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차명茶名, 일상에서 발병하기 쉬운 증세와 약재의 효능

<부풍향차보>에 수록된 차명편.
<부풍향차보>에 수록된 차명편.

風 甘菊′ 蒼耳子 寒 桂′皮 茴香 暑 白檀香 烏梅′ 熱 黃連′ 龍腦 感 香薷′ 藿香 楸 桑白皮 橘′皮 滯 紫檀香 山査′肉 取點字 爲七香茶 各有主治 풍증에 감국․창이자, 한증에 계피․회향, 더위에 백단향․오매, 발열에 황련․용뇌, 감기에 향유․곽향, 기침에 상백피․ 귤피, 체증(얹힘)에 자단향․산사육(이 좋다.) 점자를 취한 일곱 가지 향차를 만든다. 각기 주된 치료 효과가 있다.

생활 속에서 가장 흔하게 발병하기 쉬운 풍증(중풍), 한증(오한), 더위(일사병), 발열, 감기, 기침, 체증 등에 효능이 좋은 향차를 만들었다. 주재료는 차이고 부재료가 향약재다. 이운해는 부임지의 차를 채취해 향차를 만들고, 건강을 지키면서 차를 잘 모르는 관민들을 계도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일상의 즐거움을 얻고자 상음할 수 있는 차를 만드는데 의서인 <동의보감> 을 보고 일곱 가지 증세에 좋은 약재(菊․桂․梅․連․薷․橘․査)를 찾아 점자를 취하고 구분하였다.

이러한 배경에는 조선 초기 향약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시대적 영향도 크다. 세종대는 의토성宜土性이 강조되었고 향약(우리나라 고유 약재)들의 실태를 조사하였다.《향약채취월령》,《향약집성방》,《향약본초》가 차례로 편찬되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자주적인 의학으로 크게 발전한 향약을 토대로 <동의보감> 이 간행되기도 하였다. <동의보감> 과 같은 의서들의 등장은 향약을 중심으로 약용차인 약차를 널리 보급하였고, 왕실, 유학자, 서민, 승려 등 다양한 계층에서 약차를 이용하였다. <동의보감>은 정精, 기氣, 신神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병 분류의 체계를 세웠으며, 양생법養生法을 강조하여 질병의 치료보다 예방을 중시하였고, 실증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사람의 체질에 맞는 맞춤의학을 도입하였으며, 또한 애민사상을 구현하여 의학의 범주를 서민들을 위한 민중의학으로 확대하였다. <동의보감>이 실용적인 것은 일정한 체계와 풍부한 내용으로도 이를 알 수 있다. 우리의 풍토에 맞는 조선의 의학으로 정착되었다는 신념과 기술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향약집성방에는 여러 가지 질병을 치료하는 데 차가 처방된 것이 20여 가지가 기록되어 있다. 주로 풍증風症, 열병熱病, 두통頭痛, 중독中毒, 곽란霍亂 등의 질병에 처방되었으며, 처방 형태는 환丸, 가루, 차탕茶湯 등이다. 환이나 가루약은 단독으로 또는 복합으로 처방되었고, 차탕茶湯은 다른 약재로 만들어진 환이나 가루약을 복용하는데 용매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차탕이 약을 삼키기 위한 기능만 했던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즉 다른 약재를 차탕과 함께 복용하여 치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처방으로 짐작된다. 또한 물 대신 차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많은 처방에 차가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약은 대체로 여러 가지 증상에 통용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앞서 우황청심원의 경우를 살펴보더라도 크게 중품中風과 담痰으로 인한 열증熱症, 또한 상한傷寒으로 인한 열증 이외에도 심기心氣가 부족한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약이었다. 그리고 󰡔납약증치방󰡕에 소개되고 있는 약들은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 소합원蘇合元, 지보단至寶丹 등은 구급약으로서 대표적으로 사용되던 처방으로 조선 초부터 널리 사용되었으며, 또한 고가의 약이었다.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의 경우 山藥․甘草․人參․防風․朱砂․水飛․牛黃․麝香․龍腦․雄黃 등 30가지 이상 들어갔으며, 그 중에는 인삼․사향․용뇌․우황 등 고가의 약물이 필요하였다.

이운해는《동의보감》을 참고하여 거기에 차와 향약재 한 가지를 더 섞어 차의 맛과 향을 가미하였다. 7종 향차는 국향차菊香茶, 계향차桂皮茶, 매향차烏梅茶, 연향차黃連茶, 유향차香薷茶, 귤향차橘皮茶, 사향차山査肉茶라 하였다. 흔히 글을 쓰는 약속에서 주主 대신 방점傍點을 찍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것이 향을 주로 한다거나 하는 것보다 내용에서 언급하였듯이 주된 치료효과 즉 효능이나 효험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증세에 따른 효능도 중요하지만 상음한다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마시기 좋게 향이나 효능을 높이기 위하여 향약재 두 가지를 첨가한 것으로 사료된다.

