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부르는 세상은 동백꽃, 매화꽃을 피워 올리는데 우동진이 머물고 있는 매곡의 골짜기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매곡요 우동진. 매곡요 갤러리에 들어서자 그의 작품들이 한눈에 사람을 사로잡는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띠는 것이 바로 백자다완이다. 순백의 몸을 가진 백자 찻사발들은 부드럽고 유려한 선과 독특한 미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순백의 깊고 그윽한 향기 속에 들어있는 연질백자의 깊은 맛은 형언할 수 없는 향기를 가졌다. 내친김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 가만히 앉아 그가 만든 찻사발들을 만난다. 적토 찻사발과 흑토 찻사발이 나란히 어우러져 부드럽고 순수한 세계로 나를 이끌어간다. 그리고 그 선 뒤에 보일 듯 말 듯 살아있는 고향 냄새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전통방식의 장작 가마를 운용해 한국도자의 토착성들을 견고하게 구축해내고 있었다. 그런 작업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흙과 유약의 색상을 자유롭게 생성시킬 수 있는 기술적‧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학적인 면에서도 그의 작품은 우뚝 서있다. 그는 찻사발에 파도를 담고 산을 담고 화려한 꽃이 핀 자연을 담아내고 있다.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는 굽을 중심으로 몸에 바른 얇은 유약은 태토의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게서 우리 시대 찻사발의 표징이 어디에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개발한 숯을 넣어 물을 끓이는 물화로에 물을 끓인 후 자신이 만든 찻사발에 말차를 대접했다. 우동진은 과학과 열정으로 달궈진 사기장이었다.

"차맛을 극대화시켜주고 차를 마신 후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게 하는 찻사발의 아름다움은 차인들을 즐겁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도자기로서 완벽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완벽한 자화 그리고 유약과 태토의 조화를 통한 극대화된 작품성을 가질 때 비로서 찻사발은 완성된 찻사발로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그를 사기장이라고도 부르고, 흙 연구가라고도 부른다. 도예가를 졸업한 후 지질학과 공부를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선 사기장으로서 우동진은 한국 도자의 토착성을 유지하기위해 과거 우리 그릇에 담겨있는 따뜻한 정감과 자연의 미를 표현해내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전통방식으로 흙의 꼬막뜨기와 발물레를 사용한다. 그는 모든 도자기에 들어가는 흙의 재료들의 입자 크기를 200mesh(0.15-0.0007mm) 이상으로 만들어 사용한다.

"우리 작가들이 흙의 팽연성에 대해 알아야 한다. 한국작가들 대부분이 기술적 관점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어느 정도 하면 일정한 수준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도자세계를 구축하기위해서는 흙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해야 합니다. 도자기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흙에 대한 데이타 베이스입니다. 지금은 그걸 가진 작가가 몇 없죠. 기존의 벽을 넘을 수 있는 자신만의 기술적 관점을 확보해야 할 때 자신만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확보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는 그런 점에서 흙 연구가이기도 하다. 그는 1980년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흙에 관한 연구를 논문으로 남겼다. <경상남도 지역토에 관한 작품연구>, <매화피유약의 변화에 대한 작품연구>, <유적유에 관한 작품연구>, <무유태토에 관한 작품연구>, <유금현상이 없는 청자유에 관한 작품연구>등 흙에 대한 다양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 흙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냈다. 그는 그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들을 다양한 전시회를 통해 보여줬다. 3년 동안 연구개발을 통해 탄생시킨 진사다완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우동진 흙장미색 진사를 통해 독창적인 한국진사의 세계를 보여줬다.

"예술은 예술로서 남아야 한다. 일본의 차 선생들은 작가들을 좌지우지 합니다. 지금 일본작가들은 반성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차계도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차인들이 지정해준 대로 작품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옛날에 야나기도 그랬듯이 예술품들을 쓰는 사람들이 작가의 작품을 해석하고 맞췄습니다. 요즘은 젊은 작가들이 차인들의 요청에 예스라고 대답합다. 결코 그래서는 안됩니다. 작가는 자신의 예술관을 담아낸 작품으로 남아야 합니다."

그는 한국 차계가 작품을 분별할 수 있는 폭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30-4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500년, 1,000년을 결코 이야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작품들이 당대에 그 결과를 평가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운명적인 이야기가 예술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이 예술을 만들지요. 경제적 구조 속에 예술이 규정되기 때문에 한정성을 가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자기 나름대로의 독창성을 가지고 우리시대를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적‧예술적으로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러야 합다. 그것이 바로 작가로서 이 시대를 맞이하는 태도라고 봅니다."

매곡요 우동진은 과학과 기술로 흙과 유약의 예술적 표현을 극대화시킨 우리시대 몇 안 되는 작가다. 흙과 과학의 이중주를 완성 시켜가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 우리시대 도자예술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글 이상균 | 사진 윤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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