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 이홍기 선생 숲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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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이 다른 데에 있지 않다. 산에 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일상 행동거지와 말투를 스스로 관찰하는 것이 수행이다. ‘저스트 왓칭’(Just Watching)이다. 나의 행동거지 중에 하나가 차 마시는 행태이다. 나는 어떻게 차를 마시는가? 가만히 관찰해 보니까 4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첫째는 독차獨茶이다. 홀로 마시는 차이다. 홀로 마시는 상황은 오전에 집에 있을때이다. 오전에는 주로 독서를 하는 습관이 있다. 오전에 하는 독서는 역사, 경전經典이다. 경전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이 장점이다. 부스러기가 없다. 요점만 농축되어 있어서 엑기스를 섭취한 기분이 든다. 경전을 많이 보아야 이야기에 알맹이가 생긴다. 역사책은 현실세계의 사판事判 판례집이다. 현실세계에서 판단을 내리는 데에는 역사가 참고 자료이다. 옛날 어른들은 ‘유일독사’柔日讀史, ‘강일독경’剛日讀經이라 했다. 마음이 헤이해진 날에는 역사책을 보고, 마음이 긴장되고 쫒기는 심정이 될 때는 경전을 보라는 말이다. 오전에 책을 보고 잠깐 쉴 때는 혼자서 차를 마신다. 읽은 내용을 혼자서 씹어보고 반추해 보는 시간이다. 이때 차를 조용히 마신다.

독차獨茶이다. ‘독차’를 할 때는 반 발효차인 대홍포大紅袍를 마신다. 중국 무이산武夷山의 암기巖氣를 머금고 내품는 대홍포의 향은 유구한 역사의 풍파를 녹여 놓은 향기이다. 나는 대홍포의 향이 웬지 익숙하다. 동양 3천년 유.불.선의 경구들이 녹아 있는 향기라고 생각한다. 전생에 많이 먹어봐서 그런 것인가? 독차가 있으면 ‘포차’飽茶도 있다. 포차는 음식을 과식해서 포만감을 느낄 때 먹는 차이다. 어느 때 과식을 하는가 하고 생각해보니 초밥을 먹을 때이다. 필자는 서로 마주 보며 앉는 식탁보다는 주방장을 마주 보면서 한 일자로 앉는 카운터에서 먹는 스시(초밥)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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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 보통 14-5개가 정량이지만 방심해서 먹다보면 25-6개를 먹는다. 먹을 때는 좋았지만 먹고 나서는 포만감으로 부대낀다. ‘왜 내가 이렇게 미련한 짓을 했는가?’ 발등을 찍는다. 이때 먹는 차는 포차인데, 주로 말차抹茶를 먹는다. 후쿠시마 방사능 사고 이전에는 일본산 말차를 주로 먹었지만, 방사능 사고 이후로는 국산 말차로 바꿨다. 말차는 색깔이 좋다. 녹색 아닌가! 사람에게 가장 편안한 느낌을 주는 색깔이 녹색과 연두색이다. 이것은 목木의 색깔이고 옥玉의 색깔이고, 간肝의 색깔이다. 말차를 마실 때는 흑유黑釉를 바른 천목天目 다완을 쓴다. 검정색이 들어간 천목다완과 녹색의 말차는 화려한 대비를 이룬다. 녹색식물의 정점이 ‘말차’ 같다. 말차를 먹을 때는 녹색의 정점을 먹는 기분이 든다.

주차酒茶도 있다. 술을 먹고 난 후에 술을 깨기 위해 먹는 차가 ‘주차’이다. 이 때는 녹차를 차호茶壺에 뜨거운 물을 붓고 우려서 먹는다. 술의 천적은 ‘차’라는 말이 맞다. 차를 많이 마셔서 정신이 너무 말똥말똥 할 때는 술을 먹는다. 위스키나 꼬냑을 먹는다. 독주가 좋다. 요즘은 중국에서 나오는 백주白酒도 좋다. 중국술 중에는 수정방이 향기가 좋다. 국내 민속주는 논산 가야곡에서 나온 왕주王酒를 먹는다. 구기자와 들국화가 들어간 왕주는 부드러우면서도 은근히 취기가 오르는 술이다. 반대로 술을 먹고 난 후에는 녹차를 많이 마시면 숙취에서 빨리 벗어난다. 이것이 ‘주차’이다.

주차 다음에는 ‘열차’悅茶가 있다. 기쁠 ‘열’悅자이다. 기쁘게 마시는 차이다. 차 친구들이 멀리서 나를 찾아 와서 서로 기분좋게 담소하며 마시는 차가 ‘열차’이다. 공자님이 ‘유붕이 자원방래 불역낙호’라고 했듯이, 멀리서 친구가 빈손으로 오는 것보다는 본인들이 자신 있게 마시던 차를 가지고 와 친구에게 헌납하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들이 가지고 온 차를 교대로 차호에 털어넣고 우리는 과정도 또한 기쁨이다. 이때는 대개 보이차를 마신다. 보이차는 넓고 무궁하다. 가짜도 많고 진짜도 많다. 가짜가 많아야 진짜를 선별해서 먹는 재미가 생기는 법이다. 가짜가 많아야 진짜 차를 아는 차인의 실력이 발휘되는 것 아닌가! 요즘은 호급號級, 인급印級이 귀해져서 80년대 나온 철병鐵餠만 먹어도 기쁘다. 80년대만 해도 어디인가! 30년 세월 아닌가. 보이차의 대가인 남한강의 경원스님이 ‘차와 문화’ 원고 쓰면 원고료로 보이차 좋은 것 준다고 했는데 아직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불가는 공空을 숭배하기 때문에 공수표를 날린단 말인가! 열차悅茶여! 열차여! 열차는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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