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도경에 나온 ‘은하’와 고려시대를 시작으로 조선시대 국보급 다완을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 경운박물관은 오는 21일까지 국보급 다완과 서화를 볼 수 있는 ‘다선일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는 은하와 조선시대 이도다완.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는 근래 차 마시기를 자못 좋아한다. 더욱이 고려 사람들은 차를 마시는데 필요한 다구를 잘 만드는데, 모두 중국 스타일을 본뜬 것이다. 무릇 연회 때에는 궁정 뜰 가운데에서 차를 끓여서 은하로 덮은 다완을 천천히 걸어와서 내놓는다.”고 적고 있다. 이때 은하銀荷는 은으로 만든 연잎 모양의 다완 뚜껑을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옻칠한 잔 받침과 찻상위에 올려 져 있는 10세기 고려녹청자 해무리굽완을 덮고 있는 은하를 재현했다.

경운박물관 장경수 관장은 “ 이번 전시는 고려와 조선의 다완 29점과 다실에 어울리는 전통 서화 작품으로 꾸몄습니다. 그리고 <고려도경>에서 언급했던 은으로 만든 연잎 모양의 뚜껑인 ‘은하’를 처음으로 재현해 전시합니다. 북송 휘종 때 무덤인 ‘백사 제2호 송묘’의 묘실벽화에 그려진 은하를 근거로 하였습니다. 특별히 16세기 조선의 이도다완을 보여드리고 1350년경에 그린 고려 수묵화 <독화로사도>를 처음으로 공개 전시한다.”고 밝혔다.

10세기 고려녹청자완 입지름 16.9- 17.4cm, 높이 6.8-7cm, 굽지름 6.4cm
10세기 고려녹청자완 입지름 16.9- 17.4cm, 높이 6.8-7cm, 굽지름 6.4cm

10세기 고려녹청자 완으로 부분 시유했고 입술모양은 산악형이다. 그릇 안쪽 바닥에 포개구이 흔적으로 백색의 내화토비짐 받침 5군데 남아있다. 굽접지면 또한 5군데 받쳐 구운 흔적이 있다. 외저면굽과 몸통의 경계인 굽인저리와 굽안쪽으로 유약이 시유되지 않아 화간火間이 넓게 형성됐다.

10세기 고려청자 해무리굽완 입지름 15cm, 높이 5.3cm, 굽지름 5.1cm, 굽 접지면 1. 2cm
10세기 고려청자 해무리굽완 입지름 15cm, 높이 5.3cm, 굽지름 5.1cm, 굽 접지면 1. 2cm

10세기 고려청자 해무리굽완으로 유약은 담황색을 띠며 굽안쪽까지 전면시유했다. 그릇 안쪽 바닥에 내저원각이 있고, 포개구이 흔적은 없다. 굽은 중간단계 해무리굽으로 굽접지면의 유약을 닦아내고 내화토빚음 받침으로 변조했다.

10세기 고려청자원통형잔입지름 10.3- 10.7cm, 높이 5.7-6cm, 굽지름4.9cm
10세기 고려청자원통형잔입지름 10.3- 10.7cm, 높이 5.7-6cm, 굽지름4.9cm

10세기 고려청자 원통형잔으로 유약은 담녹색을 띠며 굽안쪽까지 전면 시유했다. 굽접지면의 유약은 닦였고 백색의 내화토비침 받침 자국이 3군데 남아있다.

11세기 전반 고려청자 양인각 운학문 완입지름 14.5cm, 높이5.5cm, 굽지름 4.5cm
11세기 전반 고려청자 양인각 운학문 완입지름 14.5cm, 높이5.5cm, 굽지름 4.5cm

11세기 전반 고려청자 양인각운학문완으로 유약은 녹황색을 띠며 굽안쪽까지 전면 시유했다.그릇 안쪽에 운학무늬가 양인각 되어 있고 포개구이 흔적은 없다.굽은 다리굽으로 굽접지면에 받쳐구운 흔적이 있다.

12-13세기 고려청자 음각 연판문 완입지름 15.3- 17cm, 높이 7.1-7.4cm, 굽지름 5.3- 5.5cm
12-13세기 고려청자 음각 연판문 완입지름 15.3- 17cm, 높이 7.1-7.4cm, 굽지름 5.3- 5.5cm

12-13세기 고려청자 음각연판문완으로 유약은 담녹색을 띠며 굽안쪽까지 전면 시유했다. 그릇 안쪽 바닥에 내저원각이 있고 포개구이 흔적은 없고 외면에는 연잎 문양이 음각되어 있다. 굽은 다리굽으로 굽접지면의 유약을 닦아내고 가는 모래받침으로 번조했다.

16세기 조선분청사기 완입지름16.5cm, 높이 6.4-7cm, 굽지름 5.8cm
16세기 조선분청사기 완입지름16.5cm, 높이 6.4-7cm, 굽지름 5.8cm

16세기 경남 지역의 조선분청사기 완으로 유약은 연황색 녹청색을 띠며 부분 시유했다. 그릇 안쪽 바닥에 내저원각이 깊게 반원처럼 형성되어 있으며 포개구이 흔적은 없다. 굽은 죽절굽이며 굽칼로 외저면 굽과 몸통의 경계인 굽언저리를 깍아낸 형태가 매우 특이하다. 굽접지면에 받쳐구운 흔적이 있고 내화토빚음 받침이다.

