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남도정통제다. 다도보존연구 최성민 소장이 현행 한국의 차 관련 축제, 박람회 등 공공예산을 지원받아 치러지는 각종 행사는 중복되는 것을 폐지하거나 전체적으로 대폭 개선하지 않는 한 위기에 처한 한국 차의 현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외제 차류 홍보 전시장이나 차 부속품 시장으로 전락하여 오히려 한국 차의 쇠망을 부채질한다는 기고를 보내왔다. 본지는 최성민 소장의 기고문에 대한 다른 견해에 대한 의견이 있는 분들의 기고가 온다면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한국의 차계(茶界)는 올해 들어 벌써부터 각종 차 관련 행사 소식에 들떠있는 모습이다. 차 전문 잡지 『뉴스 차와 문화』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차전문 박람회가 모두 12 차례 열린다. 이런 대형 박람회 외에도 차 관련 축제, 다기 도예전, 전시회, 세미나, 워크숍 및 각종 문화행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열린다. 이미 제주도에서 ‘한국명차 브랜드화 전략수립워크숍’이 열렸고, 이른바 ‘한국차의 성지’라는 대흥사 일지암에서는 3월 2일부터 매월 첫째 주 금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차 마시고 솔바람 소리 들으며 책을 읽는다는 ‘일지암 다경실茶經室’이란 것을 운영한다고 한다.

이런 겉모습이나 그럴싸한 소문들이 난무하는 현상만 두고 보자면 한국의 차와 차문화, 차산업은 지금 지극한 성황을 누리고 있어서 차인들이나 차농가, 관계 당국이 걱정한 필요가 없을 듯하다. 더구나 이러한 차 관련 축제와 대형 박람회 등 행사 다투어 열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이미 십수년 전부터 있어왔기에, 그리고 그런 행사들이 취지나 목적을 “한국 차문화와 차 산업을 진작시키기 위해...”라고 내걸고 대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국비나 지자체 예산에서 거액의 경비를 따다 쓰는 것일 것임을 감안하면, 이미 한국의 차 산업이나 차 문화는 정상 궤도에서 한창 번영을 구가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실상이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차인들이나 차 관련 예산을 다루는 문화재청, 농축산수산부, 차산지 지자체 등 관계 당국이 심각히 되돌아봐야 할 과제이다.

자, 위에 거론한 차 관련 박람회, 각종 축제, 전시회, 세미나 등의 실상과 그것이 한국 차 산업과 차 문화에 미치는 영향 또는 결과는 지금까지 어떠했나 보자. 나는 수년 전부터 해마다 5월에 열리는 하동야생차축제부터 연말에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무슨 세계차문화대전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차 관련 행사에는 모두 다녀봤다. 이런 견문을 바탕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까지 한국에서 열려온 차 관련 행사는 국민의 절실한 곳에 쓰여야 할 예산의 낭비이자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할 적폐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본질을 망각하여 한국 차 문화를 왜곡하는 면도 심각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외국 차 홍보 행사이자 한국 차 사형장’

첫째, 거의 모든 행사가 판박이식이다. 예컨대 ‘세계’라는 말을 내세운 ‘00세계차문화대전’이라는 게 서울, 부산, 대구, 광주, 경주, 익산 등 한 해에 대여섯 곳에서 열린다. 각종 지자체 축제 등 한국에서 축제 이름에 ‘세계’라는 말을 붙이기 좋아하는 현상은 ‘규모’를 내세워 국비 요구액을 늘이기 위한 꼼수로 보이는데 ‘세계차문화대전’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세계차문화대전’에서는 이름 탓인지 한국 차는 뒷전에 밀리고 대부분 외국 차들이 주인공이자 귀빈 대접을 받고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주최자는 “외국 차에 대한 한국 차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명분을 내세울지 모르지만, 현재 외래 차류가 한국 시장을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외국 차 홍보 행사이자 한국 차 사형장’이나 다름없다.

둘째, ‘세계’라는 말이 붙지 않는 순수 국내 차 행사장에는 초의 선사가 ‘초의차’로서 내놓은 한국 전통 가마솥 덖음차이자 최후 단계 제다의 차로서 가장 정제된 차인 ‘녹차’는 주인공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정체불명의 황차류(이것을 무지한 이들은 한국 발효차라고 한다)가 판을 친다. 이는 썩은새 비슷한 색깔과 냄새가 나면서 요즘 극성인 외국 차류들의 허명을 좇는 무분별한 상업주의 탓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한국 차계가 제대로 된 녹차 제다를 실패했다는 방증이다. 제다를 문화재로 지정만 하고 팔짱 끼고 있는 문화재청이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다.

셋째, 대부분의 차 행사장에서 차는 뒷전이고 차 관련 부속물들이 주류를 이룬다. 예컨대 고가의 다구, 다탁, 천연 염색 의류, 건강식품에 안마의자에 이르기까지.... 이는 주최 측이 흑자 내기에 급급하여 차의 본질과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살려내려는 기획을 게을리 한 탓이다.

