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차잎을 햇빛에 익히고 그늘에 시들리고 반복하여 완성 된 차를 우려내면 붉을 뿐만 아니라 배꼽 아래 단丹전에 뜨거운 기운이 돌고 에너지가 생긴다. 내가 선택한 마로丹차는 그런 의미를 부쳐 만들었다. 차 모양의 형태가 아닌 차의 에너지를 이야기 하고 싶었다.
초록 차잎을 햇빛에 익히고 그늘에 시들리고 반복하여 완성 된 차를 우려내면 붉을 뿐만 아니라 배꼽 아래 단丹전에 뜨거운 기운이 돌고 에너지가 생긴다. 내가 선택한 마로丹차는 그런 의미를 부쳐 만들었다. 차 모양의 형태가 아닌 차의 에너지를 이야기 하고 싶었다.

차를 만들겠다고 따로 배운적이 없다. 그림도 그랬고 음식도 그랬다. 마음이 일어나면 일단은 부딪쳐 보는 성격이다. 뭐든 궁금한 일이 생기면 실행에 먼저 옮겨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밥을 먼저 지어본다. 실패도 있고 완성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적절하냐 부적절하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는 진 밥을, 누구는 된 밥을 좋아하고, 누구는 죽을 즐겨먹는 다. 그래서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기록에도 그렇게 연연하지 않았다. 다만 들여다는 본다. 추측을 할 수는 있는 대목이 많다. 요즘 같이 동영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록하는 사람의 표현 방식이 다르다 보니 기록이라 해서 그것이 전통이다 정석이다 하고 정의를 내리는것도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고려시대의 기록에 적힌 덩어리차가 어떤 맛을 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조선시대의 차가 무슨 맛을 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추측하여 추정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차 맛의 정석이라고 주장 해서도 안된다.
고려시대의 기록에 적힌 덩어리차가 어떤 맛을 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조선시대의 차가 무슨 맛을 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추측하여 추정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차 맛의 정석이라고 주장 해서도 안된다.

차 만드는 것이 그렇다. 우리 차와 우리 전통을 사랑하는 어떤 차인이 < 고려단차>를 고증 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서너번 들었다. ‘단차’. 고려시대부터 사용 해 온 단어였다는 것을 그 분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여기 뒤적거려 알아보니 단차는 내가 사용하고저 했던 단丹차가 아니고 형태를 말하는 둥글 단團을 사용 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고려시대 차문화의 기록을 보면 차 모양의 형태의 이름을 부쳐 떡 병餠차 혹은 엽전葉錢차를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차를 만드는 방법의 기록은 없다고 전했다.

예부터 내려오는 차문화 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가 가장 왕성 했다고 적혀있고, 임금의 하사품이 차라고 할 만큼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대궐 안에도 대궐 밖에도 나라에서 관리 하는 다방이 있었다 하니 가히 짐작이 간다. 그렇게 왕성 했다는 차 문화 몰락의 원인이 찻자리에 사용 되는 도구들의 허영과 사치가 주 요인이 되었다 한다. 참 아이러니 하다.

초의와 다산, 추사가 함께 했던 조선시대의 차 이야기 기록을 종종 읽었었다. 최근 고려시대 차문화를 보며 매우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덩어리를 표현하는 단團차와 병餠차, 엽전葉錢차를 만들어 마셨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만드는 방법의 기록은 남겨지지 않았다는 대목에 눈길이 간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 기록을 통해 여러 가지 사안을 추측해 검증한다. 차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누구도 호언장담 할 수 없는 대목이 과거다. 덩어리로 만든것은 인정되나 현재 단團차라고 이름부쳐 만든 차가 고려시대 고려 단團차라고 주장 하는것도 무리다. 그런데 왜 많은 제다인들은 그들이 만든 차가 꼭 전통차의 표본이라고 고집하는가. 그때도 지금도 각자의 노력으로 동 시대 사람들이 좋아하는 차맛을 찾아 만들어 내면 될 것을 왜 자신의 차만 전통 차이어야 하는가?

덩어리로 만든것은 인정되나 현재 단團차라고 이름부쳐 만든 차가 고려시대 고려 단團차라고 주장 하는것도 무리다. 그런데 왜 많은 제다인들은 그들이 만든 차가 꼭 전통차의 표본이라고 고집하는가. 그때도 지금도 각자의 노력으로 동 시대 사람들이 좋아하는 차맛을 찾아 만들어 내면 될 것을 왜 자신의 차만 전통 차이어야 하는가?
덩어리로 만든것은 인정되나 현재 단團차라고 이름부쳐 만든 차가 고려시대 고려 단團차라고 주장 하는것도 무리다. 그런데 왜 많은 제다인들은 그들이 만든 차가 꼭 전통차의 표본이라고 고집하는가. 그때도 지금도 각자의 노력으로 동 시대 사람들이 좋아하는 차맛을 찾아 만들어 내면 될 것을 왜 자신의 차만 전통 차이어야 하는가?

차를 배우고 싶고 알고 싶으면 그냥 자꾸 여기 저기서 만든 차를 마셔보는 일이 최고의 공부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여러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덩어리 차를 만들어 내는 걸로 알고 있다. 각자 이름도 단차라고 부쳐서 시중에 내 놓았다. 한자로 어떤 단 자를 사용 하는지 알 수는 없다. 내가 이름 부친 마로단차는 차의 형태로 부치는 단團차가 아니다. 붉을 단丹자는 푸를 청靑 글자에 뜬금없이 붉을 丹자가 부수로 달려있다. 원래 글자를 만들어 낼때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 만들었다. 왜 푸를 청자에 붉을 丹을 부쳤을까.

초록 차잎 그대로 끓여 마시면 독처럼 속을 불편하게 한다. 초록 차잎을 햇빛에 익히고 그늘에 시들리고 반복하여 완성 된 차를 우려내면 붉을 뿐만 아니라 배꼽 아래 단丹전에 뜨거운 기운이 돌고 에너지가 생긴다. 내가 선택한 마로丹차는 그런 의미를 부쳐 만들었다. 차 모양의 형태가 아닌 차의 에너지를 이야기 하고 싶었다. 차는 신령스러운 기운을 가지고 있다. 고려시대의 기록에 적힌 덩어리차가 어떤 맛을 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조선시대의 차가 무슨 맛을 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추측하여 추정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차 맛의 정석이라고 주장 해서도 안된다. 차를 공부하고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차를 마실 때 목넘김이 자연 스러워 잘 넘어가고, 한잔 마시고 나면 금방 또 마시고 싶어지는 차가 잘 만들어지고 좋은 차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내 몸이 뜨거워 지는 차가 기운이 좋은 차라고 말 해주고 싶다. 한자리에서 많은 양의 차를 마셔도 두통이나 메스꺼움이 없는 차가 좋은 차라고 말 해주고 싶다. 차를 어렵게 접근하지 말고 한 자리에서 같은 차를 스무잔 이상 마셔도 속이 불편하지 않고 싫증 나지 않는 차는 정말 좋은차다. 좋은 차는 그냥 꿀꺽 꿀꺽 넘어간다

홀로 차를 자주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몸과 마음이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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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다연 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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