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솥은 익히기, 둘째 솥은 말리기다

차향다운 차향 내는 제다, 자연원리의 본말 구별이 관건 남도정통제다. 다도보존연구소 최성민 소장l승인2018.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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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정통제다. 다도보존연구소 최성민 소장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제다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글을 보내왔다. 최 소장은 한국 차의 정체성은 다도의 수양론적 기능을 주도하는 차향의 차별성이고, 생사기로에 있는 한국 차를 되살리는 길은 그 차향(생 찻잎의 ‘眞香’)을 최대한 보전해 내는 일이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한국차가 중국차나 일본차와는 다른 차별성을 유지하며 그것들과 겨루기 위해서는 한국차의 차향에 대한 정의와 이에 대한 동의 및 공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기고 전문을 싣는다. 한국제다 발전을 위해 이에 대한 다양한 반론을 환영한다. <편집자주>

차향과 제다에 관한 법진님의 글 잘 읽었다. 30년 동안 익힌 ‘차향 내는 법’을 공개한 것이라고 하니, ‘비법’이라고 할 수 있는 노하우를 과감이 세상에 내놓는 그 마음 씀이 거룩하게 느껴진다. 한국 차계에 ‘전통식품명인’이 무려 6명이 있다. 황차 명인만 빼면 앞에 걸친 종목명칭만 다르게 살짝 말을 바꿨을 뿐 사실상 ‘녹차’ 종목에 여럿의 명인을 둔 꼴이다. ‘야생작설차-죽로차-녹차’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대밭에서 나는 야생 작설차로 수제 녹차를 만드는 명인이라면 죽로차명인인가, 야생작설차명인인가, 수제녹차명인인가? 법진님의 ‘비법 공개’를 보면서 차명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농수산식품부 전통식품명인 운영제도의 취지는 ‘조상 전래의 전통식품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특정인들의 차 장사를 위해 귀중한 국민 세금을 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부의 인간문화재 제도처럼 엄격히 공개경쟁 심사를 하여 ‘한 과목 한 명의 명인’을 두고, 정기적인 시연(제다)을 하도록 하여 다른 명인의 제다법을 공개 전파하고, 그 기능을 점검하여 명인 자격 유지 지속 여부를 살펴야 한다. 그렇게 했다면 오늘날 구증구포 논란은 불식되었고 한국 차의 운명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 여느 차 명인이 한국 차 문화와 차 산업 발전을 위해 자신의 제다법을 공개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한국 차명인들은 명인 칭호가 하늘이 내린 ‘천부의 권력’이어서 자신들의 제다법이야말로 공개해서는 안 될 ‘비법’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법진님의 제다법 공개 모습이 달리 보이는 것이다.

법진님의 제다법 공개에서 약간 궁금한 대목과 한국 차계에 던져지는 한 가지 과제가 보인다. 오랫동안 이리저리 해보다가 요리조리 해보니 잘 되더라는 식인데, 그 원리가 뭘까? ‘파도불’은 불을 어떻게 다루는 것일까? 그리고 차향을 내는 일이 그토록 어렵고 중요할진대, 한국 차계에선 올바른 차향에 대한 정의가 아직 정립돼 있지 않음을 법진님의 글에서도 느낄 수 있다. 한국 차인들이 차향과 맛을 말할 때 ‘어느 어른 스님이 좋아하는 차맛’, ‘구수한 숭늉맛’ ‘구운 김맛’ ‘내가 원하는 차향’ 정도로 언급되는 형편이다.

나는 한국 차의 정체성이 ‘한국 수양다도’를 가능케 하는 차향임을 주장해 온 사람으로서, 한국차가 중국차나 일본차와는 다른 차별성을 유지하며 그것들과 겨루기 위해서는 한국차의 차향에 대한 정의와 이에 대한 동의 및 공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신라, 고려, 조선의 문사 다도가들의 문구와 초의선사의 『동다송』 등에 나타난 차향에 관한 언급들을 근거로 하여 내가 지금까지 제다 실천과 연구를 통해 얻은 것을 말하고자 한다. 한국의 진정한 차향은 생 찻잎의 방향芳香을 완제된 차에 최대한 보전해 담아서 차 탕에 온전하게 되살려내는 것이다. 초의는 차향에 진향眞香. 청향淸香. 순향純香. 난향蘭香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중국 다서를 인용한 말이지만 차의 근본은 같다는 점에서 한국 차에도 해당된다.

이 가운데 진향은 ‘곡우 전 신묘함을 갖춘’ 향이다. 나머지는 제다 과정에서 불기운과 관련된 것이다. 즉 속속들이 잘 익히라는 경고와 같다. 종합하면 진향을 내는 올바른 제다는 ‘곡우 전 신묘한 기운의 향을 품고 있는 생 찻잎(꼭 우전차가 아니더라도)을 제다 과정에서 불기운을 잘 조절하여 그 향이 유실되지 않도록 차를 만들어야 한다’ 는 것이다. 이는 『동다송』의 다도 규정으로 이어지고 그런 향을 잘 살리는 방법이 『동다송』의 제다법과 ‘다법수칙’에 나와있다. 『동다송』 다도인 ‘채진기묘-조진기정-수득기진-포득기중’의 요체는 ‘채진기묘’가 ‘포득기중’으로 구현되게 하는 것이다. 즉 생찻잎에 들어있는 신묘한 기운(향)이 제다와 포다 과정을 거쳐 차탕에 정상적으로 발현中正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채진기묘’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생 찻잎의 신묘한 정기를 잘 보전하는 ‘조진기정’, 즉 제다의 과정이다. 여기에서 ‘구증구포’ 논란이 빚어지고, 향이 어떻느니 하는 문제가 생긴다. 나는 차향을 살리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밥 짓듯이’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된다고 생각한다. 『동다송』의 제다 항목이나 ‘다법수칙’에 훤히 나와 있는 일을 왜 한국의 제다인들은 난리법석을 벌이며 어려워하고 있는지 안타깝다.