4. 제법製法, 향차를 만들고 보관하고 마시는 요령

<부풍향차보>에 수록된 제법편.
<부풍향차보>에 수록된 제법편.

茶六兩 右料每各一錢 水二盞煎半 拌茶焙乾 入布帒 置燥處 凈水二鍾 罐內先烹 數沸注缶 入茶一錢 蓋(盖)定濃熟熱服 차 여섯 냥에 오른쪽 재료 매양(늘, 언제나) 각 한 돈씩, 물 두 잔을 붓고, 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끓이다가 휘저어 뒤섞어주면서 불에 바짝 말린다. 이것을 베자루에 담고 건조하고 서늘한 곳에 놓아둔다. 마실 때는 정갈한 물 두 종을 탕관에 붓고 먼저 끓인다. 몇 차례 끓고 나면 (탕관의 물을)다관에 따르고 차 한 돈을 넣는다. 뚜껑을 덮고 진하게 우러나면 뜨겁게 복용한다.

제법에서는 차를 만드는 공정을 꼼꼼히 기록하였다. 차 여섯 량에 차명에서 말한 재료 각 한 돈이라고 했으니 한 가지 증상에 차와 두 가지 약재를 각각(各) 넣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운해는 바로 매每(字)라는 글자를 넣어 매양, 늘, 언제나를 강조하고 주지시키고 있다. 점자를 찍은 것은 그 증상에 큰 효험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두 가지 약재를 넣고 차를 만들고 차에 이러한 약재를 흡수시킨 것이 이운해가 말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점자를 취한 것은 이미 동의보감에 밝혀진 바 있다. 그것을 표시하기 위해 점자를 취한 것이다. 두 가지 약재 중 점자를 취한 것만 넣고 차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쓰지도 않은 약재를 굳이 기록할 이유가 없다.

반拌은 반차拌茶라는 차명이 아니라 차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차에 향약재가 흡수되도록 섞는다는 제다 공정의 방법론이다.《부풍향차보》는 차명과 제법을 달리하여 기술하였다. 각각의 내용을 중시한 현명함이 돋보인다. 차와 향약재를 섞어 만든다는 개념이 여기에 있다. 이운해가 말한 ‘방제신명유주치方製新各有主治’라고 했던 것도 몇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 번째는 차에 향약재를 가미했다는 것이다. ‘모든 꽃의 향기가 온전할 때 따서 섞어 만든다.-諸花香氣全時 摘拌’라는 기록도 반차의 기술적 방증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응당 뜨겁게 마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전통 음다법의 일탕법이다. 당시 남방의 각 사찰에는 차나무가 많으니 칠불암 선객들과 같이 나물죽처럼 끓여서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오직 해남 대흥사에 있어서는 초의스님이 차를 달이는 법과 제다법에 의하여 차의 진수가 이어져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하여간 이런 공정을 거쳐 만든 차는 좌선할 때나 손님이 왔을 때 그리고 대중의 공양 후에 음용했다. 차를 침출하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무쇠로 만든 다관에 물을 끓인 후 물이 완숙이 되면 다관에 직접 차를 넣고 조금 있다가 찻잔에 따른다. 지금 시중에서 흔히 사용하는 것처럼 물 식힘그릇熟盂을 사용한 적은 없다. 아예 물식힘 그릇 자체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본래 우리나라 차의 침출에는 물 식힘 그릇이 사용되지 않는다. 요즘 찻물의 온도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그러나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찻물은 뜨겁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옛말에도‘차는 (그 발음은) 찬데 뜨거운 것이 차이다.’ 라는 말이 있다. 따라서 차는 뜨겁게 마시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야 차의 효과가 크게 드러난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차를 넣는 방식은 상투법이다. ‘凈水二鍾 罐內先烹 數沸注缶 入茶一錢 蓋(盖)定濃熟熱服-마실 때는 정갈한 물 두 종을 탕관에 붓고 먼저 끓인다. 몇 차례 끓고 나면 (탕관의 물을)다관에 따르고 차 한 돈을 넣는다. 뚜껑을 덮고 진하게 우러나면 뜨겁게 복용한다.’는 기록은 물을 먼저 다관에 넣고 차를 나중에 넣었다는 음다 방법으로 상투법을 썼다. 향차이기 때문에 마실 때 향을 먼저 즐기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한편 이운해가《부풍향차보》를 기록한 때가 여름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전에 이운해가《부풍향차보》를 쓴 시기는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만약 여름이었다면 이운해는 <茶經>까지도 섭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 차문화사를 살펴보면 사찰에서는 흔히 일탕하투법을 주로 썼지만《부풍향차보》에서는 상투법을 이용하여 차를 우렸다. 여기에서 필자는 부풍향차가 여름에 만들어졌을 개연성을 시사한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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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대학교 인문학부 연구전임교수 정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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