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그렇게 오랫동안 차 생활을 해오면서 한번도 중국차 한국차의 다법을 제대로 배워본적이 없는 것 같아요. 우라센케 정식지부에서 3년 정도 일본의 다도를 배우고 있지만 가루차 위주라 조금 다름이 있구요.

평소 자주 마시는 잎차의 경우... 대부분 어깨 너머로 본 것을 토대로 혼자 놀다 보니 스스로 마시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그렇게 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그냥 즐겨왔던 것 같습니다. 차의 기분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차를 어떻게 마실 것인가. 삼십번 쯤 우려 마시면 애써 배우지 않아도 마시는 법을 스스로 깨칠 것이다. 백 번쯤 우려 마시면 자신의 몸과 기질, 취향에 맞는 방식을 저절로 체득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지루한 짓을 백번이나 반복하다니, 그것이 다도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랴.”딱 제 애기인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우연히 다도를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갤러리 관장님이신데, 우연히 그분이 다도 하시는 걸 보고 제가 정식으로 배우고 싶다고 청한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차 생활을 한 기간으로만 보면 제가 더 오래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독특한 자신만의 개념으로 다도를 하고 계신 모습을 보고 이 분의 다도를 꼭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만 마시는 것은 그저 사치에 불과합니다. 차의 좋은 기운이 몸을 열어주는 순간 수행을 해야만 비로소 차를 마시는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단순히 마시고 즐기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차가 주는 에너지를 통해 깊은 정진에 이르러야 한다는 그분의 철학은 이제껏 차를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매일간이 새벽 3시에 일어나 108배를 하고 한두시간 정도 호흡수련을 하신지 수년이 되셨다고 하더군요. 사실 주변에 스님도 계시고 자칭 도사들도 많습니다만, 이처럼 수행을 일상에서 꾸준히 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아는 것과 행동으로 하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 해도 무관하지요. 제가 배워야 할 점이 참으로 많은 분임이 분명했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수행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방식으로 할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처음부터 말씀하시길, 다도의 형식을 배우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하시더군요. 찻잔을 잡는 순간부터 오로지 찻잔에 몰입하여 온전히 집중하는 것. 그것이 곧 명상이자 수행의 방법이고 진정한 다도이기에 형식을 하나 하나 익히고 적는 것 보다 몰입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살다보면 기분이 나쁠때도 있고, 화가 날때도 있고, 불안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감정들은 외부의 여러 가지 에너지들이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때 내면에 있는 나의 힘으로 외부를 정화할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한방신경정신과 한의사로서 제가 환자분들게 드리는 메시지와 상통하는 면이 있어 여기까지는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차와 수행에 대한 이분 만의 철학은 지금부터가 정수입니다. 좋은 차를 마시는 것 만으로도 20%정도는 도움이 되지만 차를 마시면서 몸이 이완되는 순간의 느낌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면서 단전호흡을 할때 비로서 100%의 정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차를 마셔야 찻값을 하는 거라고 하시는 말씀에 쉽사리 이견을 달기 어려웠지요. 그러고 보면 보통은 바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잠시 짬을 내어 별 생각없이 습관처럼 차를 마시기 일쑤였던 것 같습니다. 이분이말씀처럼 차를 마시는 순간만큼이라도 일상의 번뇌에서 벗어나 온전히 집중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그런 수행의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내면의 평화가 얼마나 고요하고도 깊을지...왠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지요.

호흡법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배워오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메모를 해왔는데요. 저와 같은 마음이신 분들이 혹여나 계시다면 도움이 되실까 싶어서 수행의 방법을 좀 더 상세히 적어봅니다. 차를 조금 마시다 보면 몸이 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열린다고 표현하는데, 차를 마셔본 분이라면 한번쯤 경험해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순간 결가부좌를 하면서 호흡법을 시작하면 됩니다.

호흡법

1. 결가부좌를 하여 허리를 곧게 편다.

2. 단전을 찾아 마음의 눈으로 단전에 집중한다.(배꼽아래 5-7센티)

3.갓난 아기때 하던 배호흡을 찾아 자연스러워질때까지 천천히 시행한다.

간단한듯 하지만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처음엔 호흡법이 익숙하지 않아 꼴딱 꼴딱 짧은 호흡이 이어지다가 익숙해지면서 점점 호흡이 길어지게 되는데요. 이 호흡법을 습관화하여 잘 수행하면,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고요함이 깃들게 되고, 그 결과로 상대방에게도 편안함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말에는 거짓말이 있을 수 있지만 소리나지 않는 언어인 행동, 몸짓 같은 것은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차 한 잔을 하고 호흡을 하며 편안함과 안정감이 나 자신과 상대방에게 까지 전달된다면 그것이 곧 수행입니다.”

주옥같은 말씀들이죠.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이분이 진짜 고수이든, 아니든 그런 것은 제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받아들이는 제 마음이 중요한 것이니까요. 감사하게도 이 방법이 저한테는 아주 좋은 명상법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즐거움과 맛을 위해서만 차를 마셨습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어요. 하지만 여기에 더불어 수행을 통해 내면의 인식을 고양하고 한결 편안하고 고요해진 에너지를 환자분들과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제 인격도 한걸음 더 성장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품어보게 됩니다.

열심히 하다보면 한 10년쯤 후에도 차 한잔 따라드리는 것만으로도 저를 찾아오신 분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드릴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그 순간을 고대하며 지금부터라도 수행을 열심히 해보려 합니다. 무심코 습관처럼 했던 행동 하나하나들이 새삼 새롭고 조금 더 의미 있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깊은 가르침과 더불어 저의 차 생활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이글에 <수행자의 차>라는 제목을 붙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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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연한의원 임형택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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