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6일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열린 ‘제다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기념학술대회’가 ‘차계와 학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아전인수, 낯내기, 객관성이 결여된 함량미달의 학술대회 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토론자로 참여하며 지켜봤던 정서경 박사는 ‘미디어붓다’의 특별기고를 통해 “이날 학술대회 결과는 차문화 전승연구의 전공자로서 매우 실망스러웠다. 차계와 학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고 전제하고 “ 정순일 교수의 기조강연에서부터 여섯 편의 논문들은 논제가 가진 쟁점에 집중하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다. 견강부회, 주마간산, 부화뇌동,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이런 용어들만 난무한 학술대회로 막을 내렸다. ”고 주장했다.

정서경박사는 또 “ 박희준 선생의 조선시대 제다를 논하는 연구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한국 차나무 시배지 문제에서부터 이미 역사성에서 그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송경섭 선생의 연구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야국의 차 문화론등 선행연구 검토의 부재가 야기되었다. 조선시대의 제다법을 논하기 위한 다서들도 다소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고 밝히고 “우리 차문화 역사상 자료적으로 가장 많은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 시대는 조선시대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 주목하지 못했던 새로운 근거나 범주 설정도 없이 기 발표된 연구성과들을 방만하게 펼치는 수준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표자였던 강순형씨의 <일제 강점기 이후 제다의 지속과 변화>라는 논문에 대해서도 정서경 박사는 “논제에서 필자는 꽤 기대를 했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라는 시대구분이 구미를 당기게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허울만 좋았다. 속빈 강정이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구분은 공중에 날리고 발표자가 속해 있는 협회를 홍보하거나 문화재와 전통이라는 절 주제로 1장과 2장을 채웠다. 핵심이라고 하는 3장에서는 시대구분과 달리 조선시대 제다법이 전부였다.”고 주장했다.

이번학술발표에 대해 최성민씨도 문화재청 게시판에 “일부 제다관련 논문들의 경우 제다의 유형들만 연대순으로 늘어놓는 데 치중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기조강연은 지당한 당위론이었으며, ‘조선시대 제다기법과...’는 새로운 정보를 주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였고, ‘한국 근현대 덕음 녹차...’은 약간의 새로운 정보가 있었으나 기존 사실의 나열이 많았고, ‘해외 제다관련 문화재 사례를 통한...’은 일본의 예로써 한국 제다에 좋은 자극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국가무형문화재로서...’는 발표와 토론 모두 듣기 거북했습니다. 국가기관 주최 학술대회의 ‘제다’라는 문화적 주제 앞에서 식품명인인 차명인이 자기홍보의 인상을 주어 안타깝고 당혹스러웠다.”고 전제하고 “ 논문이나 발표문 집필을 차계나 관련 학계의 기존 명망가 일색으로 의존하지 말고 재야의 제다현장 전문가들의 고견도 청취하기 바랍니다. 위 기조연설이나 여타 제다관련 논문처럼 제다현장을 잘 모르거나 제다경험이 전무한 관념적 주장이 현장 제다인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겠으며, 문화재청이 지향하는 한국 제다문화 발전에 어떤 도움이 될지요. 제다는 여간 예민하고 철학적 고민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입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논문을 채댁할 때는 그 방면 전문가들의 개관적인 검증과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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