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차 부흥을 위한 제언 4

지난 글(시리즈2)에서 ‘건강·수양음료’라는 정체성을 지닌 녹차를 기호음료 반열에 추락시킨 것이 한국차 쇠망의 원인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대중은 기호성을 따르므로 기호성이 떨어지는 녹차는 경쟁력이 없다고 할지 모른다. 이는 녹차의 뛰어난 기호성 및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건성으로 하고 있다는 자백이다. 녹차가 ‘건강수양음료’라는 말이나 녹차가 다른 차류 보다는 ‘한 차원 높은 차’라는 말은 녹차가 근본적으로 월등한 기호성으로서 ‘환상적인 차향’ 및 이른 봄날과 같은 신선한 맛을 지녔다는 말이다. 녹차의 차향이 산화발효 계통 차류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녹차의 차향은 생찻잎에 들어있는 우주자연의 청신한 기운茶神이 자연상태 그대로 발현된 것이고, 산화발효차의 차향은 그런 자연의 기운이 인위적으로 변질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무공해 자연식품과 인공 가공식품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농씨가 찻잎을 발견하게 된 것도 생 찻잎의 매력적인 향에 이끌린 탓이다. 백차白茶가 녹차로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이유도 생찻잎에 아무런 인위를 가하지 않은 탓이다. 또 다도는 동양사상 도가의 기론을 이론적 기반으로 하고 있고, 도가에서는 “無爲而無不爲(인위를 가하지 않아야 자연이 다 이루어 준다)”라고 하여 인위적 작위를 극도로 거부하므로, 인위적 조작에 의해 자연성이 망가진 보이차 따라놓고 조주선사 초상화 앞에서 “끽다거!”나 “다선일미...” 어쩌고 저쩌고 염불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제다, 다도, 차의 4향등 다양한 과제

여기에서 초의선사가 명대 장원의 『다록』을 베껴 옮기면서 책 이름을 『다신전』이라 지은 이유, ‘정 → 기 → 신’의 관계, 제다 및 수양다도의 원리, 좋은 차란 어떤 차인가, 초의선사가 『동다송』에서 말한 ‘다도’의 의미, 차의 4향(진향, 순향, 청향, 난향)과 제다의 문제.... 등 한국의 차인과 차학자들이 깊이, 그리고 제대로 이해해야 할 과제들이 파생된다. 필자가 감히 이를 한국 차인과 차학자들이 깊이 이해해야 할 과제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 여느 차인들의 주장이나 차 담론 또는 차학자들의 논문이나 저술에서도 위 항목들을 일관된 요인의 과제로 꿰어 그 의미맥락을 규명하거나 진술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관심조차 없었기에 이에 관한 학구적 관점을 세워 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라고 하는 게 적절한 지적일 것이다. 한국차학회의 현실과 동떨어진 학술대회 주제, 일부 지방대 차학과 관계자들이 적쟎은 공공 예산을 써가며 차로서 가치를 잃고 일찍이 폐기된 당·송대 떡차류 ‘복원’에 매달리는 현상들이 근래 한국 차학계 활동의 두드러진 모습이 아닌가. 다만 그들의 무지와 몰지각을 탓할 수만은 없는 것이, 위 과제들은 다산이나 초의처럼 오랜 기간 (야생)차나무 옆에 붙어지내면서 고민과 연구를 거듭하며 직접 제다를 하고 녹차의 속성에 따른 수양론적 다도를 실천해 본 사람이 아니면 체득할 수 없는 내용들이라는 것이다.

초의가 제시한 다도의 본질 알아야

본론으로 들어가서, 초의선사가 책 이름을 원전(『다록』)의 이름과는 딴 판으로 『다신전』이라 한 것은 『다록』에 있는 ‘다신茶神’이라는 말에 꽂혀 다신의 의미가 매우 중요함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초의처럼 생찻잎의 환상적인 향의 의미를 터득하여 제다에서 완제된 차에 그것을 살려내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 아니고는 ‘다신’이 무엇을 뜻하는지 붙잡을 수 없는 탓이다. 오늘날 『다신전』과 『동다송』을 자신의 학문적 존립근거로 안고 사는 이들이 『다신전』이라는 책 이름의 깊은 의미를 모르고 헛발질 해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동다송』의 저술동기이면서 결론이자 핵심주제인 “다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제60송 주석 ‘평왈(評)曰)...’에 들어있음을 모르고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앞부분 한문 인용구들만 죽어라 외우고 가르치는 한국 차학계와 차계 사람들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여기서 ‘다신’의 정체를 논하기 전에 동양사상 기학(氣學 또는 氣論)에서 말하는 ‘정精 → 기氣 → 신神’의 관계와 내용을 이해하고 갈 필요가 있겠다. 동양사상의 존재론적 사유에서 우주자연의 존재를 구성하는 질료는 ‘기氣’다. 기는 변화무상한 것으로서 자연적 조절요인(자연계에서) 또는 인간의 수련(사람의 심신에서)에 따라 ‘정精 → 기氣 → 신神’의 단계로 고도화된다. 여기서 정은 물질적인 기, 기는 물질과 정신 중간단계의 기, 신은 정신적인 기로서 일종의 입자성 파동에너지이다. 따라서 다신은 찻잎에 담긴 자연의 입자성 파동에너지로서 우주의 청신한 기운, 즉 자연의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의 이러한 역동성妙과 변화의 원리 때문에 인간의 기질을 정화 숙련하는 수양이 가능하다.

