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마시는 일은 삶의 무게를 덜 어내는 일이다. 묵직함속에 묻어나는 견고함과 조화로움이 일품이다. 한 잔의 말차 한잔의 평화. '평온함이 묻어나는 자연'. 12.0 x 12.0 x 7.5 cm. 樂邱茶碗 2017. 海棟 楊東燁作.
차 마시는 일은 삶의 무게를 덜 어내는 일이다. 묵직함속에 묻어나는 견고함과 조화로움이 일품이다. 한 잔의 말차 한잔의 평화. '평온함이 묻어나는 자연'. 12.0 x 12.0 x 7.5 cm. 樂邱茶碗 2017. 海棟 楊東燁作.

차 생활은 ‘다만 물을 끓이고 차를 우려 마시는 일’이다. 차마시는 일은 이렇게 쉽고 편하고 단순하다. ‘다반사’茶飯事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공연히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한다. 이는 차를 마시는 근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생활은 자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면 된다. 차를 달이거나 마시는 모습 속에 자신의 운명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차를 우려낸 맛과 차를 마시며 느끼는 맛에 자신의 삶이 담겨져 있다. 차를 달이거나 마실 때 그릇 끼리 부딪혀 소리를 내게 하는 사람은 매사에 잘 투덜대고 시비를 부린다. 물이 익거나 식기를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병이나 손재수를 당하기 쉬운 성질을 갖고 있다. 차를 마시되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치스럽거나 탐욕이 많고 비위가 약한 삶을 산다. 쓴맛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하게 사는 재미를 안다. 고苦를 달게 받아 견딜 줄 모르는 사람은 낙樂도 쓰게 받아 팽개치는 불행한 삶의 노예가 된다.

자기의 차생활 모습이 자신의 운명이며 자신의 삶에 반영된다고 인식한다면 ‘우리는 차를 어떻게 마셔야 하는가, 차를 마시는 근본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라. 차를 마시며 자신의 참모습을 나타내야 한다. 바로 차를 마시는 근본이다. 차를 마시는 것을 인연으로 차 마심과 차 생활 속에서 참마음과 올곧은 마음(직심直心)에 안주해야 한다. 자신의 보다 훌륭한 운명과 인생을 낳는 길이다. 차 생활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자신의 참모습이 그대로 자기 안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집 손바닥만 한 정원에는 30여 년 전에 심은 차나무 여남은 그루가 있다. 이제 막 꽃봉오리들이 미소를 짓듯 하나 둘씩 피어나고 있다. 누군가 있어 영롱한 꽃향기를 음미하며 낙엽불로 끓인 물에 절구絶口차 한잔 마시면 어떨까. <명노 윤석관의 ‘차는 재미있다’ 중에서>

이 작품은 작품의 제목처럼 평온함이 느껴지는 자연의 일부를 옮겨놓은 것처럼 앞쪽의 짙은 녹음이 뒷편 연푸른색의 색상과 조화를 잘 이루어진 4각 통다완이다. 유약의 색상의 무게가 전체 기면의 하단 2/3 부분부터 표현되어 작품에 안정감을 주고 상단의 베이지색의 톤과 중간에 가벼운 푸른색은 하단의 진한 군청색이 너무 무겁지 않게 조화를 잘 이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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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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