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야(보드가야)에서 버스를 타고 3일을 달려왔다. 순례단은 한국 스님과 불자들이 힘을 합쳐 20년간 애써 일구어 놓은 천축선원에 도착했다. 늦은 밤 이지만 주지스님과 한국에서 미리와서 수행하고 있는 불자들의 환송을 받고 여장을 풀었다. 도착하자마자 차실에 안내 되었다. 누구보다 차문화에 관심 많은 내가 우려 내 놓는 차 맛에 집중 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사찰이나 차를 꽤나 마신다고 소문 난 차인의 차실에 가더라도 내 놓은 차는 무조건 중국보이차가 먼저이다. 차 농사를 짓고, 차를 만들고 차 문화를 보급하는 입장에서 보노라면 한숨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보이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비난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도땅 천축선원에서 한국 발효차를 내 놓은것에 대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미리 정보가 있었다면 < 마로단차> 몇편을 준비해 갔을 텐데 아쉬웠다. 천축선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오전에 드디어 기원정사에 도착했다.
부처님 성지인 만큼 곳곳에는 대만, 일본, 태국, 유럽등 세계 각국의 불자들이 부처님의 흔적을 찾아 참배 올리는 모습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한국에서 차 공양을 올리기 위해 준비해간 찻 그릇을 챙겨 순례단과 함께 차 공양을 올렸다. 이 감동을 무어라 이름 지어야할까, 부처님이 머물며 수행했던 사찰, 기수급고독원(기원정사)에 향실( 부처님 침실)에서 내가 직접 농사 짓고 만든 차를 올리는 영광을 누린 이 은혜를 앞으로 어떻게 이 세상에 다 갚고 갈 것인가.
김해와 인도 붓다가야에 자리한 싸띠 아리마 수행학교 방장스님과 대중들, 단기 출가자들과 함께 차 공양을 올린 일은 함께한 모든 사람들이 가슴벅차했다. 여러번의 성지 순례 경험이 있었던 몇몇 사람들도 처음 경험하는 차 공양이 뭔가 꽉 차고 숭고한 일을 해 낸 것 같다고 했다. 그 순간 차와 함께 해 온 지난 35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차를 만들어 오면서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이 보다 더 큰 칭송이 있을까. 내가 만든 차를 사회의 어떤 유명인사가 마셨느니, 어떤 유명차인이 찾아 주었다는등 자랑 아닌 자랑질(?)을 해 온 내가 더 이상 큰 자랑을 할일은 없지 않는가. 내가 만든 차가 천축국 최초로 지어진 불교사원 기원정사에서 부처님께 올린 차라는 걸 내 평생 자랑질 하고 살아야지.
순례단은 기원정사에 오전 오후 두번을 들렀다. 그동안 강행군 하면서 돌았던 순례 여정보다 좀 더 느긋한 마음으로 보리수 나무 아래서 명상도 하고 예불도 올리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 생에 한 번 더 올 인연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두고두고 이 감동을 추억하면서 보낼 남은 생은 절대 지루하지도 분잡하지도 않겠다 싶다. 내 삶의 마지막은 어느 양지녘에 앉아 부처님 성지 가는 곳곳마다 살갖에 와 닿던 따스하고 자비스러운 속삭임을 하던 그 바람결을 기억하며 잠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