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에는 유서 깊은 정원이 숨어 있다. 동백림과 비자나무 숲을 이룬 소로를 따라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겨진 바위를 지나면 담장을 끼고 흘러내려오는, 작은 폭포를 이루는 계류를 만난다. 계류를 지나 걷다보면 대문에 다다르기 전 옆으로 길게 뻗은 절벽이 시야를 우뚝 막아선다. 이른바 ‘창하벽’이라 불리는 바위에 눈길을 주고 걸음을 옮기면 백운동 별서가 나타난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시간의 흐름을 붙잡아둔 듯, 조선시대 전통 원림의 원형이 세월의 흐름에도 녹슬지 않고 그대로 간직돼 제 속살을 드러낸다. 담양의 소쇄원과 명옥헌, 강진의 다산초당 및 해남의 일지암과 견줄 만한 이곳은 조선 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조선시대 시문학의 작은 축을 형성했다 할 만큼 숱한 작품들의 산실 공간이다. 특히 아홉 구비로 마당을 안아 흐르는 유상구곡은 민간 정원에서는 유일하게 이곳에만 남아 있으며, 그 규모도 가히 볼만하다. 하지만 이중의 차폐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백운동 별서는 강진 사람들조차 드물게 아는, 그리고 그 외 지역 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정원’이다.

저자가 백운동을 처음 찾은 것은 다산의 친필 편지를 보려고 방문했던 2006년 8월이었다. 그전에는 강진에 그런 곳이 있는 줄 알지 못했다. 이때 세상을 놀라게 한 『동다기東茶記』가 처음 빛을 보았고, 이 귀한 인연으로 강진 걸음을 할 때마다 백운동에 자주 들렀던 것이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당시만 해도 정원에는 잡초가 우거져 황폐하고 황량했다. 그 사이 강진군에서 복원 노력을 기울여 지금은 살림집으로 사용해온 본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옛 모습을 회복했다.

그러던 중 2014년 봄 강진군에서 백운동 별서 정원을 관광지화하겠다는 계획을 듣고 백운동의 역사와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 가치를 일깨워주고자 백운동 관련 역사 기록의 정리를 자청하고 나섰다. 따라서 이 책은 백운동 별서 정원의 문화적 잠재 가치를 확인하고 역대 각종 문헌 자료와 시문을 통해 이 권역의 역사와 문화를 일반에 널리 알리고자 집필되었다. 백운동의 지나온 역사를 모두 담고자 했으며, 다섯 가지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총 6장으로 구성했다.

제1장은 백운동 별서 정원의 공간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다. 각종 그림 자료와 현대의 재현도를 제시하고, 백운동 원림의 공간 구성과 경관적 요소를 조경학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제2장은 각종 문헌 기록을 정리함으로써 백운동 별서 원림의 연원과 유래를 밝힌다. 『백운세수첩』을 비롯한 각종 문집 속에 수록된 백운동 별서에 대한 정보를 종합해 백운동의 유구한 역사를 검토함과 동시에 백운동을 지켜온 역대 주인들의 자취도 함께 살펴본다.

제3장은 다산 정약용이 남긴 『백운첩』을 통해 백운동 12경을 사진과 함께 제시해 별서 원림의 세부 윤곽을 그린다. 아울러 다산과 백운동에 얽힌 인연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제4장에서는 백운동을 노래한 시문들과 이를 남긴 문인들의 자취를 좇는다. 17세기 후반~18세기까지 8경 중심의 백운동 시문을 남긴 김창흡과 김창집 형제, 신명규와 임영, 송익휘와 김재찬, 이하곤 등과 더불어 19세기 이후 정약용, 황상, 이시헌, 초의와 소치 등의 자료를 선보인다.

제5장은 차문화를 탄생시킨 산실로서 백운동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한다. 전통 차 이론서인 『동다기』의 발견 경위와 다산이 백운동에 보낸 제다법을 설명한 편지 등을 검토해 차문화사에서 백운동의 역할과 의미를 살핀다. 제6장은 앞선 논의들을 종합하여 한국의 전통 별서 원림과 문화공간으로서 백운동이 점하는 지위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뒤이어 부록에서는 백운동 관련 주요 인물의 행장과 묘비문 및 기록을 원문과 번역문을 소개하고, 백운동의 주요 전적 자료와 문물 등도 소개한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