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전통 제다’가 국가무형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한국 차계나 차학계 또는 차문화와 차산업 담당 정부 부처에서 ‘전통 제다’의 정의나 표준을 제시한 적이 없다. 전국 대학 차 관련 학과엔 정상적인 ‘전통 제다’나 전통 제다 실습 과목이 없다. 한국 전통 제다와 다도의 원리를 선현들의 뜻에 따라 동양사상 수양론으로 이해하여 가르치는 교수가 전무全無함을 걱정하는 학과장이나 학·총장도 없다.

한국 차계와 차학계에서는 중국차 사대주의와 공허한 차 담론만이 춤을 춘다. 그 담론들의 주제는 박제가 된 과거와 초월적 미래를 오가지만 눈앞의 현실은 외면한다. 예컨대 혹자는 승려들의 차시 몇 편을 근거로 “한국 차가 선종에 얹혀 왔고, 한국 차문화의 중심이 불교 ... ”라거나 “‘초의차’가 계승해야 할 한국 전통차의 대표 ...”라고 주장한다. 차시나 차 관련 기록은 고려·조선 시대 승려 아닌 문사들이 남긴 것이 훨씬 많고, 차농사와 제다, 뼈빠지게 차세를 바친 것은 주로 민간에서 한 일이다. 초의 선사가 『다신전』 발문에 “총림에 조주 다풍(음다풍)은 있으나 (승려들이) 다도를 모른다”고 쓴 대목을 보면서도 저런 황당한 말을 한다. ‘초의차’ 계승이란 실체가 없는 무엇을 계승하겠다는 건가? 간혹 TV에서 거대한 차탁 위에 보이차나 따라놓고 근엄하게(?) 차 얘기하는 승려들을 보면, ‘한국 차문화의 중심’이라는 불교의 목하 성행중인 템플스테이 ‘다도체험’에서 차의 본질과 불가 다도 수행의 원리 또는 ‘다선일미’의 유래와 의미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주지가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지리산 어느 토굴에서 홀로 도닦는 한 젊은 승려는 원두커피 갈아 즉석 ‘커피道’를 실천하기도 한다.

다른 예로, 한국차학회 2018년도 추계학술대회 주제는 ‘4차 산업혁명과 차의 미래’, 소주제의 하나가 ‘AI 시대와 차문화’였고, 2019년도 춘계학술대회 주제는 ‘중국 차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였다. 한국 차계 한쪽에 보이차 따라하기와 중국차 심평사자격증 따기 열풍이 불고있는 것도 딱한 현상이다. 차학계 일각에서 지자체 돈을 끌어다 당대唐代 떡차류 ‘고리짝 차’ 복원(?)하는 퍼포먼스는 지자체를 부추기는 효과 외에 차학자적 양심에 부합하거나 차학도들에게 교육적일까? 최근 나는 그런 퍼포먼스발 ‘녹차 사망선고’로 들리는 말을 접하고 정신이 아찔했다. 제다현장에 있는 차학 관계자들의 한국 차 정체성과 전통 차문화의 본질, 제다와 다도의 관계 등에 대한 인식 수준 (또는 몰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생각되기에 걱정하는 마음에서 적는다.

목포대 국제차문화·산업연구소가 ‘보성 뇌원차 복원(?)’에 관해 2020년 8월에 낸 연구총서7 『고려황제공차 보성뇌원차』에서다. 문맥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긴 글의 몇 부분을 생략하여 관련 대목들을 잇고 간추렸다.

“보성은 <보성 녹차>로 잘 알려져 있다. ... 녹차는 보관이 힘들고 맛의 차이가 심해 널리 보급되기는 힘들다. ... 발효차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잎차뿐만 아니라 덩이차 쪽으로도 소비자의 선택이 넓어지고 있다. 보성군도 이제 녹차 일변도에서 벗어나 차의 종류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 ” “ (보성 뇌원차의) 차별화 포인트를 잡는다. 황제나 임금이 마시던 차를 시절이 좋아 지금 당신들이 마실 수 있다는 문화적 자긍심을 갖도록 한다.” “뇌원차 제다공정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 뇌원차를 만드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 뇌원차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뇌원차를 탐색하는 것이 마치 맹인이 코끼리(象)를 만지는 것 같아. 이 글은 뇌원차의 보이지 않는 상(象)을 드러내려 힘썼다.” “고려 시대 뇌원차를 그대로 재현해 상품화하기 어렵고, 상업성이 없음은 거의 명백하다. ... 보성군에서는 당연히 정책적으로 매년 역사를 이어가야 한다. 상업성을 위주로 하기 보다는 전통을 이어가는 목적이다”

