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속에 개혁이 핀다

글 이능화 기자 그림 일지 이홍기 이능화 기자l승인2017.11.10l수정2017.11.10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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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지 이홍기의 '숲. 삶은 숲이요, 숲은 삶이다. 그 속에 조화와 공존 평화가 있음을 담고 있다.

정치적인 삶을 마감하고 향리로 낙향한 조선시대 차인인 ‘권근’은 겨울눈이 오던 어느날 차시 한편을 읊는다.

 

신도에 집을 빌어 집 걱정 잊고

눈을 바라보며 시 읊고 차 마시네.

병중에 한가로이 누워 있으니

적적한 마을 문에 해가 기우네

 

정치는 늘 개혁이라는 화두를 먹고 살아간다. 과거를 지나 현재도 진행 중 이다. 살아 있는 생물, 개혁이라는 명제는 시대를 뛰어넘는다. 개혁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분열을 가져오고 개혁의 수준과 함께 선택을 강요한다. 조선 성리학의 정착자, 권근. 고려 말 신진 유학자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색. 스승 이색의 영향을 받은 권근은 역성혁명에 대한 저항의 길을 걸었다.

특히 온건 개혁을 주장했던 절친한 친구인 이숭인이 이성계 세력으로부터 탄핵을 받자 상소를 올려 그를 옹호하였다. 상소는 표적이 되고 유배와 함께 은거 생활의 날들이었다. 은거는 새로운 나라 조선의 건국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선택, 새로운 왕조의 출사였다. 사병제를 폐지하여 왕권 안정을 가져오고, 명나라 사행을 통해 위기에 봉착했던 조명朝明 관계를 정상화시켰다. 국가의 학술 정책을 총괄하면서 교육과 인재 선발의 각종 제도를 마련했으며, 또 성리학과 경학經學에 대한 여러 저술들을 남김으로써 조선 초기 성리학이 제도적으로 정착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던 것이다.

더불어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정몽주와 학문을 함께했던 친구들의 명예회복도 추진하였다. 오늘날 권근은 정몽주와 많이 비교되고 있다. 새 왕조 건설에 반대하면서 고려를 지키려 하다가 목숨을 잃은 정몽주는 ‘절의節義의 상징’으로 추앙받고 조선 성리학자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선택은 달랐지만 조선에 출사한 권근은 조선 성리학의 정착자로 조선이라는 왕조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위의 시 설중음성은 양촌선생문집 제10권에 자리한다. 본래 설중음성은 제목은 같지만 오언율시五言律詩 한 수와 칠언절구七言絶句 두 수를 지어 각기 내용이 다른 3개의 시로 지어졌다. 특히 첨부의 글이 눈에 띠고 있다. “학사學士 이낙보 내李樂甫來의 좌하에 올리니, 이 시를 우정雨亭 조박趙璞에게 전송傳誦하여 함께 교정해 주기를 바란다.” 위의 시는 칠언절구의 시로 병중인 화자의 한가로운 모습이 그려진다. 눈을 바라보며 마시는 한 잔의 차. 가슴깊이 우러나오는 시상詩想들. 해 기우는 하루를 보며 삶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소갈병을 가졌던 양촌 권근은 차를 즐겨 마셨던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치권력의 싸움 속에서 자신을 지켜주었던 것이 차가 아닌가 싶다. 격정의 시간들은 아수라의 세계요. 피 말리는 육체와 정신은 늘 갈등과 신념 속에서 싸워야 했던 권근이다. 학문과 이념, 개혁과 혁명. 갈등 속에 피는 대화와 협상은 늘 한 잔의 차 속에서 시작되었다. 차 향기는 자신과 상대방을 아우르고 꽃이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차 향기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차 꽃이 지긋이 웃음 짓는 계절이다. 음미의 계절 차가 있다.

 


이능화 기자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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