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천재지변이 있으면 국왕은 음식을 줄였다. 열세 살이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조선 9대 왕 성종은 평소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나라에 가뭄이 들자 낮 수라를 ‘수반’으로만 먹었다고 한다. 광해군도 울화병으로 수반을 찾았다. 마음에 병이 생겨 답답하고 목이 막힐 때 찾았던 수반은 어떤 투항의 뜻이 담겨 있었을까? 한편 며칠째 식사를 챙기지 못했던 조선 중기의 사신단은 조기 몇 마리를 사서 수반을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어릴 적 짭짤한 조기살 한 점을 물에 만 밥 위에 올려 먹었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몸이 아플 때, 혹은 마음이 아파서 목으로 물 한 모금 삼키기 힘들 때 물에 말아 먹었던 밥은 예전부터 임금님의 밥상에도 올랐던 위로를 주는 소울 푸드였다.

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이 우리의 별미음식을 소개한 『도문대작』, 아시아 최초로 여성이 쓴 조리서인 안동 장 씨의 『음식디미방』부터 신윤복의 그림 「주사거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찾아낸 우리 옛 음식의 기록은 반가운 모습을 하고 있다. 순조는 깊은 밤 궁궐로 냉면을 테이크아웃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밤중에 야식에 탐닉하는 지금 우리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이렇듯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 그중 역사 속 순간을 함께한 우리만의 먹거리인 한식을 제대로 알고 먹는 것은 지대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한식전문점에 가서 큰 상을 가득 채운 갖가지 반찬과 요리상을 받았다. 거기에 화려한 신선로까지 있으니 수랏상이 부럽지 않다고들 한다. 흔히 ‘궁중신선로’라고 한다. 그런데 신선로는 궁중 요리의 대명사도 아니었고 원래는 차와 술을 데우는 도구였다.

김홍도의 「설후야연」에는 신선로처럼 중간이 움푹하게 파인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는 묘사도 있다.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궁중요리는 대한제국 시기, 기생집에 나오는 가짓수 많은 안주가 둔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왕이 12첩 화려한 수랏상을 받았던 것도 아니다. 왕은 자연재해, 제사, 행사 등의 이유로 고기를 마음대로 먹지도 못했다. 지금 우리가 아는 한식의 모습은 잘못 덧칠된 이야기가 많다. 예를 들면 왕의 조리사 이야기인 드라마‘대장금’도 허구다. 진짜 맛집 말고 흉내 내는 곳을 갔다가는 낭패다. 꾸민 이야기 말고, 우리의 옛 뿌리인 그들은 진짜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우리 한식에 대한 먼지 쌓인 역사적 기록을 추척해서, 기자의 집요함과 꼼꼼함으로 한 권으로 엮었다. 황광해 맛칼럼니스트가 역사 속에서 찾아내서 정리한 우리 한식 이야기 ‘식사食史’다.

하빌리스. 값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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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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