앞에 말했듯이 차향의 정의나 표준이 제시돼 있지 않아서 각자가 제다 과정에서 차향을 새로 창출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비법’ 운운하는 소리가 나온다. 한국의 차 학계, 보성과 목포대학교 등 몇몇 대학교에 있다는 차 관련 연구소, 그리고 ‘제다’를 문화재로 지정한 문화재청 관계자들은 이 중요한 일을 두고 왜 ‘장화신고 다리 긁는’ 짓만 하고 있는가?

정리하자면, 생 찻잎에 들어있는 환상적인 방향을 완제된 차에 얼마나 잘 보전하여 담아내느냐가 한국 차의 정체성(차향)을 살리는 제다의 관건이자 한국 차의 사활을 가름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다송』과 ‘다법수칙’의 제다법이 암시하듯, 찻잎이 차 솥에 들어가는 횟수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차향의 보전은 생 찻잎에 있던 차향이 증발되어 버리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법진님도 이전에 어느 스님의 조언을 인용하여 “한 솥에서 끝내라‘고 하지 않았는가.

한국의 차인 또는 제다인들이 『동다송』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자신의 제다법을 과신하여 과시하려고 『동다송』 등의 제다법을 간과하는 것이 문제다. ”『동다송』과 ‘다법수칙’을 잘 들여다 보라. 제다에서 찻잎은 솥에 연이어 딱 두 번만 들어간다. 첫 솥은 익히기, 둘째 솥은 말리기이다. 잘 익혀서 바로 말리면 생 찻잎의 방향이 어느 정도 보전된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에서 하나의 딜레마가 생겨난다.

그렇게 하려면 높은 온도가 필요한 게 아닐까? 내 경험으로는 25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차를 덖으면 자칫 겉은 타고 속은 설익게 된다. ‘다법수칙’엔 첫 솥의 경우 “넉 량(900g)의 찻잎을 넣고 문화에서 무화로 가라”고 했다. 한국의 제다인들은 장갑을 네 개씩 끼고 하는 300도~400도의 ‘무용담’을 자랑한다. 차가 장사가 잘 될 때 짧은 기간에 많은 양의 차를 만들어내야 하기에 한 솥에 2~3kg씩 찻잎을 넣고 ‘고춧잎 삶는 냄새’가 나도록 쪄내던 ‘궁여지책’이다. 그것은 공장에서 공산품 만드는 방법이자 차에 대한 ‘고문’이지 다도를 인도할 차향을 마음氣을 실어 재현해 내는 ‘자연 순응’ 방식이 아니다.

대부분의 제다인들이 제다의 끝 순서로 ‘마무리’(‘볶기’라고도 한다) 과정을 두고 찻잎이 솥에 들어가는 횟수를 추가한다. 이를 ‘가향 작업’이라고도 한다. 생 찻잎의 방향을 지켜내는 일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차향을 그 과정에서 새로 추가해 내는 일이라고 착각한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 혹자는 찻잎이 잘 마무리되면 겉에 희끗희끗한 빛깔이 보이는데 그것이 단백질 분말이 눌러붙어 감칠맛을 내는 것이라고 자랑한다. 자세히 보자. 그것이 단백질 가루인지, 겉이 마를대로 말라붙어서 퇴색되어 희끗한 잿빛으로 보이는 건지. 이러한 마무리 역시 ‘짧은 기간 대량 생산’의 궁여지책이 낳은 사족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론으로, 한국 차의 정체성은 다도의 수양론적 기능을 주도하는 차향의 차별성이고, 생사기로에 있는 한국 차를 되살리는 길은 그 차향(생 찻잎의 ‘眞香’)을 최대한 보전해 내는 일이다. 제다법 또는 차향을 내는 방법을 두고 ‘비법’ 운운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그 원리를 모른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한국에 표준화된 제다법이나 차향에 관한 과학적 기준이 없으니 그렇게 ‘소발에 쥐 잡는 식’으로 차를 만들면서 누구나 ‘고수’ 또는 ‘명인’이고 각자의 방법이 다 ‘비법’이면서 공개를 꺼리는 이상한 물건으로 존재한다.

국가기관인 문화재청이 웬일인지 제다를 문화재로 지정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제다의 중요성이 무엇인지, 진정한 차향(진향)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어떤 원리에 따라 제다를 해야 하는지... 문제의식을 갖고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국 차가 망해가고 있는 현실을 눈앞에 보면서도 책임 있는 국가기관마저 깃발만 달아놓고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발암물질이 있다(최근의 보도)는 서양 음료 및 ‘썩은 새’ 냄새가 나는 외국차가 판치는 꼴을 언제까지 봐야할지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참으로 걱정된다.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최성민


남도정통제다. 다도보존연구소 최성민 소장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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