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에 차를 마시다

글 그림 부산여자대학교 이경남 글 그림 부산여자대학교 이경남l승인2023.04.24l수정2023.04.2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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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대 자사(紫沙) 곡호(曲壺) 그림 이경남.

그림으로 만나는 차 이야기 8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 때는 차문화가 쇠퇴했다가 명나라로 접어 들면서 다시 부흥하였다. 당송시대 ‘단차團茶’는 돌처럼 단단하게 긴압되어 있었고 멧돌로 갈아서 가루차로 만든 것이었는데 , 이때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일본 말차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생산 된 단차는 매우 정교하고 화려한 문양을 갖고 있었고 고된 제조과정과 비싼 가격때문에 차를 공물로 바치는 새로운 세금제인 ‘공차(貢茶)문화’가 민중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용봉단차(龍鳳團茶)는 송나라 황제에게 진상한 최고급의 공차이다. 공차는 한 품종을 5년 만 올릴 수 있었고 그 후 새로운 품종으로 바꾸어야 했기에 해마다 새로운 차를 구하기위해 고심하였다. 또 용과 봉황의 모양을 한 덩어리 차로 만들기가 지나치게 정교하고 백성들의 과도한 노동력이 요구 되었으며 음다법도 복잡하였다. 백성들은 이러한 덩어리 차 대신 저렴하고 편리한 ‘산차(散茶)’를 원하게 되었고, 이미 북송 말기에는 산차의 수요가 단차를 뛰어 넘었다.

명나라, 포다법이 시작되다

명나라(1368-1644) 시조 주원장은 전란에 폐허가 된 나라를 살리고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사치스럽고 복잡했던 단차(團茶)를 금지하는 단차폐지령(1391)을 시행하였고, 긴압 하지 않은 산차(散茶)형태의 차를 생산하면서 다양한 차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국가의 정책이 바뀌면 백성의 생활방식과 수요가 바뀐다. 황제가 나서서 단차를 산차로 바꾸면서 1000여년 이어 온 음다방식이 지금의 음다법인 ‘포다법(泡茶法)’의 기틀을 만들게 되었다. 명나라 때의 차는 증청 단차에서 증청 산차로 마지막에는 초청 산차로 이어져서 찻잎 전체를 우려 마시는 방식이 된 것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던 단차를 가루 내어 일구어 마셨던 송대의 방식에서 벗어나 차를 만들고 마시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잎을 찌지 않고 솥에 덖는 가공기술이 발전하면서 차의 종류도 많이 늘어 났고, 산지 별로 각각의 개성을 뽐내는 명차(名茶)들이 탄생하였다. 덖음 녹차 즉 초청 녹차는 명대에 제조법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있다. 귀족이나 궁궐에서도 찻사발에 일구어 마셨던 단차 대신 산차를 우려서 찻잔에 따라 마시는 방식이 된 것이다. 찻사발은 사라 지고 산차를 우리기 위한 작은 차호와 우려서 따라 마실 수 있는 작은 찻잔이 필요하였다. 명나라 때 유행한 다구는 선요에서 생산된 백유(白釉)로 작은 찻잔이었다. 차를 우리면 탕색이 맑으므로 찻잔은 송대에에 유행했던 흑유를 쓰지 않고 흰 색을 최고로 쳤다. 그 시기 장원(張源)은 <다록(茶錄)>에서 ‘차는 푸른 비취색이, 그릇은 백색이 좋다’고 하였다.

▲ 공춘호 (供春壺) 그림 이경남.

