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풍향차보》 늦봄이나 여름에 제다

정서경 논문 < 영.정조시대 부안 현감 이운해의 <<부풍향차보>>연구 2 목포대학교 인문학부 연구전임교수 정서경l승인2018.07.09l수정2018.07.0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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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풍향차보》序文, 부풍향차보에 붙인 개요

扶風之去茂長三舍地 聞茂之禪雲寺有名茶 官民不識採啜 賤之凡卉 爲副木之取 甚可惜也 送官隷採之 適新邨從叔 來與之參 方製新各有主治 作七種常茶 又仍地名扶風譜云.

부풍扶風에서 무장(茂長)은 3사지(90리, 36㎞) 떨어진 곳에 있다. 듣자하니 무장 禪雲寺에 명차名茶가 난다고 하는데 관민들은 따서 마실 줄을 모르고, 초목이나 부목과 같은 것으로 취급하니 심히 애석하다. 관아의 사람을 보내 차를 따게 하였는데 때마침 新邨 從叔도 오셔서 함께 참여하였다. 막 새로운 차를 만들어 각각 주치를 두고 상음할 수 있는 7종의 차를 만들었다. 지명을 따《부풍보》라 한다. 위 원문의 내용은 부풍과 무장의 거리감 그리고 무장 선운사의 차에 대한 사정轉聞으로 시작한다. 부풍에 차가 나지 않아 선운사의 찻잎을 이용했다는 분석도 보이나 당시의 부풍과 무장, 고부, 흥덕 등은 차산지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운해는 부풍과 무장을 차의 최적의 입지조건이라고 판단하여 부임하고 바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 사진은 <부풍향차보> 서문.

이운해는 선운사에 명차가 난다는 소문에 실험적 정신으로 향차를 만들었다. 더불어 부안 일대 사람들의 차에 대한 인식과 본인의 실행 그리고 상음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차를 만든 정황 등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옮겨《부풍보》라 이름 하였다. 서문에서는 이운해가 부풍향차를 만들게 된 이유․ 원인과 차를 만든 시도의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부풍향차보》를 쓰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정리하고 있다. 우리 차문화사에서 특정 지역에서 생산되었던 차의 기록은 많지만 특정 지역이 차명으로 거론된 기록이 드문 현실로 볼 때 지역 차문화의 연구 성과를 기대할 만하다. 차의 종류별 차명 앞에 지명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중국의 예는 흔하게 찾을 수 있는데, 우리 차문화사에서는 전례前例가 없다. 부안은 당시의 정황을 고려해 볼 때 차나무 재배의 북방한계선이기도 하여, 전북 지역의 차문화사 정립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2. 차본茶本, 차의 기본적인 기능과 작용

自十月至月臘日 連採而早採爲佳苦茶一名雀舌 微寒無毒 樹少似桅 冬生葉 早採爲茶 晩爲茗 曰茶曰檟曰設曰茗曰荈 以採早晩名 臘茶謂麥顆 採嫩芽搗作餠 並得火良 葉老曰荈 宜熱 冷則聚痰 久服去人脂 令人瘦

찻잎은 시월에서 동지달 납일까지도 채취한다. 일찍 채취할수록 좋다. 차는 쓰다. 부르기를 작설이라 한다. 성질은 약간 차고 독은 없다. 나무는 작고 치자나무를 닮았다. 겨울에 나는 생엽을 일찍 채취하면 차라하고 늦게 따면 명이라 한다. 茶(荼)․檟․設․茗․荈 등은 채다 시기에 따라 이른차와 늦차로 구분하여 부른다. 납차는 맥과라 한다. 어린 싹을 채취해서 찧어서 떡 모양으로 만들어 꿰어(並) 적당하게 불에 쬔다. 쇤 잎은 천이라고 하는데 응당 뜨겁게 마셔야 좋고, 차갑게 마시면 가래나 천식을 청한다. 오래 복용하면 사람이 기름기가 없어지고 마르게 된다. 차본은 차茶의 기본적本인 기능과 작용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야말로 기초적인 당대의 차에 대한 상식선常識線이다. 차본은《동의보감東醫寶鑑》탕액湯液편 고다苦茶조의 내용을 인용하였다. (탕액편)은 당약唐藥과 향약鄕藥을 명백하게 구별하여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운해는 10월에 부임하여 무장 선운사의 차 소문을 들었다. 작설은 차의 채취시기를 말하는 것으로 이를수록 좋다는 것은 작설인 상태일 때 채취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 사진은 <부풍향차보>다본.

