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넘어선 언덕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오로지 원초적인 감정 밑바탕에서부터 올라오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다. 이 기쁨을 우리는 황홀하다고 한다. 우리는 그 황홀함을 자연의 장관속에서 종종 느낀다. 이 다완은 기면의 전면에 화려하고 형형색색의 다양한 컬러가 계절의 여왕인 초여름에 온 천하가 살아 숨 쉬는 형상이 잘 표현된 멋진 작품이다. 붉은색, 노란색, 녹색, 푸른색, 짙푸른 코발트까지 어울려 대지가 환희와 함께 춤을 추는 듯 한 표현이 삶에 대한 행복이 느껴진다. 여기에 말차를 비롯하여 계절에 맞는 연차 또는 짙은 진홍색을 띄는 시원한 오미자차를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파티의 주인공이 될까. 오늘 깊어가는 여름의 푸르른 황홀함에 내 마음을 맡겨보자.‘황홀한 자연’ 32.8x32.8x20.3cm. 해동대다완海棟大茶碗 2016. 해동海棟 양동엽작.
아름다움을 넘어선 언덕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오로지 원초적인 감정 밑바탕에서부터 올라오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다. 이 기쁨을 우리는 황홀하다고 한다. 우리는 그 황홀함을 자연의 장관속에서 종종 느낀다. 이 다완은 기면의 전면에 화려하고 형형색색의 다양한 컬러가 계절의 여왕인 초여름에 온 천하가 살아 숨 쉬는 형상이 잘 표현된 멋진 작품이다. 붉은색, 노란색, 녹색, 푸른색, 짙푸른 코발트까지 어울려 대지가 환희와 함께 춤을 추는 듯 한 표현이 삶에 대한 행복이 느껴진다. 여기에 말차를 비롯하여 계절에 맞는 연차 또는 짙은 진홍색을 띄는 시원한 오미자차를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파티의 주인공이 될까. 오늘 깊어가는 여름의 푸르른 황홀함에 내 마음을 맡겨보자.‘황홀한 자연’ 32.8x32.8x20.3cm. 해동대다완海棟大茶碗 2016. 해동海棟 양동엽작.

차 배우는 일은 5분이면 족하다. 차 마시면 되는 거니까. 차는 물을 끓여 우려서 목으로 넘기면 된다. 이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는 5분쯤 걸린다. 이렇게 차 마시며 사는 게 차생활이다. 많은 차인들이 기본은 제쳐놓고 비싼 다구들에나 눈독 들인다. 골동품 명품에 매달려 사치와 호화에 빠진다. 심할 경우 돈독에 혈안이 되고 자리나 세력다툼에 망상을 떨고 있다. 개탄하는 차인들이 늘어나고 차 무리를 떠나는 차인들도 적지 않다. 차 생활이 이런 지경이라면 조선 순조의 부마 해거도인 홍현주가 진도부사 변지화를 통해 굳이 초의선사께 차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차생활, 차 공부의 현실이 정상궤도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먼저 차인은 자신의 차생활 모습을 돌아볼 일이다. ‘나는 차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어디에 집착하고 있는가, 어디에 걸려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차인의 ‘이 뭣꼬?’는 현재 자기의 차생활 실체를 바로보라는 질문이다. 참다운 차인의 모습을 찾아 자신의 차생활 모습을 대입시켜야 한다. 얼마나 벗어났는지,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라. 만약 형상이나 모양, 색깔, 물질에 걸려 있다면 출발부터 잘못되었기에 속결로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

미국의 철학자 마르쿠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풍요로운 감옥”으로 비유했다. 텔레비전과 신문, 먹거리와 에어컨, 냉장고와 세탁기, 컴퓨터와 계산기 등에 사로잡혀 산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자신이 이런 감옥을 살면서도 모른 채한다고 통탄한다. 이 세상은 좋은 것이 많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지만 실제 ‘눈에 보이지 않는 창살로 막힌 거대한 감옥’과 같다고 진단했다. 오늘날 우리 차인들은 어떤가? ‘나는 무엇에, 어떤 것에 갇혀서 사는가?’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감옥’을 살펴보자. 돈과 명예와 권력에, 하찮은 자존심인가. 아만我慢과 위선, 사치와 허영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이 같은 감옥에 갇히면 갈등상황에 몰려 끝내 평상심을 벗어나 병이 된다.

분주한 일상에서 틈을 내 조용히 앉아 차 한잔 마시며 나를 찾아보려고 차를 시작했다. 하지만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이를 극복하려면 자신의 좁은 소견과 이기적 생각에 얽매인 ‘아집의 창살’을 뜯어내고 차생활에 충실해야 한다. 이 용단이야말로 자승자박自繩自縛에서 탈출하는 길이다. 참다운 차인이 되려면, 먼저 자만과 어리석음과 탐욕의 터널을 빠져 나와야 한다. 부끄러운 줄 모르면 무지해진다. 고뇌의 늪에 빠진 줄도 모른다. 이 현상이 우리의 현주소일지 모른다. 더 이상 육체와 정신이 함께 병을 얻어 불행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자유자재의 참모습을 확립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정신적 ‘감옥의 늪’에서 벗어나 해탈해야 한다.

차 공부의 첫걸음은 해탈부터 배우는 데서 출발한다. 군더더기를 모두 떨쳐버리는 도방하都放下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승자박의 틀을 벗어나 해탈의 삶을 찾아야 한다. 해탈의 방편은 오로지 깨달음의 길밖에 없다. 깨달음이란 집착에 매달린 ‘망상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명의名醫다. 깨닫기만 하면 모두 치유된다.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된다. 최고의 해결사인 깨달음을 만나려면 명상과 참선을 닦아야 한다.

죽로다문화원 명노 윤석관 <차는 재미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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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석관 작품 양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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