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명보정, 초의와 범해의 다맥을 이었다

담원 김창배 박사학위서 밝혀 이시향 기자l승인2018.03.13l수정2018.03.1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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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명보정선사

송광사의 대표적인 다승인 금명보정스님이 초의의순과 범해각안 다맥을 이었다는 박사논문이 발표됐다. 한국의 다화와 다시 연구등에 대해 활발한 활동을 해온 담원 김창배 화백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문화예술콘텐츠학과에서 ‘금명보정의 선사상과 다시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창배 박사는 이번 논문에서 그동안 부분 부분 논의됐던 금명보정에 대한 다맥과 선사상에 대해 자세히 밝히고 있다. 김박사는 초의의순⇒ 철선혜즙⇒ 범해각안⇒보제심여⇒ 금명보정⇒응송 박영희로 이어지는 다맥이 논문의 전제조건임을 명시했다. 김박사는 초의와 범해에 대한 다맥 전수에 대해 “ 첫째 금명은 초의와 범해의 다풍을 계승했다.금명은 차를 직접 재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90여수의 다시를 남기고 있다. 대흥사가 낳은 다승 가운데 20편 이상의 다시를 남기고 있는 것은 초의. 범해. 금명 뿐이며, 그 가운데서도 금명은 독보적으로 많은 다시를 남기고 있다. 둘째 금명은 초의와 범해가 주도했던 근대학문의 정신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직접적으로 다맥을 이었다고 말했다.

이번논문의 주된 텍스트는 금명보정의 <다송시고>. 그는 다송자 다풍의 특징으로 “ 첫째 다송자는 초의 다풍을 정통으로 계승하였다. 하지만 초의와 다송자의 사이에는 차이점도 적지 않다. 초의는 <동다송>과 <다신전>을 저술함으로서 우리나라 다법을 체계화하고 이를 후대에 전수한 한국차사에 있어서 다성이었다. 다송자도 초의와 마찬가지로 직접 차를 재배했고 마셨다. 하지만 그가 어떤 방식으로 차를 재배했으며 음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다송자는 선사라기 보다 강사였다고 할 수 있다. 초의가 선을 중심으로 하면서 차를 통해서 선 수행을 뒷받침했다고 한다면, 다송자는 시가 중심이면서 차를 마시며 시상을 다듬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다시일미의 시인이라 하겠다. 다송자의 탁월함은 양적으로도 방대하며 질적으로 뛰어난 시에 있다. 이러한 시에 대한 업적은 우리나라 유사이래 드문 일이다.”고 밝히고 있다.

김박사의 논문을 통해 “다송자에 관한 학계의 연구는 초기단계에 있다. 이번 논문은 다송자가 남긴시에 대한 전체적인 분석과 감상은 아니다 앞으로 다송자 연구에 있어서는 남겨진 과제가 많다”고 밝혔다.


이시향 기자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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