이운해가 말한 것은 찻잎의 상태인데 ‘백십월지월납일自十月至月臘日’의 해석이 다양하다. 시월과 동짓달 납일을 찻잎 채취의 시점으로 보는 시각이 많으나 채다의 종결점을 말한다. 찻잎나기 시기로 보면 맥과의 형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채다 시기로써 이른 시기이지만 흔히 제다 기준으로 보면 곡우 전후를 시점으로 삼는다. 그리고 찻잎은 시월이나 동짓달까지도 채취해서 떡차를 만들었던 민속전승의 제다법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백십월지월납일自十月至月臘日’은 ‘찻잎은 시월에서 동지달 납일까지도 채취한다.’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부풍향차보》에서 만든 차는 그냥 차가 아니라 증상에 따라 주치의 약재 성분이 더해진 이른바 약용향차다. 향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향차의 본체에 해당하는 차가 있어야 하므로 그 차에 대해 우선 설명한 것이 차본이다. 그런데 ‘茶時冬靑 十月間液氣方盛, 將以禦冬. 故葉面之甘, 尤顯然-차는 겨울에도 푸르다. 10월 사이에는 수분이 아주 많아져서 장차 이것으로 추위를 막는다. 그래서 잎 표면의 단 맛이 더욱 강해진다.’는 차문화사의 기록으로 인용한 것이 기존 연구이다. 그러나 찻잎은 여름을 지나면 수분이 점차 줄어든다. 차나무의 피해가 가장 심한 것이 동․냉해인데, 찻잎에 수분이 10월부터 많아진다고 하면 바로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는데 큰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10월부터 수분이 많은 찻잎을 따서 향차를 만들었다는 해석은 실증적인 분석이 아니다. 비非현실적, 반反환경적, 초超생태적 해석에 가깝다. 경험적 현실성이 배제되었다. 예컨대 실증을 통한 차문화의 기록이 매우 무색해지는 경향이 생긴다. 차나무의 겨울 생장에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차나무의 생육은 기상요인(온도, 강수량, 햇빛)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보통 생육 정체기는 12월 상순부터 다음해 2․3월까지를 말하는데 품종에 따라 다르다. 차는 동절기에 생장을 일시적으로 정지하고 저온이나 건조 등에 대하여 보호기능을 갖는 동아冬芽를 형성한다. 첫물차의 새싹은 3월 하순경부터 싹트기 시작하여 4월 하순에서 5월 중․하순까지 수확한다. 움에서부터 수확까지의 적산온도는 380~480℃가 필요하다. 움이 트는 시기에서 수확까지의 일수는 32.5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연구는 동짓달 맥과를 채취했다느니, 겨울에 나는 생엽을 일찍 채취하였다느니, 찻잎을 증제했다느니, 떡차로 만들어졌다느니 설왕설래다. 이운해가 말한 ‘방제신方製新’의 개념에 논전이 상당하다. 필자는‘쇤 잎은 천이라고 하는데 응당 뜨겁게 마셔야 한다’는 것에서 단서를 찾았다. 이운해는 음다법에서 부풍향차를 뜨겁게 마시라고 주문한다. 늦봄이나 여름에 차를 만들었다는 확실한 제보다. 겨울에 제다하여 음다를 말할 때는 굳이 뜨겁게 마시라는 주문이 필요 없을 것이다. 《부풍향차보》는 한국차문화사에서 특정 지명을 내세운 최초의 작명에 해당한다는 큰 의미와 더불어‘맥과인 차의 싹을 따서 차를 만든 기록은 부풍향차의 특성을 규정하는데 있어 가장 특징적인 요소가 된다’며 그 의의를 크게 두지만 납차를 따서 찌지 않고 떡차로 제다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혀 찻잎이 서로 엉겨 붙지 않아 차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다. 위의 인용 글(차茶 재배)을 빌려오면,‘차는 동절기에 생장을 일시적으로 정지하고(생육정체기, 12월 상순부터 다음해 2․3월까지) 저온이나 건조 등에 대하여 보호기능을 갖는다’고 했다. 즉 동아冬芽를 이용하여 일반적인 떡차 제다법으로 쪄서 만들었다고 부적절한 해석을 하고 있다.‘우리나라 사람이 억탁으로 헤아려 억지로 만든 것인데. 맛이 써서 단지 약용으로나 쓸 수 있다’고 한 이덕리(李德履, 1728~?)의《기다記茶》도 참고할 일이다.

