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주휴차作酒休茶’.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까 나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의도하지 않았던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 글쟁이가 된 것이다. 글은 마감시간이 정해져 있다. 글쟁이는 마감시간을 지키는 사람이다. 마감시간을 의식하면서 글을 쓰다보면 긴장이 온다. 아무리 긴장을 안하고 편하게 쓰려고 마음먹어도 긴장은 온다. 긴장이 오면 목 뒤 어깨가 굳는다. 여기 굳어가지고 고생 많이 했다. 뜸도 뜨고, 침도 맞고, 마사지도 받고, 어깨 운동도 하고, 요가 자세도 취한다. 그 와중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버릇이 글을 쓰기 전에 술을 한잔 하고 쓰는 습관이다. 위스키나 중국 백주白酒를 한 두 잔 하고 쓰기 시작하면 얼굴이 붉어지면서 약간 ‘알딸딸’한 상태가 된다. 술 먹고 글을 쓰면 긴장이 완화되는 효과를 누린다. 마감 시간을 지키고 난 후쯤이 되면 술이 깬다. 이 시점에 마셔야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차茶이다. 글을 지을 때는 술을 마시지만, 쓰고 나서 쉴 때에는 차를 마시는 것이 근래에 형성된 필자의 습관이다. 이를 ‘작주휴차作酒休茶’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술이 깰 무렵에 차를 마시면 다시 정신이 말끔 해진다.

‘입주출차’(入酒出茶:들어갈 때는 술이지만, 나올 때는 차이다)라고나 할까. 정신이 깔끔해진다는 것은 뇌의 전두엽 부위에 드리워졌던 구름 같은 것이 걷어져 맑아진다는 느낌이 드는 상태를 일컫는다. 좋은 차의 효능 가운데 하나는 전두엽이 맑아진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반대로 저녁에 차를 마시면 정신이 너무 초롱초롱 해진다. 전두엽이 너무 맑아도 문제이다. 잠이 안 오는 것이다. 이때는 ‘빽알’을 두어 잔 마시면 다시 구름이 드리워진다. 구름이 없어도 문제요. 있어도 문제인 것이 우리 인생사이다. ‘음주망국飮酒亡國이요, 음차흥국飮茶興國’이라는 말에 비추어 보면 내 인생은 수시로 망국과 흥국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셈이다.

술은 선생이 없이 혼자서 마시기 시작했지만, 차는 선생이 있었다. 말차抹茶의 맛과 격조를 알게 된 계기는 부산 숙우회熟盂會의 강수길 선생 집을 방문하면서 부터이다.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운대의 언덕 4층에 강 선생의 집이 있다. 하얀 은으로 만든 찻잔에다가 은 쟁반에 내 온 한 잔의 녹색의 말차는 그 대비되는 색감 자체만으로도 마음을 차분하게 내려주는 효과가 있었다. 말차 맛이야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찻그릇과 차를 타주는 주인장의 절제된 동작에서 그 어떤 동양적인 품격이 전해져 왔다. 동양에서는 불언지교不言之敎:말하지 않고 가르침를 높은 교양으로 보는 전통이 있다. 말이 많으면 서로 간에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은제 다관에 타 주는 한 잔의 말차야 말로 ‘불언지교’의 내공이 담겨 있다.

보이차는 10여 년 전쯤 제주도의 요가 마스터인 한석명韓石明 선생을 만나면서 부터이다. 매일 요가 시간이 끝나고 나면 석명 선생은 직접 차를 타 주었다. 광운, 무지홍인, 남인철병, 7542 등등의 고급 보이차를 뭣인지도 모르고 얻어 마시기만 했다. 그때는 이런 차들이 비싼 차인지, 좋은 차인지도 모를 때였다. 석명 선생의 주특기는 이런 차들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는 점이다. "이거 몇 십 년 된 차입니다"와 같은 멘트는 없었다.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차를 타주기만 하였다. 물정도 모르고 “그때 마시던 그 차 맛이 좋던데 지금 좀 먹을 수 없습니까”하고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10여년을 마시면서 보이차의 맛에 대하여 조금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 좋은 차를 다 마셔버려서 생차를 먹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니까 초의草衣 선사의 글이 마음에 와서 박힌다.

 

‘정좌독서靜坐讀書 다향만실茶香滿室 통시음차誦詩飮茶 필자한야必自閑也’.

 

동양학자/칼럼니스트 조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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