은 차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하는 경향은 찾을 수 없고, 차는 단지 다중 모임인 차회(茶會)를 열어 외형적 형식과 질서를 강조하는 집단 접빈다례(接賓茶禮)의 소도구의 하나로 이용되는 측면이 강하다. 이는 무신정권 시대 사무라이들의 거친 정서를 순화시키고 전국통일 과정의 혼돈된 질서를 정돈하는 데 다도(茶道)의 형식을 이용하고자 한 반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목적이 개입된 결과이기도 하다.

최성민(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생활예절·다도학과 초빙교수. 사단법인 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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