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에서 ‘신神’은 기론氣論의 용어이다. 기론은 동양사상의 자연과학에 해당하는 것이다. 기론 또는 기철학은 우주 만물 · 현상의 정신적·물질적 질료이자 존재론적 기원을 ‘기氣’로 보는 견해이다. 이때의 ‘기氣’는 세분되기 이전의 기에 대한 통칭으로서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모든 것을 이루는 질료를 일컫는다. 기는 다시 더 세분되어 ‘정精 → 기氣 → 신神’의 단계로 나눠진다. 정精은 가장 기초적인 물질적 질료이고, 정이 좀 더 고도화된 것이 물질과 정신의 중간 단계인 ‘기氣’이다. 신神은 정기精氣가 가장 고도화된 일종의 ‘파동에너지’로서 우주 만물이 전일적으로 통합하게 하는 힘神通力을 발휘한다. 조선 말기 실학자이자 기학氣學적 과학사상가인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 1803∼1877)는 ‘신기통神氣通’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신神은 기氣가 통通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신이 우주 만물과 통하는 모습, 즉 신의 작동 상태가 있다면 또한 그런 상태가 있게 하는 신의 작동 원리가 있을 터이니, 이러한 ‘신기가 통하는 묘한 작용神通妙用 및 그 원리’를 ‘신묘神妙 또는 ‘묘妙’라 한다. 묘妙는 곧 ‘최고도화한 기氣인 신神의 작동 상태와 원리’를 말한다.

위에서 본 것처럼 초의가 『동다송』의 ‘다도’ 규정 첫머리에서부터 “찻잎을 딸 때 찻잎이 지닌 신묘함을 잘 보전하라採盡其妙”하고 다도의 완결을 ‘차탕에 그 신묘함을 발현시키는 일’로 마무리한 것이나, 초의가 ‘다도’의 한 과정으로 ‘찻잎을 딸 때 찻잎의 신묘함을 보전하고採盡其妙’와 ‘차를 만들 때 찻잎의 정기를 잘 보전하라造盡其精’를 넣고 ‘음다지법’ 첫 번째로 ‘독철왈신獨啜曰神’을 소개한 것, 또한 한재가 “神動氣入妙”라고 한 것 등은 제다에 있어서 다신茶神이 작동하는 상태와 그 원리인 ‘신묘神妙’ 보전의 중요함 및 다도수양(음다)에 있어서 ‘신묘’를 통한 자연합일의 이치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한국 차 제다와 다도의 원리 및 목표는 ‘신묘’ 및 그것의 보전(제다)과 발현을 통한 자연합일(다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다신’의 정체와 ‘신묘’의 원리를 더 상술詳述하여 정리하자면, 다신은 차에 들어있는 기氣가 최고로 활성화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차의 기는 차의 향과 색, 그리고 그것들의 융합적 양태인 맛氣味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차의 향은 가장 뚜렷이 기화氣化되어 다자간 공유의 소통 매개체 역할을 하고 다도수양에서 정신적 차원으로 승화되어 ‘신묘’의 기능을 한다. 초의는 이 차향 또는 차향을 발현시키는 차향의 성분요인을 ‘다신’이라고 본 것 같다. ‘신묘’를 ‘기가 활성화되어 우주만물과 통하는 작동 양태 또는 그 원리’라고 볼 때 그런 역할을 하는 차의 향이 다신이다. 즉 한재가 볼 때 차는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형태(精·氣)의 차로 우리 몸에 음다되어 우리 마음의 감수활동에 의해서 정신적 단계인 신(다신)으로 활성화(고도화)되어 ‘(내) 마음의 차(吾心之茶)’가 된 것이다. 이러한 다신의 ‘신묘’ 기능이란 『주역周易』의 설시揲蓍 원리와도 같은 것이다. 이는 ‘동시성의 원리’, 즉 ‘우주 생명에너지의 역동적 동시성의 편재遍在의 발현’ 현상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미학자 김영주는 신기神氣가 시각적 현상으로, 청각적 소리로서 밖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신명神明이라고 정의하면서 “신명이란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혼의 움직임, 생명의 움직임으로 이해할 수 있겠고, 특히 생명의 움직임, 혼의 움직임 가운데 우러나는 흥·멋·맛 같은 감성 감동을 동반하는 개념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혼(생명)의 움직임’ 즉 신명의 원리 및 상태가 곧 ‘신묘’이다. 