16세기 조선시대 이도다완입지름 14cm, 높이 8cm, 무게 226g
16세기 조선시대 이도다완입지름 14cm, 높이 8cm, 무게 226g

16세기 조선의 이도다완이다. 비파색으로 그릇 안쪽 바닥에 내저원각이 있고 포개구이 흔적이 있다. 굽은 죽절굽이고 외저면에 매화피가 있다. 그릇 안쪽 바닥과 굽접지면에는 내화토빚음 받침으로 번조한 흔적이 5군데씩 남아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약 10년전 고급 이도다완은 일본에서쌀 5만석에 거래되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스승이며 일본으 다성으로 추앙받은 센리큐는 16세기 조선의 이도다완을 천하제일이라고 극찬했다. 그의 15대손 센 겐시쓰 대종장은 이 이도다완을 감정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좋네요. 이 매화피 정말 좋네요. 여기 보시면 이 밑굽이 그다지 크지 않고 쭉 올라온 것이... 그리고 안에 포개구이 흔적이 확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다완을 감정하는데 있어서 이 포개구이 흔적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정말 좋네요. 매화피가 정말 좋은데 그 이유는 크기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점점 작아지며 조용히 사라지고 있는게 보이죠. 이 정도의 매화피는 드뭅니다. 이건 정말 좋습니다. 매우 좋습니다. 너무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 다완 살아있습니다. 다완도 죽어 있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오래된 다완이라도 살아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다완입니다. 다완을 말을 할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다완을 살아 있습니다. 센리규가 처음 고려다완을 봤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리큐는 고려다완의 매화피를 처음 봤을 때 전율을 느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16세기 조선회청사기 완입지름 17.6-18cm, 높이 7.5cm, 굽지름5.8cm
16세기 조선회청사기 완입지름 17.6-18cm, 높이 7.5cm, 굽지름5.8cm

16세기 경남 지역의 조선회청사기 대접이며 유약은 요변으로 인해 녹청색에 황갈색을 띠고 있다. 그릇 안쪽 바닥에 내저원각이 잇고 내화토빛음 받침으로 겹쳐구운 흔적이 있다. 굽은 죽절굽이며 굽칼로 굽안쪽과 외저면굽언저리를 거칠게 깍아 유약의 점도나 불의 온도등에 의해 유약이 뭉치는 현상인 매화피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다. 접지면에 유약을 닦아내고 내화토빚음 받침으로 번조했다.

“16세기 전반의 서부 경남의 회청사기는 태토가 약간 거칠어서 어두운 회색이고 유약도 약간 어두운 갈색을 머금어 표면색이 분청사기 보다 어둡다. 이외에도 외저부를 분청사기 경우에는 말기청자에서와 마찬가지로 터진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꾹꾹 다진 자국이 있는데 회청사기에는 굽을 깍아내면서 외저부를 다진 흔적이 없다.”

17세기 조선백자완입지름 13.9cm, 높이 6.1- 6.4cm, 굽지름4.7cm
17세기 조선백자완입지름 13.9cm, 높이 6.1- 6.4cm, 굽지름4.7cm

17세기 조선백자 김해완으로 유약은 유백색을 띠며 굽안쪽까지 전면 시유했다. 그릇 안쪽 바닥에 내저원각이 있고 포개구이 흔적이 있다. 굽은 오목굽이며, 그릇안쪽 바닥과 굽접지면에는 흙물이 섞인 굵은 모래로 받쳐구운 흔적이 있다.

19세기 조선백자완입지름 15cm, 높이 6.5- 6.9cm, 굽지름 7.4cm
19세기 조선백자완입지름 15cm, 높이 6.5- 6.9cm, 굽지름 7.4cm

19세기 조선백자 완이며 유약은 요변으로 인해 유백색에 연황색을 띠고 있다. 기형이 특이한데 시대다완과 비슷하다. 굽은 오목굽이며 굽안쪽까지 전면 시유했다. 그릇 안쪽 바닥과 굽접지면에는 굵은 모래를 받쳐구운 흔적이 있다.

고려 수묵화 ‘독화로사도’종이에 수묵 76.5cm×54.2cm, 1350년경
고려 수묵화 ‘독화로사도’종이에 수묵 76.5cm×54.2cm, 1350년경

그림은 북송 문인화법, 글씨는 북송 서예가에 원나라 조맹부 서체의 영향을 받았다.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가 그의 시 ‘온상인 소축 독화로사도’로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했던 그림으로 1350년경 이전에 퇴경화사에 의해 똑같이 배껴 그려진 복제된 명화이다. 8세기에 유행한 그림 구도 속 주인공은 쇠백로이고 선유도의 실경 산수는 배경 장치이다. ‘독화로사도’원작을 그린 21세기 초 고려 문인화가는 풍수도참사상을 신봉했던 고려의 정서에 맞게 그림을 그렸다. 현지를 답사했던 풍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망주봉은 권력의 기운이 강한 터로 왕권의 기운이 서린 곳이라고 한다. 독화로사도는 현재 전해오는 종이나 비단에 그린 우리나라 순수 회화작품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자 유일한 고려의 수묵화이다.

김정희 서찰종이에 먹 24.5×49.3cm
김정희 서찰종이에 먹 24.5×49.3cm

추사체하면 먼저 살찐듯 여윈듯 오묘한 붓놀림이 만들어낸 변화무쌍한 필획이 떠오른다. 보기는 쉽지만 참 어려운 글씨이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는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선생의 글씨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글씨 쓰는 법이 여러 차례변했다. 늘그막에 바다 건너 귀양살이하고 돌아온 후로 구속되고 본받는 경향이 다시는 없게 됐고, 대가들의 장점을 모아 스스로 독자적 경지를 이루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를 두고 하고 싶은 대로 거리낌없이 한 것이라 하니, 그것이 오히려 근엄함의 극치임을 모르더라”

추사김정희는 당시 누구보다 서법에 밝았으며 글씨를 볼 줄 알았고 독창적인 글씨를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한중일 서예사에 빛나는 대가가 되었다. 이 서찰은 생애 마지막해에 쓴 것으로 추정되며 추사체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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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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