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숲이다. 바람이 불고 눈이 와도 숲은 숲이다. 우리는 그 숲속에서 산다. 은둔하는 사람, 기뻐 날뛰는 사람, 슬픈사람이 모든 함께하는 곳이 숲이다. 그래서 숲은 운명공동체다. 눈 날리는 어느날 화로를 곁에두고 차를 마신다. 그림 일지 이홍기의 '숲'
삶은 숲이다. 바람이 불고 눈이 와도 숲은 숲이다. 우리는 그 숲속에서 산다. 은둔하는 사람, 기뻐 날뛰는 사람, 슬픈사람이 모든 함께하는 곳이 숲이다. 그래서 숲은 운명공동체다. 눈 날리는 어느날 화로를 곁에두고 차를 마신다. 그림 일지 이홍기의 '숲'

“오백 년 도읍지를 한 마리 말을 타고 돌아 들어오니/ 산천은 옛날과 같은데 뛰어난 인재는 간 곳이 없구나. 아아, 태평했던 세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일명 길재의 회고가懷古歌다. 나라가 바뀐 개성이다. 개성의 산천은 변한 것이 없다. 사라져 버린 것은 옛 시대의 인걸들이다. 망국의 한恨과 인생무상을 화자는 회고 하고 있는 것이다. 길재의 산가서는 회고가와 달리 방외거사의 방외가方外歌라 할 수 있다. 거친 파도로 일렁이는 혼란의 시대. 세속을 벗어난 삶.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산속에 기거하고 있다.

시의 모든 정서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 그의 동반자는 바로 차다. 홀로 차 한잔을 마시며 깊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침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 격랑에 휩싸인 스승들과 동문들의 앞날. 그는 분명 이들과 숫한 밤을 보내며 의견을 개진했을 것이다.

역대 왕조를 보더라도 변화의 시대는 역행 할 수 없다는 걸.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홀로 기거하는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방외거사의 삶은 슷한 유생들이 찾아 들었고, 그들에게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설파 하였다.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로 이어지는 영남학파의 태동이었다. 철저한 학자의 삶은 살았던 길재.

이와는 달리 그의 제자들은 성리학을 앞세워 당파黨派, 즉 붕당朋黨 정치의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조선 왕조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이 얼마나 큰 시대의 역설인가. 우리의 삶은 부박하다. 그러나 모두 시대의 역설속에서 승자가되거나 패자가 되거나 한다.

 

<산속 집에서 글을 쓰다>

길재

회오리 바람 불지 않으면/ 좁은 방도 편안하고/ 밝은 달 뜰에 비추면/홀로 천천히 거닌다네. 처마에 비 내리는 날이면/ 베개 높이 베고 편안히 잠들고/산속에 눈이 펄펄 날리면/ 혼자 차 끓여 마시리.

飄風不起/ 客膝易安/ 明月臨庭/ 獨步徐行. 簷雨浪浪/ 或高枕而成夢/山雪飄飄/或烹茶而自酌

길재(1353-1419)_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 호는 야은 冶隱. 이색. 정몽주와 더불어 고려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권근權近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1387년 성균학정成均學正이 되었다가, 1388년에 순유박사諄諭博士를 거쳐 성균박사成均博士를 지냈다. 조선이 건국된 뒤 1400년(정종 2)에 이방원이 태상박사太博士에 임명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기 않겠다는 뜻을 말하며 거절하였다. 김숙자金叔滋를 비롯하여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등이 학맥을 이었다. 문집에 <야은집>, <야은속집冶隱續集>, 언행록인 <야은언행습유록冶隱言行拾遺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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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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