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어울림 -1’. 꿈인가 생시인가. 현실을 떠난 깊은 산중에 푸른꽃이 피어난다. 그 꽃속에서 솟아나는 넘실거리는 우리의 삶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선계仙界의 푸르른 구름이 작품의 전면을 휘감아 부드럽고 강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다완이다. 오묘하고 신묘로운 푸른 산구름의 부드러운 색상과 질감이 도자기표면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지름이 30cm이상이 되는 대다완大茶碗을 소성하여 완성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으로서 수작秀作이라 할 수 있다. 33.4x33.4x20.0cm. 락구대다완樂邱大茶碗 2016. 해동海棟 양동엽작楊東燁作.
‘자연의 어울림 -1’. 꿈인가 생시인가. 현실을 떠난 깊은 산중에 푸른꽃이 피어난다. 그 꽃속에서 솟아나는 넘실거리는 우리의 삶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선계仙界의 푸르른 구름이 작품의 전면을 휘감아 부드럽고 강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다완이다. 오묘하고 신묘로운 푸른 산구름의 부드러운 색상과 질감이 도자기표면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지름이 30cm이상이 되는 대다완大茶碗을 소성하여 완성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으로서 수작秀作이라 할 수 있다. 33.4x33.4x20.0cm. 락구대다완樂邱大茶碗 2016. 해동海棟 양동엽작楊東燁作.

인간은 불완전하다. 태어나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불완전한 모습으로 산다. 그래서 완전하게 살려고 발버둥친다. 처음 다도에 입문하는 수강들에게 “좀 까다롭고 어려운 듯한 그런 예절 행위를 감수하겠느냐?”고 묻는다. 대부분 “그렇게 해보고 싶다.”고 대답한다. 규격화된 법도法度를 수련하는 것이 보다 완전한 차인의 모습이요, 법식法式을 따르는 인간다움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차생활에서 법도는 필요하고 중요하다.

여성다움이나 인간다운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 보다 완전한 폼(form), 격식이 요구되고 있다. 또 물어본다. “차를 마심에 있어 일정한 격식, 법도가 있다고 보느냐?” 거의 “예, 법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법도가 있어야지요. 그걸 배우러 온 것입니다.”라고 응답한다. 다시 “그러면 법도가 몇 가지나 될까요?” 물으면 “글세요. 몇 가지가 있겠지요.”라 말한다. 더러는 차 마심의 격식이 서너 가지에서 열가지 쯤 되느냐고 묻는다.

정답은 ‘법도(법식)는 오만 가지다.’ 차 마시는 법도가 이처럼 많다고 덧붙인다. 때와 장소, 개인의 사정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두 손으로도 마실 수 있고, 한 손으로 마실 수 있다. 심지어 코를 바짝 들이대고 마실 수도 있고 발가락으로 마실 수도 있다. 두 손이 없는 사람은 코를 대고 마시거나 발가락으로 마실 수밖에 없다. 차생활은 ‘꼭 이렇게 해야 한다.’는 엄격한 격식은 없다. ‘오만五萬가지’란 수없이 많다는 뜻이다. 차생활은 개인 사정에 따라 때에 맞춰 ‘자유자재’로 하라는 뜻이지만 차 마시는 법도는 존재한다. 제1조는 “남이사-”다. 즉, 차를 마실 때 상대가 어떻게 마시든 개의치 말라는 뜻이다. 이 말은 상대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마시든지 따지거나 비판하지 말라다. 남이사 코를 갖다 대고 마시든, 차를 철철 흘리며 마시든 ‘고정된 격식’의 잣대로 상대를 흉보지 말라는 것이다. 인생이 그렇듯 어떤 차 생활도, 차 마심도 결코 완전할 수가 없다.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불완전한 대로 차 마시는 모습을 기뻐하고 감사하고 사랑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있는 그대로’의 불완전을 사랑하자다.

불완전을 사랑하는 것이 완전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있는 그대로 불완전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로 지켜야 할 법도다. 이게 ‘남이사’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이 세상, 우리의 삶은 모두 내가 지어서(만들어서) 나타난다. 인간의 마음은 그 주인공이 용심用心할 때, 즉 마음을 쓰고 일으킬 때 생심生心과 살심殺心으로 나뉘어 나타난다. 생심은 플라스(十)사고로 자기 앞에 나타난 대상과 화합하는 마음이다. 상대를 돕고 기쁘게 하고 만족하게끔 한다. 경건한 마음을 쏟아 최고로 존경하는 데서 우러난다. 상대와 내가 ‘하나’라는 마음에서 일어난다. 살심殺心은 상대를 죽이는 마음이다. 미워하고 원망하고 싫어하고 비판하는 마음이다. 분별심과 간택하는 마음은 따지는 것에서 비롯된다. 비판하고 차별할 때 생긴다. 생심이 발동하면 상대는 편안하고 즐거우며 기쁘하고 좋아한다. 그러나 살심을 내면 상대는 걱정하고 불안하며 공포에 싸인다. 이럴 때 건강할 수 없다. 불편하고 괴롭고 곤경에 빠진다.

우리 마음에는 염파念波 즉, 마음의 파장이 일고 있다. 마음을 쓸 때 발동하여 움직이고 나타난다. 연구하는 사람에 따라 이 염파를 오로라(Aurora 후광後光), 자연적 전기파장(Natural electric), 에테르 파(ether파波) 등으로 표현한다. 사람이 살심을 쓰면 살심염파가 작동한다. 이는 생명을 죽이고 우주 만물을 파괴하는 독을 지니고 있다. 한편 생심염파는 상대를 살리고 우주 만물에 유익한 ‘사랑의 묘약’을 제공한다. 따지는 마음 즉, 상대가 어떻게 마시는가를 분별하게 하는 마음은 살심이 지배한다. 상대가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밉상이다’, ‘털발이처럼 마신다’는 등 비평하고 그런 시선을 던졌을 때, 그 사람 몸에는 살심이라고 하는 독이 발동, 먼저 자기 자신을 해친다. 특히 이때 독毒을 함유한 살심염파가 상대에게 전이되어 상대를 불안과 공포, 걱정과 불편 속에 밀어 넣는다. 이런 경우 살심은 바로 내게로 반사된다. 살신염파를 발동한 사람 즉, 따지는 사람이나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이나 독의 전이로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그래서 상대가 어떻게 마시던 개의치 말라고 한다. 결국 ‘남이사’로 이어진다. 만약 따지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당장 ‘기쁘하고 찬탄하며 환희심이 일어나도록 국면 전환을 해야 한다. 그럴 때 상대로부터 생심의 염파, 환희심의 염파가 내게로 되돌아온다. 상대의 모습이 불완전한 대로 이를 사랑하자는 이유다. 어떤 일이든 사랑하면 보다 나은, 보다 완전한 사랑의 염파가 발생해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명노 윤석관의 저서 <차는 재미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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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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