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전雨前, 지리산 봄기운

송강스님의 ‘사랑하기’ 개화사 송강스님l승인2018.07.13l수정2018.07.1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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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6일, 지리산 악양에서 차를 도반 삼아 수행하는 스님으로부터 우전 녹차가 올라왔다. 반가운 마음에 포장을 열어 찻잎 약간을 입에 넣고 씹으니 바삭하게 부서졌다. 곧바로 구수함이 입안에 퍼지며 곧이어 숨었던 상쾌함과 시원한 향이 가득한 상태로 꽤 오래 갔다. 그런 후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차의 맑고 싱그러운 맛이 되살아났다. 지리산 바위틈에서 야생상태로 자라는 찻잎으로 9증9포한 우전차를 가장 맛있게 음미하는 나의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만족스런 느낌이 오지 않으면 법제해 달라는 청을 하지 않는다. (판매되는 우리나라 차의 경우 차 이름과 법제한 이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기로 한다. 자칫 선전해 준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 수년전에 공무로 지리산에 갔을 때 촬영한 돌과 자갈 가득한 화개 산골 차밭.

4월 17일 오후 라이문도 이종남 신부님이 동양(한국)의 피카소라고 일컬어지기도 한 고 하반영(河畔影) 화백의 ‘마하’라는 작품을 선물로 들고 오셨다. 신부님이 특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전시회를 열었을 때 하반영 화백의 작품이 여럿 나왔는데, 도록에 있던 ‘마하’를 보고 감탄한 것을 유심히 봤던 모양이었다. 전시회를 열자마자 고위층 인사가 샀다는 소식을 듣고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수십 일이 지나서 구매한 이로부터 양보를 받아 기어이 선물로 들고 온 것이다. 찻자리에서 건너다보이는 집무실 문 위에 걸어두고 차를 마시며 작품에 대한 느낌을 나누고는, 감사의 뜻으로 내가 공양을 내었다.

▲ 동양(한국)의 피카소라고 일컬어지기도 한 고 하반영(河畔影) 화백의 ‘마하’.

밤 시간 홀로 ‘마하’를 감상하다가 지리산 봄기운을 본격적으로 만나기로 했다. 우전을 우릴 다기로는 지헌知軒 김기철金基哲 선생으로부터 오래 전에 선물로 받은 다관을 선택했다. 우리나라 녹차는 우리나라 다관이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헌선생은 철저하게 용가마에서 구워내는 작품을 고집한다. 아마도 ‘위대하다’는 뜻을 지닌 인도어 마하(摩訶, mahā)를 제목으로 삼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하반영 화백의 작품을 보며, 아홉 번 덖고 비비기를 되풀이한 우전雨前과 용가마 장작불로 빚어낸 다관茶罐을 앞에 두고 나는 어릴 적 뛰어놀던 지리산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 오래 전에 선물로 받아 즐겨 사용해온 지헌 김기철 선생의 다관.

지리산 우전雨前과 벗할 음악으로 김영동의 국악음반 <소리여행>을 선택했다. 1993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초창기 미타사 대중다회(소리향차법회)에 자주 들려주었던 음악이었다. 중앙승가대학에서 수행하던 시절인 1982년에 발표된 그의 노래 ‘어디로 갈꺼나’(김회창 작사 김영동 작곡)는, 내가 느린 범패분위기가 나게 편곡하여 피할 수 없는 자리에서만 불렀던 곡이기도 하다. 그 노래의 가사가 부처님을 찾아가는 내 심경에 잘 맞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아주 젊었던 시절의 얘기이다.

▲ 1993년 발표한 김영동 국악앨범 '소리여행' 앞뒤면.

“어디로 갈꺼나 어디로 갈꺼나, 내님을 찾아서 어디로 갈꺼나. 이 강을 건너도 내 쉴 곳은 아니요, 저 산을 넘어도 머물 곳은 없어라.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내님은 어디에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갈꺼나 어디로 갈꺼나, 내님을 찾아서 어디로 갈꺼나.) 흰구름 따라 내일은 어디로, 달빛을 쫓아 내님 찾아간다.(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내님은 어디에 어디에 있을까.) 」***괄호 부분을 생략하고 바로 이어서 불렀음***

▲ 2cm 내외의 찻잎을 확대해 보니 잔털이 많고 건강하며 강해 보임

오디오에서 흐르는 ‘침묵.대답’을 들으며 법제한 이가 권장한 내용대로 다관에 4g(2인용)을 넣었다. 2cm 내외의 찻잎을 확대해 보니 잔털이 많고 건강하며 강해 보였다. 먼저 차 포장상자 인쇄문구에서 권장한 방식으로 우려 보기로 했다.

