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본질을 조작하지 말라 !

나의 수행 나의 차 2 마로다연 법진l승인2021.04.02l수정2021.04.02 16:09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세상에서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중에 신령스럽다고 이름 부쳐진 것은 오로지 차 뿐이다.기록에서 익힌 지식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오랫동안 덖고 연구하고 마시면서 더 확실하게 ‘신령스럽다’는 대목에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차는 깨끗하고 정직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중에 신령스럽다고 이름 부쳐진 것은 오로지 차 뿐이다.기록에서 익힌 지식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오랫동안 덖고 연구하고 마시면서 더 확실하게 ‘신령스럽다’는 대목에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차는 깨끗하고 정직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잘 못 이해하고 찬 성품이라고 말 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차를 제대로 덖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서울에 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동대문, 남대문 이야기를 실제로 본것 처럼 이야기 하는것과 같은 것이다. 잘 덖어 제대로 찻 잎 속까지 잘 익힌 차는 오히려 몸을 뜨겁게 해준다. 곧 있으면 차를 덖는 시기가 온다. 30년을 차 솥 앞에 서지만 늘 일학년의 마음이다. 작년에는 가향처리를 백탄으로 마무리 했다. 좀 더 특별한 차 맛을 내 보고 싶은 욕심에서 시작 되었다.

결론은 하던대로 해라! 였다.

더 이상 특별한것을 요구하는 것은 마음의 탐욕 때문라는 걸 알게 되었다. 평소 가향처리를 온도를 높혔다가 낮췄다가 하면서 얻은 차맛인데 백탄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던 단점을 찾아낸 것이다. 일명 내가 부친 이름이 < 파도불> 이다.

온도를 높혔다가 낮췄다가...

무조건 옛날 방식이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무조건 새로운 방식이 좋은 것도 아닌것을 알게된다.

▲ 차를 제대로 덖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서울에 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동대문, 남대문 이야기를 실제로 본것 처럼 이야기 하는것과 같은 것이다. 잘 덖어 제대로 찻 잎 속까지 잘 익힌 차는 오히려 몸을 뜨겁게 해준다.

내 인생의 2/3를 차와 함께 했다. 뜨거운 온도에서 한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차 덖음 과정속에서 나는 중도中道와 중용의 이치를 온전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머리가 아닌 알음알이가 아닌 실전에서 알아 차린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중도와 중용은 정해진 기점이없다. 그때 그때 마다 그 기점은 변한다. 고정되고 정해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중도도 아니요, 중용도 아니다.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씨앗을 뿌려 차나무가 자라나는 것부터 찻잎을 따서 덖고 비비는 ( 유념) 과정, 다관에 넣어 차를 우려 마시기 까지 한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 찰나의 움직임을 알아 차리는 경지라면 세상 이치를 다 알아 차릴 수 있을 만큼 차의 근본은 신령 그 자체였다. 그것이 내가 아는 차의 본질이다.

차와 함께 한 세월 40년은 나에게 스승이고 도반이고 또한 내가 추구하는 창의와 창작의 근원이었다. 솔직히 이런 말을 하면 차를 처음 접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까히 하기에 점점 멀어지게 할 수도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제대로 말해주고 싶은 대목이다. 최근에 생산하고 있는 고급 티백차 생산이 바로 그 길로 갈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이 아닐까 생각 해본다. ‘차를 가까이 하는 민족은 흥하고, 술을 가까이 하는 민족은 망한다’고 할 만큼 차가 주는 기운은 말로, 글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언어 이전의 에너지원이다. 오죽하면 ‘다선일여茶禪一味’, ‘ 선다일여茶禪一如’ 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일회용 티백 차라고 해서 그런 기운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차를 마시다보면 차의 성분에 그런 기운이 있다는것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티백차 하면 저급품이라는것이 인식되어 있다. 사실이기도 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누군가는 시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기업에서도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차茶라고 이름 부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차茶나무에서 자라는 잎으로 만든것만 차茶 라고 이름 부칠 수 있다. 어느 때 부턴가 꽃으로 만들든지, 산야초로 만들든지 모든 재료에 차茶 라는 이름이 부쳐졌다. 그걸 바꿀 방법을 나에게 달리 없다.

차는 나의 삶이고 나의 삶은 차 연구였다고 하면 믿겠는가. 애호가들은 다양한 차맛을 요구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차가 가지고 있는 본래 맛 그대로 맛으로도 충분하다.며칠전에 들려서 대용차 쑥차와 내가 만든 마로단차를 동시에 구입 해 간 사람이 있었다. 차 맛을 잘 모르니 자신이 느끼기에는 쑥차가 맛있다며 집으로 갔는데 정작 집에 도착하여 다시 마셔본 차맛에 대하여 뒷말을 전해왔다.

“쑥차보다 마로단차 맛이 한수 위네요”

차茶라고 이름 부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차茶나무에서 자라는 잎으로 만든것만 차茶 라고 이름 부칠 수 있다. 어느 때 부턴가 꽃으로 만들든지, 산야초로 만들든지 모든 재료에 차茶 라는 이름이 부쳐졌다. 그걸 바꿀 방법을 나에게 달리 없다. 그래도 차는 오로지 차茶나무에서 채취한 잎으로 만든것이 차茶 라고 이름 지을 수 있음이다. 차가 나에게 전해 주는 말

“조작하지 말라!”

 

 

 


마로다연 법진  teac21@naver.com
<저작권자 © 뉴스 차와문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마로다연 법진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종로구 계동길 103- 4번지 3층  |  대표전화 : 070-7761-7208  |  팩스 : 0505-115-7208
등록번호 : 서울, 아03665  |  등록일 : 2015.3.30  |  발행인 : 이상균  |  편집인 : 이상균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이상균
Copyright © 2021 뉴스 차와문화.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