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덖고 연구하고 차를 마시면서 찻 그릇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내왔다. 그렇다고 좋고 아름다운 것을 볼 줄 모르는 까막눈은 아니었다. 다만 형편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차려 놓은 찻자리에서만 사람들을 맞이하고 바깥에 나가서 차를 마실 일이 전무후무 하던 시절 우연히 어느 스님의 차실을 들리게 되었다. 그 스님은 은다관으로만 차를 마셨다. 물론 나에게도 은 다관이 하나 있었다. 잘 사용하지 않았다. 떠도는 헛 소문(?) 때문이다.

그 스님 덕분에 분에 넘치는 은 다관을 가지게 되었지만 호사를 누리는 듯하여 사용하지 않고 장롱 속에 숨겨두고 가끔 끄집어 내서 자랑했다. 그러나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차를 마실 때 은 다관에 마신다. 모든 차가 순화 되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만든 차를 시음 하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분에게는 도자기 다관에 우려 낸다. 그대로의 차 맛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2017년 여름 제주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은공예 명장 홍재만 작가의 은 다관을 들고 나갔다. 은 숙우에 맥주를 부어 맛이 어떻게 변할까 테스트 하다가 놀라운 변화를 발견했다. 맥주 특유의 냄새가 사라지고 깨끗한 맛으로 변했다. 나는 작가에게 맥주나 와인을 마실 수 도 있게 잔을 만들어 보라고 주문했다. 또한 중국 공춘호 다관을 만들 수 있냐며 작가에게 주문 했다. 그렇게 해서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 바로 은 공춘호다.

은으로 된 맥주잔은 디자인이 따로 특별하지 않고 간결하게 두 종류를 내가 공장 쫒아 다니면서 만들어졌다. 공춘호와 은 맥주잔 그리고 은 찻사발등을 들고 아트페어에 나갔다. 우리 부스는 방송인 허수경씨와 함께 매스컴을 탔고 은 찻사발은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이왈종 화백이 구입해 갔다. 또한 맥주잔은 차를 즐겨 마시는 선생님이 한 세트를 구입해 갔다. 그런데 내가 너무 좋아하는 공춘호는 가격 때문인지 구매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에 차를 배우며 함께 덖었던 청년회장 건우군이 느닷없이 스님 할부로 갚아도 되요.? 누구라고 못 주겠나 싶어 흔쾌히 승락했다. 아직 작가에게는 허락도 안 받고 내 맘대로 결정한 것이다. 좋은 작품을 제대로 사용 할 줄 아는 사람이 품고 가서 참 좋다.

아주 오래전 하동요 후암 정웅기 도예가가 만든 물 항아리는 내가 십여년을 들락거리는 동안에 흠모했다. 그리고 주인을 만나 떠났는데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내 것이 된 것 처럼 존재한다. 은공춘호도 이미 내 마음에 남아 있으니 내 것이나 다름 없다. 옛 어른스님이 절집 살림살이가 어려워 문전옥답을 팔았다. 그 좋은 문전옥답을 파냐고 상좌들이 난리를 했다. 그때 어른 스님은 " 아니 돈도 생기고 논도 도망 안가고 눈만 뜨면 쳐다 볼 수도 있는데 뭐가 불만이냐." 했던 것처럼 내가 누리는 것은 꼭 소유하지 않더라도 가슴에 남아있으면 세상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람들이 성북동 마로다연을 두고 왔을 때도 그렇게 야단을 했다. 나는 " 유럽 여행 갔을 때 들고 간 돈으로 유럽을 통째로 들고왔냐? " 나는 여행을 했을 뿐인데 거꾸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우성이다. 요즘도 마로다연제 축제를 연다고 하니 옆에서 난리다. 왜 아무런 수입도 안 생기는 축제에 땀흘려 만든 차를 판 돈을 그렇게 쓰냐고...

나는 말한다.

“이 산골짜기에 누가 못난 나를 찾아 주겠는가. 법력이 있어 찾아 주겠는가. 돈이 있어 찾아 주겠는가, 권력과 명예가 있어 찾아 주겠는가. 이렇게 차 쇼라도 한번 부려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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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다연 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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