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종일 비가내려 참 고맙다. 봄 한 철 차 살림 끝나니 남새밭에 심은 푸성귀를 돌봐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 한달 전에 심은 고추와 옥수수, 오이, 가지, 호박 모종에 밑 거름을 했다. 빠꾹이는 종일 비가 내리는 숲 속에서 처연하게도 울어 쌓는다. 지난 봄에 많은 분들이 참여한 펀딩으로 실행에 옮긴 고급티백 < 마로단차> 포장 디자인 작업이 마무리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다음 주면 완제품이 나온다. 나에게 40년 전 차를 처음 마시게 해 준 어른스님께 소식을 전했다.
나 만큼이나 좋아하신다. 차를 만들고 연구한 자료를 기록으로 남기라는 조언을 하셨다. 따로 기록이라고 남긴것은 없지만 들숨 날숨으로 들이쉬는 숨 처럼 차의 기록은 나에게 그런 것이다. 기업에서도 해 낸 적 없는 고급형 티백 차, 그것도 우리나라 우리 땅에서 자란 순수 찻잎으로 만든 개별포장 티백차를 만들었다는 점이 뿌듯하다. 이런 인연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차와 더불어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삶을 할 수 있다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삶이란 긴 여행이다. 생각 했던 대로 계획 했던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눈 앞에 주어진 일이 가장 소중하다는 일이라는 것을 나이를 먹으면서 더 알아차린다. 때로는 슬픈 일로, 때로는 고맙고 아름다운 일로, 때로는 황당한 말도 이해도 하기 어려운 일로 내게 온다. 모두가 가르침이라는걸 알게 된다. 그래서 한걸음 한 걸음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사는 것이 살아 가는 것이 누구에게나 녹녹하지 않다. 평생 살아 온 시간 중에 3분의 2를 차와 함께 나를 찾아 여행 했다. 그 여행은 수행의 길이었다. 나를 찾아 나 선 여행 길에 차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차가 고마운 것이다. 찻자리에서 지켜보는 들숨 날숨은 한 올 한올 나를 점검한다. 긴 호흡하는 시간이다.긴 치유 시간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내가 더 예뻐 ?. 꽃이 더 예뻐 ?”
꽃도 너도 차 만큼은 예쁘지 못하다. 오래전 카톨릭 교황이 선종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교황이 남겼다는 말씀이 텔레비전에서 자막으로 흘렀다. 다는 기억 못하지만 글귀가 마음에 박혀 나에게 그 어떤 교훈 보다 큰 가르침이 된 내용이 되었다.
“부자나라 미국이 부자라서 싫어 하는것이 아니라. 이웃 나사렛 마을 가난 한 사람을 돌아 보지 않아서다.”
그 말이 뇌리에 꽂혔다. 차인 이라고 자처하고 온갖 고고한 표정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이 나에게 그렇게 비칠 때도 있다. 나눔보다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2012년에 다녀가고 소식 없었던 그녀의 소식을 하필 부처님 오신 날 듣게 되었다.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환한 미소를 가진 그녀가 보내 준 선물을 다시 꺼집어 내 본다. 그녀가 보내 준 선물이 가난한 여인 난타가 부처님 전에 밝힌 빈자의 등불처럼 내 마음을 밝혀준다. 차 한 잔의 인연은 한잎 한잎 찻잎처럼 소중하고 고마운 인연이다.
그대 부디 평안한 세상에서 고이 잠드소서 기도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