독철왈신 녹차 마시는 다도 수양원리 천명

초의선사는 『동다송』에서 ‘독철왈신(獨啜曰神 : 혼자 마시는 것을 神이라 한다)’을 음다법의 최상으로 소개했다. 흔히들 ‘독철왈신’을 “혼자 마시는 차를 신비하다고 한다”라고 얼버무리고 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가? 얼버무리는 것은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다. ‘독철왈신’은 한 마디로 녹차를 마시는 다도수양의 원리를 천명한 것이다. 차(녹차)를 홀로 마시는 것은 우주의 청신한 기운(다신)을 심신에 이입시켜 그 다신의 파동에너지인 신통력神通力으로써 우주자연에 가득한 생명력으로서의 신神과 공명을 일으켜 자연합일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원리이다. 이는 초의가 『동다송』에서 창의적으로 제시한 ‘다도’의 원리와 의미로 이어진다. 초의는 『동다송』 제60송 주석에서 ‘다도’를 “채진기묘, 조진기정, 수득기진, 포득기중”이라 했다. 이를 『다신전』 ‘다도’의 “조시정 장시조 포시결(만들 때 정성을 다하고, 보관에 건조를 기하고, 우릴 때 청결하게 한다)”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차이는 『다신전』과 달리 목적어인 묘, 정, 진, 중에 모두 정관사에 해당하는 ‘기其’ 자를 붙여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조진기정’의 ‘정’은 정성이 아니라 찻잎에 담긴 ‘정精’ 즉 ‘정기精氣’를 가리킨다. 같은 이유로 ‘채진기묘’의 ‘묘’는 “묘함을 다해라”라고 막연히 해석하면 아무도 이해할 수 없으니 “생찻잎이 지닌 청신한 기운인 다신의 활활발발한 역동성妙이 훼손되지 않도록 찻잎 딸 때 정성을 다하라”라고 해야 한다. 기론에서는 신神의 작동원리 및 상태를 “묘妙“라고 하고 여기에 ‘신神’ 자를 붙여 ”신묘하다“고 한다. 따라서 ”채진기묘 조진기정“은 ”찻잎을 따고 덖을 때 찻잎이 지닌 청신한 기운의 활동성이나 정기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라“는 주문이다.

한국의 다례는 단순한 행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이 앞에 든 “독철왈신”이다. 제다 과정에서 찻잎이 지닌 우주의 청신한 기운을 완제된 차에 잘 보전해 내어야 그것을 차탕에 우려내 마셔서 그 다신의 신통 기능으로 우주자연과 하나되는 자연합일이라는 득도의 경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차를 여럿이 왁자지껄 ‘대화’를 위해 마시는 ‘다례’가 아닌, 홀로 마시는 것이 진정한 다도라는 것이다. ‘신통神通’이라고 하면 비과학적 무속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서 말하는 신통은 선현들이 기氣적 소통에 의한 직관으로 파악해 낸 원리로서, 동양사상의 자연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기학의 학술 용어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요즘 일부 차 관련 단체 중심으로 차 행사장에서 시범을 보이는, 비싼 옷을 차려입고 여럿이 앉아 온갖 폼을 잡는 이른바 ‘다례’는 초의가 『동다송』에서 말한 “오육왈범五六曰泛”이나 “칠팔왈시七八曰施”, 즉 여럿이 그저 목 추기듯 나눠 마시는 것이지,‘독철왈신’처럼 다신茶神의 의미를 알고 마시는 다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차학계와 차계는 해외 차학계로부터 “중국 다예茶藝, 한국 다례茶禮, 일본 다도茶道”라 하여 한국 차문화가 우습게 비교평가되고 있는 데 대해 그 책임을 각성해야 한다.‘다례’는 일찍이 무초 최차란 선생이“모르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을 가르친 결과 모두가 모르게 되었다”고 한탄하신 것처럼 수양 지향의 다도가 아닌, 아무도 그 의미를 모르고 벌이는 행다行茶일 뿐이라는 것이다.

