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개화사를 창건해 차와 향을 공유하고 있는 송강스님의 차에 관련된 편안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사랑하기’란 이름으로 차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송강스님의 허락을 받아 전제한다. 송강스님의 ‘사랑하기’는 현대인들에게 차 생활의 묘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려주고 제대로된 차 마시기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담고 있다. <편집자 주>

차 싹의 색에 백매 그림이 있는 차통.
차 싹의 색에 백매 그림이 있는 차통.

2017년 봄, 페이스 북 친구이며 다인茶人인 보살님과 거사님이 찾아오셨다. 보이차 동경호를 마시며 맑은 얘기를 나누다 가셨는데, 직접 법제한 녹차라며 선물로 주고 간 우전雨前을 마셔보니 독특한 묘미가 있어 기억에 남았었다. 차를 담은 통은 차 싹의 빛과 백매白梅 그림이었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2018년 5월 다시 두 차례의 방문이 있었고, 차 세 종류가 지금 앞에 있다. 2018년 6월 9일 법당 뒷산 공사를 비롯한 재의식과 토요법회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이미 밤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은 차관에 물을 올리고 섬진강변 광양 백양산 다압多鴨의 찻잎으로 법제한 우전을 열었다.

그냥 보면 검게 보이고 밝은 빛에 확대해 보면 연녹색이 보이는 차.
그냥 보면 검게 보이고 밝은 빛에 확대해 보면 연녹색이 보이는 차.

구증구포한 차는 그냥 보면 검게 보였고, 밝은 빛에서 확대해야만 연녹색이 조금 보이는 정도였다. 찻잎은 15mm 내외로 가까이 하니 구수한 향이 묵직하게 느껴졌고 따뜻한 느낌이어서 법제가 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40여년 사용해온 토정 홍재표 선생의 다관.
40여년 사용해온 토정 홍재표 선생의 다관.

차를 우릴 다기로는 40여년 사용한 토정土丁 홍재표洪在杓 선생의 다관을 선택했다. 워낙 오래 사용한 것이라서 뜨거운 물만 부어도 차색이 우러나올 정도이다.

헝가리태생 연주자인 야노스 슈타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첼로모음곡.
헝가리태생 연주자인 야노스 슈타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첼로모음곡.

다관에 2인분 6g을 넣고 은 차관에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바흐의 무반주첼로 모음곡을 오디오에 걸었다. 바흐의 이 음악은 다회를 할 때나 홀로 차를 마실 때 벗을 삼기에 매우 좋다. 적당히 볼륨조절을 해 두면 대화를 방해하지도 않는다. 첼리스트라면 누구나 도전하고 싶어 하는 대곡이기에 유명 첼리스트의 연주음반이 대부분 내게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헝가리태생 연주자인 야노스 슈타커(Janos Starker, 1924~2013)의 연주를 가장 즐겨 듣는다. 따뜻한 첼로의 음색과 섬세하면서도 우아하며 조화로운 완급과 강약 대비가 매우 잘 어울린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린 찻물의 순서. 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아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우린 찻물의 순서. 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아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첫째 잔 - 90도로 10초 우림. 찻물은 레드골드색. 구수하면서도 맑고 따뜻한 향이 피어오름. 머금으니 시원하면서도 맑은 맛과 시골 어른 같은 따뜻하고 넉넉한 맛. 빈 잔의 향은 맑은 꿀의 달콤함.

둘째 잔 - 90도로 10초 우림. 찻물은 짙은 황금색. 달착지근하면서도 풋풋하고 구수한 향이 두텁게 피어오름. 머금으니 들척지근하면서도 맑은 맛이 입을 향기롭게 하고 코를 시원하게 뚫어줌. 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걷는 청량감. 맑은 차 트림.

셋째 잔 - 90도로 10초 우림. 찻물은 짙은 황금색. 가마솥에서 마지막 가향처리를 할 때처럼 맑고 풋풋한 녹차향이 강하게 피어오름. 머금으니 숨겨두었던 기를 분출하듯 강렬한 향과 들척지근한 맛. 입안에 차를 가득 머금은듯함. 여리게 쌉싸래한 맛이 느껴짐.

넷째 잔 - 85도로 10초 우림. 찻물은 황금색. 따뜻하고 풋풋한 우전의 향기가 피어오름. 머금으니 맑은 꽃의 향과 싱그러운 차향이 입안을 향기롭고 달콤하게 함. 온도를 떨어뜨려서인지 쌉싸래한 맛은 느껴지지 않음. 입안은 맑은 봄바람이 불고 빈 잔에서는 꿀의 달콤한 향이 맑게 피어오름. 차 트림.

다섯째 잔 - 85도로 10초 우림. 찻물은 맑은 금색. 가슴이 푸근해지는 맑은 차향이 피어오름. 머금으니 여린 단맛에 이어 풋풋한 봄기운 가득한 녹차의 운기. 입안은 갠 하늘처럼 시원해짐.

여섯째 잔 - 90도로 10초 우림. 찻물은 약간 짙어진 금색. 순수한 녹차향이 피어오름. 머금으니 구수한 맛이 여리게 있고 맑은 녹차의 맛 뒤에 미세한 타닌의 느낌.

일곱째 잔 -90도로 8초 우림. 찻물은 맑은 금색. 여리게 풋풋한 차향이 피어오름. 머금으니 부끄러워 숨는 듯한 말간 소녀의 얼굴 같은 우전의 맛, 타닌의 느낌은 없음.

여덟째 잔 - 88도로 10초 우림. 찻물은 맑은 황금색. 수줍어하는 맑은 차향이 피어오름. 머금으니 여린 차의 싹을 씹었을 때의 맑은 맛.

아홉째 잔 - 90도로 10초 우림. 찻물은 맑은 노랑. 숨바꼭질하는 듯 숨었다 나타나는 우전의 향이 피어오름. 머금으니 부드럽고 여린 우전의 맛. 입안이 깔끔함. 타닌의 느낌은 미미함.

열째 잔 - 85도로 30초 우림. 찻물은 노랑. 우리는 시간을 길게 하니 향도 짙어짐. 머금으니 맑고 달콤한 석간수에 찻잎 두엇 떨어뜨린 맛. 입안은 시원하고 맑으며 여린 향기로 채워짐,

차를 우린 뒤 퇴수기의 물에 잠긴 찻잎.
차를 우린 뒤 퇴수기의 물에 잠긴 찻잎.

차를 우린 뒤 퇴수기의 물에 잠긴 찻잎을 살펴보니 마치 살아 있는 듯 제 모습을 잃지 않았으며, 여전히 짙고 싱그러운 향기를 내뿜는 듯했다. 기운이 좋은 차나무를 만나는 것은 다인茶人에게 행운이다. 지극한 정성으로 법제하는 다인을 만나는 것은 찻잎의 행운이다. 이 두 가지를 다 만나는 것은 차 마시는 이의 행운인데, 아마도 삼생三生의 공덕功德 정도는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글 사진 개화사 주지 송강스님.

SNS 기사보내기
개화사 주지 송강
저작권자 © 뉴스 차와문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