차 마피아 인맥 카르텔의 폐해 심각

넷째, 학술 행사의 부재 및 수박 겉핥기식 학술 행사이다. 대형 차박람회나 축제에 학술 행사를 넣는 곳은 드물다. 혹 학술 행사를 끼어 넣는다 해도 이는 본질적인 토론 보다는 겉도는 주제 선택과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날 한국 차가 당면한 문제가 무엇이며, 한국 차 위기의 원인과 대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볼 수 있는 학술 행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현장에 참석하지 않았음을 전제로 말하자면, 얼마 전 제주에서 열렸다는 ‘한국 명차 브랜드화 전략수립 워크숍’의 경우 ‘한국 명차의 브랜드화’라는 게 명차를 전제로 하는 것일진대 한국 명차의 정의가 무엇이었는지, 그 명차를 만드는 제다법을 위기에 처한 한국 차농가들이나 제다인들에게 전파하는 방법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지, 차의 핵심이 무엇이며 제다가 왜 중요한 지, 제다와 다도의 관계가 어떠한 것이며 지금 어떤 모습으로 왜곡되고 있는지.... 이런 사항들이 조금이라도 언급되거나 고민을 공유했는지 궁금하다.

다섯째, 차 관련 행사의 주최·주관·참여자들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사실이다. 전국 여느 차 행사장을 가더라도 늘 등장하는 몇몇 ‘그 얼굴들’을 지겨울 정도로 대할 수 있다. 그런 모습은 공공예산 따내는 차 관련 행사 조직에 어떤 노하우를 공유하는 ‘인맥 카르텔’이 형성돼 있음을 암시한다. 학술 행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차의 본질과 차 정신의 핵심이 뭐고 현행 한국 차 위기의 원인이 뭔지에 대한 토론 보다는 실효성 없는 자료를 동원하여 동의어 반복하고... 그러니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학술 이론을 가진 이들은 이른바 오래전부터 거론되고 있는 ‘차피아’ 인맥 카르텔에서 늘상 배제되고, 대중은 구태의연한 차 행사나 학술 모임의 악순환에 해마다 노출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 차가 위기를 겪고 있다면 이런 퇴행적이고 본말전도된 차 관련 행사나 학술 모임 관계자들은 어느 정도 책임의식을 갖는 게 차인으로서 마땅한 도리이다.

여섯째. 현행 한국 차 관련 대형 행사의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행사들이 국비나 지방비 등 공공예산을 얼마나 많이 타내느냐에 관심이 집중되어 ‘외화내빈’의 돈 잔치 모습으로 치러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나는 어떤 차 관련 행사장 공개 석상에서 한 성직자가 “국회에 가서 000의원을 만나 짜고 치는 고스톱식으로 예산을 0억원이나 따놨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정부 예산 따내기에 (일부)성·속없이 눈독 들이는 만큼 그 돈으로 치러치는 행사에서 아사 상태인 우리 차 살리는 방안에 정신을 쏟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체적인 결론을 말하자면, 현행 한국의 차 관련 축제, 박람회 등 공공예산을 지원받아 치러지는 각종 행사는 중복되는 것을 폐지하거나 전체적으로 대폭 개선하지 않는 한 위기에 처한 한국 차의 현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외제 차류 홍보 전시장이나 차 부속품 시장으로 전락하여 오히려 한국 차의 쇠망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좁은 땅에서 ‘세계...’라는 타이틀을 걸치고 매번 여러 곳에서 판박이행사를 벌이는 것은 이제 그만두도록 해야 한다. 당국이 내실 없는 차 관련 행사에만 거액의 예산 지원을 하는 것은 검박(儉薄)과 성의(誠意)라는 차정신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대형 차 관련 행사와 관련하여 주로 돈에 마음이 가 있는 일부 관계자들은 물론 한국의 양심적이고 진정한 차인, 한국의 차 산업과 차 문화 진작을 담당하는 당국자들이 지금 아무리 고민해도 지나치지 않은 과제는 현행 한국 차 위기의 원인과 돌파구가 무엇인가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소비자를 한 모금에 유혹하는 차 다운 한국 덖음 녹차(차향다운 향이 나는 한국 녹차)를 만들어내는 일, 진정한 의미는 외면한 채 형식과 관행에 치우친 다도를 물리치고 한국 다도의 수양론적 의미를 읽어내 확산시키는 일 등이다. 차향다운 차향이 나는 좋은 차와 다도 수양은 실과 바늘의 관계와 같다. 다도 수행에서 차향(香氣)이 우주의 청기(淸氣)로서 우리에게 훈습되어 ‘우주·자연과의 합일’이라는 득도의 경지에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정한 ‘한국 차와 한국 수양다도’의 모습이자 차 관련 행사에서 늘 맨 앞에 두어야 할 주제이다.

SNS 기사보내기
최성민
저작권자 © 뉴스 차와문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