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차를 마시는 사람은 많지만, 도(道, 선禪)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차에 먹힌다.” -센 리큐(센노리큐)-

『초암다실의 미학』은 차茶), 다도(茶道)에 대한 책이 아니다. 단순히 차의 음다법·제다법·차 산지·차 도구 등에 대해 궁금해서 이 책을 펼쳤다면 다시 덮어도 된다. 이 책은 ‘차(茶)에 먹히지 않는 안내서’이다. 차를 마시는 다도와 득도를 위한 선의 수행이 같은 경지라는 ‘다선일미(茶禪一味)’의 관점에서 ‘차(茶)와 선(禪)의 이어짐’을 초암다실의 미학적 구조를 통해 체험하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초암(草庵)’이라는 다도를 위해 만든 작고 소박한 다실 공간을 미학적으로 접근하여 공간 그 자체가 궁극적으로 선의 세계이며 불법 수행의 도량임을 보여 주고 있다.

초암다실(草庵茶室)은 작고 소박한 다실로 ‘와비다실(わび茶室, 侘茶室)’이라고도 하며, 일본에서 다실이라고 할 때는 흔히 이 초암다실을 가리킬 때가 많다. 일본의 다성(茶聖)이라 불리는 센노리큐(千利休)는 집은 비가 새지 않을 정도면 족하다고 하여, 초암차(草庵茶)의 정신을 강조했다. 동시에 그는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와비미(わび美, 侘美)의 구성에 한층 더 신경을 쏟아부었다. 다실의 천장이나 벽은 말할 것도 없고, 다실 내 특별한 공간의 너비, 깊이의 치수까지 까다롭게 따져 와비의 종합적인 미를 심오하게 추구하며 초암다실의 형식을 완성하였다.

초암다실은 다다미 4장 반으로(약 2평) 만들어졌다. 현재 일본에서는 이 4장 반을 우리나라의 고시원 정도의 작고 더 이상 싸게 구할 수 없는 방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 작고 좁은 공간에서도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은 좁은 게 좁은 것이 아니고, 넓은 게 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바로 ‘이것은 이렇다’라는 아집을 타파하는 것, 그것이 곧 선을 깨닫게 되는 방법이라 말하고 있다. 보통의 논리로써는 성립하지 않는 참선과 차(茶)의 정신은 같고, 가장 좁고 작은 다실 속에서도 가장 넓고 큰 세계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선(禪)을 깨닫게 구성된 초암다실의 구조

차는 단순히 마시던 음료였다. 음료에서 의식(儀式)이 되고, 거기에 정신적인 의미가 더해지면서 차를 대하는 본질이 바뀌게 되었다. 본질이 바뀌면 자연스레 그것을 품은 공간 역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차의 의미가 변했고 차(茶)와 선(禪)은 하나라는 다선일여(茶禪一如)를 공간으로 표현한 것이 초암다실이다. 다만 이 책에서는 선의 세계를 형이상학적 접근이 아닌, 초암다실이라는 실재하는 공간의 구조적 접근을 통해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는 데 의미가 깊다.

구체적으로 초암다실의 구조를 살펴보면,

(1) 선에서의 오묘한 깨달음인 무(無)의 관문을 상징하는 낮은 출입구인 '니지리구치(にじり口, 躙口)'

(2) 속계를 떠나 고요한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하는 '다실 정원인 로지(露地)'

(3) 일심득도(一心得道)와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나타내는 '징검돌'

(4) 인간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상징하는 감각기관인 '다실의 창(=六窓'

(5) 불상을 걸어 예배했던 불당이 그 원형인 '도코노마(床の間)'

(6) 마음으로 체득하는 미를 발견하게 한 묵적(墨跡, 붓글씨)과 묵화(墨畫)의 '족자'

(7) 마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하며 일심득도의 대상이 되는 '꽃'

(8) 마음의 수련 대상이 되는 「물(水)」 등으로 전개되어 있다.

『초암다실의 미학』은 일본의 선학자禪學者이자 불교학자 후루타 쇼킨(古田紹欽)의 책 『초암다실의 미학(草庵茶室の美学)』(淡交社, 1990)을 완역한 것으로 미국에서는 「The Philosophy of Chashitsu(다실의 철학)」으로도 출간되었다. 초암다실은 선禪을 지향하는데, 선이 지향하는 목표는 ‘무無’를 자각하기 위함이다. 만사를 내려놓고 집착을 끊을 때, 마음의 아만我慢과 아집我執을 버리고, 무아無我의 경지에 다다를 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내 마음의 ‘이것은 이래야만 해’, ‘저 사람은 저래야지’라는 나만의 경계를 내려놓고 마음속에 숨어 있는 초암다실의 공간을 찾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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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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