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오화백의 '한유'- 늦가을과 초겨울이 아름답다. 온 산에 단풍이 불타고 있다. 나뭇잎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다가 시드는 모양이 너무 예쁘다. 감동 이전에 사라지는 것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 전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푸름을 잉태하는 봄이 좋더니만 이제는 가을에 정을 둔다. 그러다가 겨울을 좋아한다. 무성했던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끝내는 나목으로 선 모습이 온통 자신을 비워서 좋다. 군더더기를 다 떨쳐 버리고 섰으니 얼마나 멋진가. 우리네 참모습 같아서 좋다는 느낌이다. 정원의 나뭇잎들이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떨치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도 이젠 만추와 초동의 나이가 되어서 그럴까?. 김준오화백은 부산에서 김준오화실을 운영하고 있다.
김준오화백의 '한유'- 늦가을과 초겨울이 아름답다. 온 산에 단풍이 불타고 있다. 나뭇잎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다가 시드는 모양이 너무 예쁘다. 감동 이전에 사라지는 것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 전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푸름을 잉태하는 봄이 좋더니만 이제는 가을에 정을 둔다. 그러다가 겨울을 좋아한다. 무성했던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끝내는 나목으로 선 모습이 온통 자신을 비워서 좋다. 군더더기를 다 떨쳐 버리고 섰으니 얼마나 멋진가. 우리네 참모습 같아서 좋다는 느낌이다. 정원의 나뭇잎들이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떨치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도 이젠 만추와 초동의 나이가 되어서 그럴까?. 김준오화백은 부산에서 김준오화실을 운영하고 있다.

늦가을과 초겨울이 아름답다. 온 산에 단풍이 불타고 있다. 나뭇잎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다가 시드는 모양이 너무 예쁘다. 감동 이전에 사라지는 것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

전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푸름을 잉태하는 봄이 좋더니만 이제는 가을에 정을 둔다. 그러다가 겨울을 좋아한다. 무성했던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끝내는 나목으로 선 모습이 온통 자신을 비워서 좋다. 군더더기를 다 떨쳐 버리고 섰으니 얼마나 멋진가.

우리네 참모습 같아서 좋다는 느낌이다. 정원의 나뭇잎들이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떨치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도 이젠 만추와 초동의 나이가 되어서 그럴까?

하찮은 일로 서로 싸울 때 말리는 사람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서로에게 ‘참아라, 참아라’고 한다. 이 말은 ‘인내하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참아라’는 ‘참으로 되라, 참으로 돌아오라’는 뜻이다. 즉 ‘참모습을 찾아라’는 말이다. 참모습은 지옥 속을 헤매게 하는 화를 내지 않고, 사랑으로 가득한 참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참 모습은 진실하며 성실한 본래 자신으로 회귀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어에서 성실을 말할 때 진면목眞面目 ‘마지매(まじめ)’라고도 한다. 참된 모습을 말한다. 참모습에 안주하는 사람은 살심이 없다. 오직 생심만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마땅히 참 모습인 사람은 건강하고 행복하며 하는 일이 다 잘된다. 긍정적 사고방식은 참모습의 꽃이요 열매다. 부정적 사고는 참모습을 벗어난 꼴이다. 참모습을 찾은 사람은 언행에 있어 조금도 거리낌이 없어 자유자재해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선과 명상을 통해서 자신의 참모습을 찾는 수련을 한다. 그게 공부다. 차인은 차를 통해서 참모습을 찾는 수련을 하고 수행한다. 자기의 현재 모습과 참모습과는 얼마나 다른가를 깨달아 알아내는 것이 ‘이 뭣고?’이고 ‘쓰심마(是心摩)’다. 자기 자신의 현재 모습이 참된지, 아닌지를 알아내고 깨닫는 일이 선이고 명상이다.

깨달음은 자기의 참모습과 가짜 모습을 대조해 반성하는 일이다. 결국 참모습 쪽으로 안주하게 된다. 오랜 세월을 두고 관습이 된 가짜 모습은 좀처럼 벗어나기 쉽지 않다. 진실로 절실하게 깨달았다면 참모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참모습은 가장 바르고 편안한 안락의 경지에 있음이다. 참모습은 따져서 되는 게 아니다. 참모습은 올바른 잣대다.

참모습을 찾는 선수행은 고행이 아니고 환희스럽고 행복한 경지다. 고통과 고행은 참모습을 벗어날 때 발생한다. 지옥을 자각케 하는 고통은 바로 참모습에서 이탈했음을 알려주는 좋은 소식이다. 따라서 어떤 괴로움과 고통도 인생에 있어서 참모습을 찾아 올바르게 잘 성장케 하는 비료이며 영양제다.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견인차다.

‘따지지 말라’는 ‘얼른 참모습을 찾아라‘는 의미심장한 가르침이며 참모습을 찾는 깨달음을 재촉하는 촉매제다. 참회懺悔 역시 참모습으로 돌아오라는 뜻이다. 진정한 참회는 참모습을 찾는데서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다.

다도교육은 차를 통해서 참모습을 찾고, 참모습에 안주하는 것이다. 다도에서 가르치고 배워야 할 첫째 목표가 참모습이며,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 뭣고?’는 참모습을 찾는 일의 시발점이다. 신근信根을 굳건히 해 참모습을 찾는 깨달음의 작업이다.

참모습, 즉 진면목은 대자유 대자재의 자리이며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참회하고 화목한 평화의 자리다. 참모습을 찾는 일은 ‘세수하다가 코 만지는 일’보다 쉬운 일이다. 따지지만 않는다면. 차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참모습’을 찾게된다. 참되고 성실하게 된다. 차는 어떤 예술, 어떤 공부보다 우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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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석관 그림 김준오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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