초의의 ‘다도’는 “채진기묘 조진기정”의 제다과정에서 “수득기진 포득기중”의 행다과정으로 이어진다. 차탕에 다신을 잘 발현시켜 내기 위해서는 찻물을 잘 골라야 하고(수득기진), 차를 우릴 때 찻물의 양과 차의 양을 과부족 없이(中) 잘 맞춰야 올바른(正) 차탕이 된다(포득기중). 여기에서 또 한국 다도정신을 ‘중정(中正)’이라고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정’은 차를 우릴 때 차와 찻물의 양을 과부족 없이中 해야 정상적正인 차탕이 된다는 의미로서 차탕의 ‘상태’를 말하는 형용사이다. 중정은 원래 춘추시대 『관자』에 나오는 ‘중정무사中正無私’의 줄임말로서 봉건시대 임금의 덕을 가리키는 정치 이념이다. 『동다송』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한국 다도정신은 정상적인 중정의 차탕을 만들어내는 마음자세인 ‘성誠’이어야 함이 동양사상의 견지에서 학술적으로 입증된다.

한국의 다도정신 중정에서 성으로 바뀌어야

혹자는 『동다송』의 다도정신을 ‘차삼매’라 주장한다. 그러나 『동다송』이 정조 사위 홍현주의 “다도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서임을 감안하면, 당시 숭유억불의 엄혹한 상황에서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왕가 일족에게 초의가 불가의 이념인 ‘선다’나 ‘차삼매’니 하는 애매모호한 불교의 말을 다도정신으로 권했을 리 없다. 위에 말한 ‘성誠’은 성리학 교과서인 『중용中庸』에 나오는 성리학의 최고이념이다. 따라서 『동다송』을 짓게 된 유래나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동다송』의 다도정신은 ‘성誠’ 이외에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동다송』을 원전으로 하는 한국 다도정신이라면 ‘중정中正’에서 ‘성誠’으로 바뀌어야 할 논리적 학술적 근거이다. 끝으로, 초의가 『다신전』에 이어 『동다송』에서 차의 4향으로 ‘진향, 순향, 청향, 난향’을 소개한 의미를 살펴보자. 차의 ‘4향’을 강조한 목적은 생찻잎에 ‘다신’의 형태로 든 청신한 기운으로서 녹차의 향(眞香)을 제다 과정에서 제대로 보전해 내라는 주문이다. 『동다송』(사실은 『다록』을 발췌한 『만보전서』)에서 “차에는 4향四香, 즉 진향, 난향, 청향, 순향의 네 가지 향이 있는데 겉과 속이 똑같이 순수한 것을 순향純香이라 하고, 설지도 않고 너무 익지도 않은 것은 청향淸香이라 하며, 불기운이 고르게 든 것을 난향蘭香이라 하고, 곡우 전에 따서 차의 싱그러움이 충분한 것을 진향眞香이라 한다.”고 했다. 

차품평 차향에 가장 높은 점수 배정해야

여기서 진향은 “우전 찻잎이 갖춘 청신한 기운”으로서 곧 다신茶神이고, 제다과정에서 솥에 들어가기 전 모습이다. 이 진향이 제다과정에서 제다인의 정성에 따라 순향, 청향, 난향으로 나타난다. 순향純香은 차탕을 여러 번 우려도 향의 성질이 별로 변화가 없는 것이니, 불기운이 찻잎 겉과 속에 같은 정도로 잘 스며들었다는 의미이다. 적절한 온도의 솥안에서 적절한 시간 두어서 얻은 결과이다, 청향은 불기운의 세기 조절을 잘 했다는 말로서, 찻잎을 솥에 넣는 순간 불이 너무 세서 찻잎 표면이 코팅되어 타거나 속이 설익지는 않았다는 의미이다. 난향은 마무리 과정에서 찻잎 몸통 전체에 연한 불기운을 고루 입히고 스며들게 했다는 의미이다. 차의 4향은 차향의 중요성과 그것을 보전해 내는 제다에서의 ‘성誠’을 강조하는 말에 다름아니다. 따라서 “차는 곧 차향”이라고 할 수 있다. 차시에 ‘정좌처다반향초...’라든가, ‘다향만리...’ 등의 말이 자주 사용되는 이유도 그것이다. 차의 3요소로 색, 향, 맛을 꼽는데, 색은 제일 먼저 눈으로 알 수 있고, 그 다음에 향이 파동에너지로서 와 닿고, 맛은 향에 지배되고 직접 입에 넣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녹차에 있어서 생찻잎의 진향을 잘 품고 있는 차의 탕색은 이상적인 연녹색이고 그런 차의 맛은 벌써 향에 지배되어 결정돼 있다. 특히 향이 맛을 지배한다는 것은 향 좋고 맛이 좋지 않거나, 향이 나쁘고 맛 좋은 음료는 별로 없다는 데서 이해할 수 있다. 또 향은 ‘다신’으로서 신(神)이 지닌 입자성 파동에너지 성격상 가장 현저히 감각을 자극하는 장점을 지닌다. 차향의 중요성은 좋은 차가 어떤 차인지 가르키는 지표이자, 품평에 있어서 차향에 가장 높은 배점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성민 철학박사.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생활예절·다도학과 강사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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