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차회가 있은 지 벌써 열닷새가 지났다. 그런데 그날의 소회를 쓰기 위해 이렇게 펜을 든 것은 아직 그날의 차향이 여운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지금 이 펜을 들기 전 다시청茶時廳에서 차회 중에 들은 내 지인으로부터의 들었던 동춘차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지인 그녀(교사)는 차를 아직 잘 모르는 그저 일반 대중에 불가하다. 함께 마시는 차가 어떤 차라는 음차 전前의 설명도 없었다. 그러나 막 우린 동춘차 첫 잔을 마시고 그녀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어머! 선생님. 내 안에 산이 들어온 느낌이에요. 아주 큰 여름 산 하나가 온통 내 안에 든 느낌! 그런거요. 그저 아무 댓구도 할 수 없는, 차를 드시라 눈짓으로 손짓으로 할 수 밖에 없는 무아지경이에요”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에서 ‘봄날의 차회’ 소식이 전달된 것은 약 한 달 전쯤이었다. 참석 문자를 보내고 차회 하루 전에 상경했다. 누노바나(布花) 작가인 마쯔오카 후미꼬(松岡史子)상과 인사동에서 하룻밤을 묵고 차회에 참석하기 위해 연구소를 들렸다. 그 자리에서 박동춘소장님이 부탁을 해왔다.

“정박, 정박이 사회를 좀 봐 주면 좋겠는데ㅡ”

“어머 선생님 저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음차 시간을 기대하며 올라왔는데요.ㅡ”

“아무것도 필요 없는데 지금 그 마음이면 충분한데ㅡ”

그렇게 시작된 ‘봄날의 차회’. 오후 1시 반이 넘자 120여명 가량의 손님이 몰려들었다. 간소하고 깔끔하게 몇 개의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3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경로와 방법을 소개하는 것으로 행사는 진행되었다. 행사가 마무리되는 5시까지 손님들은 사뿐사뿐, 오순도순, 도란도란 차를 즐기기 시작했다. 찻자리는 여덟 군데, 팽주도 여덟사람, 다섯 분씩 세 순배 정도 돌아가는 셈으로 차는 공급되고 모두는 그렇게 행복한 찻자리를 즐겼다.

당초 예상한 인원은 100명 정도. 개인의 지인보다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의 이름으로 홍보하고 맞이한 손님들이었다. 마치는 시간까지 약 200명의 음차인들이 함께 했다. 동춘차의 인지도도 한 몫을 했겠지만 무엇보다 차 한 잔의 갈증으로 참여한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 이날의 중론이었다.

“향이 가볍지 않고 무거운 바디감이 있다. 회감이 아주 좋다.”

“차는 제다인의 인품 즉 성품을 깊이 닮아 있다.”

“맑고 시원하고 깔끔하다.”

“탄닌이 고급스럽게 숨어서 부드럽게 맛을 내는 이런 차는 처음 만났다.“

누노바나(布花) 작가인 마쯔오카 후미꼬(松岡史子)상도 “6월 초 조용히 앉아 있는 어느 산기슭 자리에 스미고 스쳐가는 청량한 바람과 같은 그런 느낌과 맛이다.”

팽주들의 모습도 아주 차분했다. 본인의 얄팍한 차 지식으로 차를 왜곡하거나 오도하는 경우도 없었다. 더구나 한복차림은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여느 찻자리 못지않게 손님은 많았고 차맛과 그에 대한 느낌 또한 풍부했다. 제다인의 성품은 차 맛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찻자리 곳곳에서 품위와 격이 달랐다. 우리 고유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났다. 향후 차문화 대중화의 미래희망을 발견한 특별한 자리였다. 공간은 부암동 무계원 기역(ㄱ)자 공간을 사용하였다.

동춘차를 마실 수 있는 찻자리가 메인공간인 안채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동춘차의 제다를 전방위적으로 공개하는 전시 공간. 이 공간에서는 사진과 설명, 영상이 상영되었다. 사랑채에서는 박동춘소장과 8년 공동 작업으로 완성된 이명균 작가의 청자 찻그릇 전시회가 열렸고 약간의 여흥으로 즐기는 몇 곡의 연주와 공연이 대청마루에서 진행되었다. 음차를 즐기고는 한 자리에 모여 제다인에게 직접 듣는 제다소회 박동춘 소장의 토크쇼, 이명균 작가가 들려주는 찻잔의 가치 등이었다.

무엇보다 음차가 진행되는 시간 동안 ‘한국 차문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이라는 질문을 쪽지로 받았다. 차문화사의 오랜 숙제 같은 질문들이 아주 소박하면서도 차분한 진행 속에서 궁금증을 풀어나갔다.

아주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제다철만 되면 고개를 드는 9증9포 논란, 전통차의 다맥에 대한 논란, 우리차의 음차법, 떡차와 덖음차의 문화적 차이, 숙우의 사용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 다채로운 Q&A가 즉석에서 이루어지는 유익함도 갖추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자리에서도 볼 수 없는 찻자리 그림에 차문화를 연구하는 학자 입장에서 밝은 내일을 꿈꾸는 상큼함에 지금까지도 입가에 미소가 머물고 있다. 깨끗한 물 위에 번지는 물북처럼 ‘봄날의 다회’ 그날의 여운은 서서히 우리 차문화의 모습들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갈 것이다.

 

다시청에서 목포대학교 연구전임교수 정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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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대학교 연구전임교수 정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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