최초의 자사호 

작은 차호에 차를 우리는 방식은 16세기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오고 있다. 크기가 적절하고 깊이도 적당하여 자사호도 명나라 때 매우 유행했는데 명인이 만든 것은 천하의 귀한 물건으로 대접 받았다. 자사(紫沙)는 중국 강소성 의흥(宜興)남부 산악 지대에 분포된 분사암 광물질로 “자줏빛 모래흙’이란 뜻이다. 자사를 이용해서 만든 다관을 ‘자사호(紫沙壺)’라고 불렀다. 일반 도자기와 다른 점은 유약 처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표면에 미세 기공이 있어서 투기성을 가져서 차 본연의 맛을 풍부하게 이끌어 낼 수 있다. 또 보온력이 우수하여 잘 식지 않고 오랫동안의 ‘양호(養壺)’를 거친 자사호는 아름다운 광택과 아름다움이 더해진다. 명대의 포다법으로 차의 음다 방법이 변하면서 잎차를 우리는 차호 가운데 자사호의 수요가 커졌고 의흥 도기를 최상품으로 여겼다. 주고기(周高起)는 <양선명호계(陽羨茗壺系)>에서 “최근 백년간 호는 은, 주석, 자기를 멀리 하고 의흥의 도기를 높이 샀다.”고도 했다.

명나라 가정연간(1506-1566)의 사람인 공춘(供春)이 만든 공춘호가 최초의 자사호이다. 공춘은 중국 의흥 선비 오이산의 시종 신분이었다. 현재에도 공춘호(供春壺)의 형태가 전하고 있으며 공춘호 양식의 자사호를 재현하기도 한다. 공춘호는 손자국을 남기는 방식으로 울퉁 불퉁한 표면이 마치 나무 표면의 혹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공춘은 자사호의 시조가 되었고 이후 자사호의 대사와 명인들이 명 청대를 거치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속 속 등장하게 된다. 자사호는 단순한 다구가 아닌 예술품으로서 차를 달이는 찻자리의 주인을 더욱 빛나고 우아하게 만들어 주는 멋스러움이 있다.

작은 차호와 찻잔을 선호했던 이유는 차를 손님이 마실 때 마다 바로 따라 주어 신선한 맛을 계속 유지하기 위함 인데, 자사호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시대빈(時大彬)은 당시 크기가 작은 차호로 개량하면서 자사호가 문인들의 감상품이 되었다. 점다법으로 투다에 열광하던 송나라의 차문화는 명나라의 포다법으로 넘어오면서 차를 정성껏 다루는 익숙한 기술을 중시하며 더욱 정교한 다구인 자사호를 애용하도록 만들었다. 자사호에 대한 미적 요구는 점점 커져 갔고 차를 마실때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신비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섬세하게 만든 자사호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명나라의 다서 <다소(茶疏)>에서 차를 마시기 적당한 시간과 장소, 환경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다소에 ‘차는 여유로울 때 마시는 것이 좋다’고 나와 있는데 바쁠때 마시면 차의 섬세한 맛을 느낄 수 없어 차를 낭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햇볕이 약하고, 비가 조금 내리는 날, 숲이 우거진 곳, 연꽃이 있는 정자, 향을 피워놓은 작은 정원, 모두 차를 마시기 적당한 장소라고 하였다. 다른 다서 <다해(茶解)>에는 깊은 밤 산속에서 홀로 차를 끓이면 물 끓는 소리와 소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어우러져 들리고, 실내에 퍼지는 은은한 차향이 몰아(沒我)의 경지로 이끈다고 나와 있다. 이렇듯 시대를 불문하고 차는 자연과 교감하는 조화로움 속에서 평온함과 우아한 아름다움의 경지로 우리를 이끌어 주며, 그 시대의 다법에 어울리는 다구는 단순한 실용적인 차원을 뛰어 넘어 풍요로운 정신세계와 문화를 선물해 주었다. 오늘날의 다구는 차의 종류 만큼이나 다양해졌다. 검소한 것에서부터 화려한 것에 이르기까지 또 기능과 형태 또한 선택지가 넓어져서 차의 종류에 따라서 그에 어울리는 다구를 선택하여 색, 향, 미를 감상할 수 있으니 현대의 다인(茶人)들은 참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다. 창 밖에 비가 조금씩 내린다. 차 한 잔 우려야겠다.


글 그림 부산여자대학교 이경남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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