첫째 잔 - 80도로 2분간 우림. 9증9포한 우리 녹차의 특징인 구수한 향이 피어오름. 머금으니 입안이 시원해지고 구수하지만 풋풋함을 잃지 않은 맑은 녹차의 풍미가 입을 채움.

둘째 잔 - 90도로 1분 우림. 피어오르는 향이 잘 느껴지지 않음. 구수한 맛이 40%대로 줄고 쌉싸래하면서도 맑은 녹차의 맛. 차 트림이 올라옴.

셋째 잔 - 90도로 1분 우림. 머금으니 구수한 향과 맛이 되살아남. 쌉싸래한 맛은 약해짐. 입안은 온화해짐.

넷째 잔 - 95도로 30초 우림. 구수한 맛도 쌉싸래한 맛도 약해져서 향은 은근하고 맛을 맑아짐. 차의 힘이 많이 꺾임.

▲ 차 용기에 인쇄된 권장방식으로 우린 찻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진행.

다음으로는 내 방식대로 우리기로 했다. 2인용으로 5g(2인용)의 차를 다관에 넣음.

첫째 잔 - 95도로 3초간 우림. 맑고 구수한 향이 피어오름. 머금으니 맑고 풋풋하지만 구수한 맛.

둘째 잔 - 95도로 3초간 우림. 구수한 향 강하게 피어오름. 머금으니 기분 좋은 타닌 느낌과 조금 쌉싸래한 맛. 입안이 시원해지고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짐. 빈 잔에 남은 잔향은 맑은 벌꿀 향. 기분 좋은 차 트림.

셋째 잔 - 95도로 3초간 우림. 구수한 향이 피어오름. 머금으니 넉넉하게 포용하는 봄기운. 둥글둥글한 타닌이 입을 맑게 해줌. 은은한 녹차의 풋풋한 맛에 쌉싸래한 뒷맛.

넷째 잔 - 95도로 3초간 우림. 여전히 구수한 향 피어오름. 구수하고 은근해진 풍미. 숨었던 풋풋한 맛이 느껴지고 타닌은 거의 숨었음.

▲ 내 방식 즉 95도로 3초간씩 우린 찻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진행.

찻물색은 뒤 방식으로 우린 것이 전체적으로 맑았고, 구수한 향과 맛 또한 뒤 방식이 좋았다. 대개 녹차계열은 다관에서 너무 오래 있으면 타닌이 많이 우러나서 떫고 쓰게 되는 경향이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9증9포하지 않은 대부분의 차는 높은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채소 데친 맛이 우러난다. 물의 온도와 다관에서 우리는 시간조절이 차 맛을 크게 좌우한다. 찻물 색 비교용 잔을 촬영한 뒤 차례로 마시니, 시원하면서도 향과 맛이 훨씬 풍족해졌고 입안도 청량감이 높아졌다. 그로부터 10여분 후, 입안은 향기롭고 풋풋한 녹차의 향과 맛이 깊어졌다. 만약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다식茶食 등을 먹는다면 뒤에 오는 멋진 향과 맛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 차를 우린 뒤 퇴수기 물속에 있는 찻잎 모양.

우리의 녹차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덖음으로 인해 깊이 감추어진 향과 맛은 마신 후 한참을 지나서야 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일체의 다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음식을 먹은 후 한참 쉰 후에 차를 우린다. 음식을 먹고 곧바로 양치질을 한 후에 차를 마시는 것도 손실이 크다. 그러니 차를 마시려면 마음부터 한가로워져야 할 것이다. 차를 다 마시고나니 오디오에선 신수제천(新壽齊天)을 마무리 짓는 세 번의 박(拍-시작과 끝맺음을 알리는 전통악기)이 울렸다.

<서울 개화사를 창건해 차와 향을 공유하고 있는 송강스님의 차에 관련된 편안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사랑하기’란 이름으로 차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송강스님의 허락을 받아 전제한다. 송강스님의 ‘사랑하기’는 현대인들에게 차 생활의 묘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려주고 제대로된 차 마시기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담고 있다. -편집자 주>

 


개화사 송강스님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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