근래 수 십년 동안 ‘보성 녹차’로써 한국 차문화와 차산업의 메카라는 자부심과 ‘녹차 수도’의 명성을 쌓아온 보성군과 보성군 차농들에게 이제와서 “녹차는 보관과 맛에 문제가 있으니 녹차만 붙들고 있을 게 아니라 발효차 쪽으로 종류를 다양화해 보라”는 것이다. 또 ‘뇌원차’ 복원(?)이 ‘맹인 코끼리 만지는 식’이고 상업성이 없으니 차별화 전략상 “황제나 임금이 마시던 차를 시절이 좋아 지금 당신들이 마실수 있다”라는 말로 문화적 자긍심을 갖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코끼리 만지듯’ 만든 차로 현대인들에게 봉건 시대 ‘천민의식’을 고취시켜 주면 문화적 자긍심을 갖게 되고, 그것이 고상한 차문화라는 말인가? 이게 차 학자연然하는 이들의 사고일까? 제다법이나 품질에 관한 아무런 자료 없이 ‘코끼리 만지기’ 하는 게 ‘전통차 복원’인가? 그런 사이비 전통 창조에 귀중한 지자체 예산을 계속 부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행다行茶를 하는 차계, 차의 진실을 이론으로 정리하여 제공해야 하는 차학계, 차 행정과 지원을 맡는 당국이나 지자체의 실정이 이러하니 각기 자신의 제다법을 내세우며 전통 제다의 보루 역할을 해온 차농과 수제차 제다인들도 중국 보이차류 흉내내기에 쏠리고 있다. 이런 추세에서 ‘심신건강 수양음료’로서의 한국 전통 수제녹차는 전통 음다수양법인 ‘수양 다도’와 함께 자취를 잃어 가고, 사이비 보이차류와 커피 등 ‘기호음료’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한국 차인과 차학자들이 오로지 차와 관련된 명리名利를 좇아 뜬구름 잡는 탁상공론에 매이지 않고 한국 전통차와 차문화의 정체성을 이해하여 확장시키는 일에 좀 더 매진했더라면 한국 차 문화와 차 산업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한국의 옛 차 문헌들은 ‘전통’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실질적인 한국 차문화가 조선 후기 부안 현감 이운해, 남도에 유배당해 왔던 진보 지식인 이덕리(진도)와 다산 정약용(강진), 원 남도인 초의 선사(해남) 등에 의해 확립됐음을 알려준다. 이운해는 「부풍보」(「부풍향차보」)에서 현명한 ‘생배법生焙法’을, 이덕리는 『동다기』에 당시 진도 일대 사찰에서 행해지던 선진적 제다법인 ‘증배법蒸焙法’을 기록으로 남겼다. 다산은 매우 특수한 고급차인 ‘차떡茶餠’(‘떡차’가 아닌) 제다를 강진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초의는 『다신전』과 『동다송』에 명대明代의 ‘초제법炒製法’을 소개하고, 『동다송』에서 기론氣論에 바탕한 수양론을 함의한 창의적인 ‘다도’ 규정을 남겼다.

이운해·이덕리·다산·초의의 족적은 중국이나 일본 차문화사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면서 제다와 차문화의 다양성을 지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분들이 한국 차문화사에 이룬 공적은 차를 단순한 기호음료가 아닌 ‘심신건강 수양음료’로 보는 관점에서 제다와 다도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 맥은 바로 ‘신묘神妙의 보전’을 위한 녹차綠茶 제다, ‘신묘의 발현’에 의한 다도 수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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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 최성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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