▲ 찻잎이 싹트는 시기. 찻 잎이 피는 시기. 찻잎이 피는 진행과정

차본은 부풍향차를 설명하는 것이라기보다 차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서두에 얹은 것이다. 이운해는 차에 대한 인식이, 당대 편찬된 의서나 전문서를 통하여 상당 부분 섭렵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이 부분을 두고 부풍향차의 제법으로 해석하는 것은 부풍향차의 특성 즉 특정지역의 제다법을 드러내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맥과 상태의 찻잎을 따 떡차를 만들었다는 자의적 해석인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부풍향차보》는 제법을 따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차본에서 말하는, 차가 생엽을 찧었다느니? 떡차라느니?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풍향차는 차에 약재의 향을 가미한 약용의 향차이다. 현대의 개념으로 말하면 블렌딩차Blending tea를 가리킨다. 차의 형태를 떡차로 고정하고 있기 때문에 부풍향차의 정리가 어려워진다. 차본을 제법, 즉 제다법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부풍향차는 찐다蒸製라는 개념은 전혀 없다. 그런데 기존 연구에서는 차를 쪄서 떡차로 만들었다고 단정하고 있다. 부풍향차는 차의 형태보다 향차의 제법에 집중하고 약용차의 효능을 강조한 기록이다. 이것을 차를 만드는 제법으로 구분하여 작설의 형태가 떡차라고 단정하는 것은 분별력의 오류이다. 우리가 흔히 떡차하면 청태전에서 밝혀진 것처럼 둥글고 납작한 형태만 떠올리기 쉬우나 의약서에 약차 활용면에서 보면 환丸의 형태등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둥근 것에서부터 둥글납작한 것, 크고 작은 모양과 형태 등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채롭다. 작설은 완성된 차의 형태가 아니라 찻잎의 상태가 작설인 것이다. 제다의 방법론은 4) 제법製法에서 논의하겠다. 또 고전을 해석할 때 차를 세는 단위가 냥兩이나 전錢, 근斤의 표기를 표고 냥兩이나 錢(돈)이면 덩이차고, 斤(근)이면 산차散茶라고 해석하는 연구논문들이 상당하다. 그러나 兩(냥)이나 錢(돈) 모두 무게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떡차를 세는 단위만은 아니다. 제법製法에서 차 여섯 냥(兩)의 냥(兩)을 보면 저울추 두 개가 나란히 매달려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다. 떡차든 산차든 무게를 재는 단위로써의 용어일 뿐이다. 이운해는 4)제법에서 ‘우료매명일전右料每各一錢-오른쪽 재료 매양(늘, 언제나) 각 한 돈씩’이라고 제다를 설명한다. 여기에서 약재도‘錢’이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덩이로 보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일반적으로 약재는 채썰기나 어슷썰기를 많이 하는 경향을 고려하였을 때 ‘錢’이라고 해서 덩이차 즉 떡차로 해석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이운해도 참고하였을 <동의보감>의 기록에서 차나 약재의 도량형을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약의 용량은 당시 우리나라 사람의 체질을 바탕으로 중국에서 통일된 명대의 도량형을 기준으로 삼았다. <동의보감> 집례集例에 “<득효방得效方>과 <의학정전醫學正傳>에서는 모두 5돈을 표준으로 삼았는데 매우 경솔한 일이다. 대개 한 처방이 단지 4~5종이라면 5돈도 가당하지만 20~30종의 약에 이르면 한 약재가 겨우 1~2푼 들어가서 성미性味가 미소微小할 것이니 어찌 효과를 바랄 수 있겠는가! 오직 근래의 <고금의방古今醫鑑>과 <만병회춘萬病回春>의 약은 한 첩이 7~8돈이거나 혹은 1량에 이르러 약의 성미性味가 온전하고 多寡가 적당하여 금인今人의 기품에 부합하기 때문에 이제 모두 이 법도를 따라서 다 절충하여 한 첩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이 점은 허준(許浚, 1539~1615)이 약의 운용을 객관적으로 실제 임상에서 실행한 것이다. <동의보감>에서 실증을 바탕으로 우리의 체질에 맞도록 약의 용량을 가감한 것이다.

 


목포대학교 인문학부 연구전임교수 정서경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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