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에 머리를 숙일 뿐

나의 수행 나의 차 4 차밭 가는 길 마로다연 법진l승인2021.04.17l수정2021.04.1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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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가에 야생 갓 꽃이 유채꽃 처럼 피어 노란 파도처럼 일렁거리는 눈부신 날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 강렬한 재즈나 블루스곡으로 스피커 볼륨을 높이고 차밭으로 달린다.

차 덖는 사월이면 매일 하루 한번 왕복 두 시간을 섬진강변을 달려 차밭을 다녀온다. 채엽한 찻잎은 그날 솥에서 건조까지 다 마무리를 하고 잠을 잔다. 때로는 새벽, 때로는 꼬박 날을 샌다. 차를 덖을 때 불길이 때로는 강렬하고, 때로는 느린 거북이 처럼 느릿느릿 해야한다. 새벽녁이 되면 기온도 내려가고 졸음이 몰려오면 음악을 들으면서 차를 덖는다. 경쾌한 클래식을 듣는다. 강가에 야생 갓 꽃이 유채꽃 처럼 피어 노란 파도처럼 일렁거리는 눈부신 날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 강렬한 재즈나 블루스곡으로 스피커 볼륨을 높이고 차밭으로 달린다.

▲ 나는 차인도 아니고, 농사꾼도 아니고, 오로지 수행을 하는 사람이라고 . 그래서 차와 내가 둘이 아닌것이다.

차 솥에 열기도 음악 선곡하듯 다뤄야 제대로 차 맛을 원하는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길고 긴 두시간 동안 한 동작으로 사투를 벌이듯 파도 불을 다뤄야 하는 가향 작업 시간에는 침묵으로, 때로는 『금강경』이나 『화엄경』 법문을 듣기도 한다. 걸으면서도, 운전 하면서도 경전의 말씀을 동영상 녹음을 통해 지식으로 지혜를 얻는 일과 실천으로 지혜를 습득하는 것을 실천한다.

▲ 내가 연구하고 만드는 차향은 나의 끊임없는 수행의 방편이요, 고개를 숙이지 않는 아름다움의 극치다. 차 생활은 나의 긴 수행의 도반이요, 여행길에 동행자였다. 내가 가는 곳곳마다,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그리는 그림, 내가 듣는 음악이 내가 지켜가는 아름다운 것에 머리를 숙이는 일이었다.

대부분 나를 치유 했던 일은 음악을 듣는 시간이었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음악은 나에게 부처님의 바다 같은 것이다. 또한 차를 덖는 뜨거운 차 솥의 온도에서 초록 잎 차가 익어가는 찰라를 통해서 알음알이로만 알아차린 중도의 사상을 온전하게 내것으로 용해시키는 실체적 공부를 했다고 한다면 이해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만들고 연구해 온 차는 나에게 경전이요, 그림이요, 음악이요, 미학이기도 하다. 또한 오천권의 책 속에 담긴 수 많은 문자로 표현 해 놓은 명언들의 문장이기도 하다.

▲ 차 덖는 사월이면 매일 하루 한번 왕복 두 시간을 섬진강변을 달려 차밭을 다녀온다. 채엽한 찻잎은 그날 솥에서 건조까지 다 마무리를 하고 잠을 잔다. 때로는 새벽, 때로는 꼬박 날을 샌다. 차를 덖을 때 불길이 때로는 강렬하고, 때로는 느린 거북이 처럼 느릿느릿 해야한다. 새벽녁이 되면 기온도 내려가고 졸음이 몰려오면 음악을 들으면서 차를 덖는다.

며칠전 어느 개인이 운영하는 멤버쉽 갤러리에 초대 받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 가는 순간 센리큐의 일생이 담긴 영화 『리큐에게 물어라』가 떠올랐다. 영화속에 센리큐는 히데요시에게 무릎을 꿀어야 하는 대목에서 “아름다운것에 머리숙일 뿐 ” 이라고 말 한다.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 가는 순간 영화속 센리큐의 대사가 떠 올랐던 것은 왜 일까. 아마도 아름다움을 연출하고자 했던 집주인의 안목이 공간마다 틈틈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으리라.

세상에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아이러니한 일들이 많다. 와인과 차도 그중 하나다. 와인과 차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중노동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마시는 사람들은 잘 알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겨 마시는 사람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말과 아름다운 (?)문화로 한껏 치장한다. 참 아이러니한 대목이 이닐 수 없다.

내가 연구하고 만드는 차향은 나의 끊임없는 수행의 방편이요, 고개를 숙이지 않는 아름다움의 극치다. 차 생활은 나의 긴 수행의 도반이요, 여행길에 동행자였다. 내가 가는 곳곳마다,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그리는 그림, 내가 듣는 음악이 내가 지켜가는 아름다운 것에 머리를 숙이는 일이었다.

혹자는 뭐가 잘나서 저렇게 거창하게 떠들어 댈까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누가 뭐래도 나에게 차는 나와 차가 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차실을 근사하게 지어놓고 오가는 사람에게 품격있는 손놀림으로 차를 대접하던 어느 스님께서 정토사에 첫 방문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차인 인줄 알았더니 농사꾼이네.”

그 스님의 말씀에 순간 웬지 모르게 저절로 부끄러움이 치솓았다. 몇 년 동안 그말을 곱 씹으면서 생각한다. 나는 차인도 아니고, 농사꾼도 아니고, 오로지 수행을 하는 사람이라고 . 그래서 차와 내가 둘이 아닌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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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다연 법진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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