김영주는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린 노송老松에 까마귀와 솔개가 날아와 앉으려 하는 현상에 대해 “신명의 그림, 신동, 신기의 그림이어서 까마귀, 솔개, 노송 감상자, 솔거에게 동시에 신기神氣가 통한 것”이라고 말하고 “동양에서 예술은 그 목적이 도道에 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예술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예도藝道라고 부른다”고 주장했다. 동양 예술은 신묘神妙를 추구하고 담는다는 말이 되겠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바람직한 한국 차 제다와 다도(수양다도)의 방향은, ‘심신건강수양음료’로서 차의 ‘신묘한’ 다신을 잘 발휘하는 성분을 지닌 녹차를, 어떻게 그 성분이 잘 보전되도록 만들며, 그렇게 제다된 차를 여하히 중정中正의 방법으로 차탕을 우려내서, 음다명상을 통해 그 ‘신묘’를 행기行氣의 마음작용으로써 얼마만큼 잘 이해하고解悟 터득하는證悟 방향으로 다도를 수행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신묘神妙’는 한국 차 제다와 다도의 핵심 원리이자 그런 한국 차와 한국수양다도만이 지닌 월등한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은 기가 최고로 고도화되어 영靈적 단계에 있는 기의 개념이고, 묘는 그러한 신의 활동(神이 通하는 작용) 상태를 말하니 ‘신묘’는 만물을 전일적 하나가 되도록 융합해주는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초의는 자신의 편저編著 이름을 ‘다신茶神전’이라 하고 『동다송』 ‘다도’ 규정에서 ‘다신’의 보전을 강조하였다. 이는 초의 역시 ‘다신’ 즉 활동성妙을 내함한 차의 신茶神을 한국 차 제다와 다도의 핵심 원리로 보았음을 의미한다.

무릇 제다와 다도에 임할 때는 이러한 신묘의 원리 및 제다와 다도가 이 신묘의 원리로 관통돼 있음을 숙지하는 게 중요하다. 신묘의 원리를 제대로 알고解悟 제다에 임하게 되면 초의가 말한 ‘다신茶神’의 의미를 알고 그것을 살려내는 제다를 하게 된다. 또 그러한 제다 과정을 통해 신묘의 원리를 심신으로 체득證悟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면 그러한 제다의 공정이 심신 수양의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초의는 『동다송』 제60행 주석評曰의 ‘다도’ 규정에서 ‘찻잎을 딸 때 찻잎에 든 우주 정기(생명력)인 신神의 활활발발한 역동성妙을 잘 보전하고, 차를 만들 때 그 정기를 잘 갈무리해야 한다(採盡其妙 造盡其精)…’라는 말을 했다고 본다. 이 말의 진의는 “차의 자연성을 보전하라”는 것이자 제다 공정에서 무리한 인위人爲를 가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이를 차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이해하자면, 다도에서 구현되는 차의 ‘심신건강 수양음료’로서의 기능과 직결된 차의 자연성인 3대 성분, 즉 카테킨·테아닌·카페인을 제다 공정에서 있는 그대로 잘 담아내라는 주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녹차 제다에서 과도한 열을 가하거나 찻잎 비비기揉捻를 지나치게 해서 안된다는 말이다. 차를 마시고 명상에 드는 다도명상 또는 다도수양은 제다에서 확보된 신묘와 그 원리를 직접 증오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차를 마심으로써 그 차가 싣고 심신에 전이시켜주는 다신이 우리 심신을 채우고 그 신묘의 신통력으로 우주 자연의 신기神氣와 공명케 하는 자연합일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기 때문이다. 초의가 『다록茶錄』에 있는 음다지법飮茶之法을 『다신전』과 『동다송』에 소개하면서 말한 “홀로 마시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獨啜曰神”와 한재 이목이 『다부茶賦』에서 말한 “내 마음의 차吾心之茶”가 바로 그런 경지를 일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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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최성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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