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은 우리시대의 석학 움베르토 에코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유산이다. 1천년 중세사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중세컬렉션의 마지막 여정인 것이다. 476년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시작된 중세는 1492년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1천여 년에 달하는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15세기 말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조감으로 본 풍경을 그림으로써 그림의 경계선 너머를 상상하도록 자극했고, 사람들은 지도 밖으로의 행군을 시작했다. 여러 번의 전쟁과 종교 불화 등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바람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졌고, 이 과정에서 근대 국가의 틀이 만들어졌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과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찬탈은 중세 유럽 전체를 뒤흔든 일대 사건이었다. 이와 같은 사회 전반의 커다란 변화로 인하여 마침내 르네상스의 문이 열린다. 고대의 이상을 계승하고 근대의 새로움을 고취시킨 중세 1천 년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중세의 결정판이다.

중세 역사: 누가 중세를 닫고 르네상스의 문을 열었나?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이건,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건, 혹은 1455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이건 어느 하나를 르네상스를 연 유일한 열쇠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서로마 제국에 이어 동로마 제국까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로써 중세가 열망했던 이데올로기 모델, 즉 고대 후기부터 전해진 제국과 교회를 하나로 엮어 보편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사라졌다. 신대륙 발견과 정복은 어느 한 국가만의 역할로 축소시킬 수 없다. 구대륙에 속한 많은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에너지를 한데 모았다는 의미에서 유럽 공동의 역사적 경험이라 칭할 만하다. 인쇄술의 발전은 동일한 원전의 더 많은 판본이라는 근대적인 개념을 도입시켰다. 책의 혁명 이상으로 루터의 종교개혁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중세 철학과 사상: 능동적인 인간으로서의 새로운 역할

중세는 신, 르네상스는 인간 중심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을 벗어나야 진정한 중세를 만날 수 있다. 15세기의 중세는 두 시대가 뒤섞여 숙성된 진정한 과도기였다. 이 시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모두 각광을 받았고, 유명한 철학자들은 이들 사이의 통일성을 증명하려고 시도했다. 다만 15세기에 인문주의가 발전하면서 고대 문헌들을 제대로 평가하고자 하는 요구에 부응하여 문헌학이 새롭게 떠올랐다. 또한 이 시기에 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한 것은 맞지만, 이는 인간이 신을 대신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과 세상의 중개자로서 인간이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이와 더불어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문헌의 유통 및 확산에도 큰 변화가 찾아오며 지식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세 문학: 고전의 재발견과 인문주의의 실험실

15세기 인문주의의 업적 중 하나는 고대 세계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위대한 시인 페트라르카는 고대 문헌에 깊은 애정을 보인 최초의 인문주의자였고, 그가 발견한 고대 문헌들은 다음 세대의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고대 문헌들을 해석하기 위해 라틴어에 대한 지식과 문헌학이 발달했고, 자연스럽게 인문주의자들은 플라톤에 열광했다. 이탈리아의 개별 국가들에서는 각각의 특징과 시기에 따라 인문주의 문화가 발전하면서 속어 문학이 재탄생했다. 속어 문학은 15세기 로렌초 데 메디치가 피렌체를 다스리던 시기에 절정에 이르렀는데, 당시 문학과 정치의 관계가 밀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각 지역의 속어 문학은 복잡했던 이탈리아 정세에서 그 지역의 우월성을 보여 주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1492년 로렌초가 사망한 후에 이탈리아의 균형이 깨지면서 오히려 이탈리아의 발달한 문화는 유럽으로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중세 시각예술: 원근법, 만물의 척도인 우주의 의인화

예술 영역에서 원근법은 공간과 신체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를 설정했다. 대상을 바라보는 각도를 축소시키는 원근법은 이차원에 삼차원의 공간 표현을 위한 수학적 방법이 도입되었음을 뜻한다. 15세기에 유클리드 기하학을 바탕으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실험하고,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이론화시켰으며, 마침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완성시켰다. 당시 이탈리아 도시는 국가와 동일한 개념으로, 권력 체계의 중심지였다. 메디치, 몬테펠트로, 비스콘티 등의 특정 가문이 군주 역할을 맡았는데, 그들은 정치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인문주의자이자 예술 애호가였다. 이들의 관심과 주문 덕분에 예술가는 명성을 얻었고, 15세기에 도시는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빛날 수 있었다.

김효정, 주효숙 역. 시공사.8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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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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