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는 식품 못지않게 생존에 필요하다. 공기보다 긴급하지 않고 식품보다 비용을 적게 지불하지만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크다. 차茶는 당나라 후반부터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의 대표적 음료의 하나였던 인삼을 제치고 남방의 음료로 근대까지 가장 중요한 음료의 지위를 확보하였다. 차는 오랜 기간 세계사를 바꾼 중요한 음료였지만 현재 커피에 밀리고 있다.

차는 동아시아 서남부에서 개발되어 확산되었고, 남전불교의 전파와 깊은 관련이 있었으나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불교사에서 북전불교에 밀려 이를 간과하였다. 우리나라의 차는 남전불교의 전래와 함께 양자강유역에서 한반도 남서지방으로 옮겨왔다. 차는 신라에서 8세기 후반에야 재배되기 시작하였으며,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 상록수로서 한반도는 남해안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에서 겨울의 추위에 살아남지 못하였다.

차는 불교 제의 등에서 제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불교식 제의가 정비되면서 상례와 국가의 제전에서 차의 수요가 확대되었고 고급차의 생산과 이용이 증가하였다. 뇌원차腦原茶는 고려의 고유한 이름을 가진 고급차이고 이에 대한 저자의 연구는 가장 돋보인다. 또한 인삼과 차의 음료에서 변화는 동아시아의 고대와 중세의 음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이었다.

고려의 차는 사원이나 특수행정단위인 소所에 위탁하여 생산되면서 절정기에 올랐다. 고려시대에서 성리학을 이념으로 삼은 조선으로 왕조가 변하면서 차의 운명도 바뀌었다. 차를 사용하던 제의가 줄고 어물과 육류와 술이 중요한 제물로 바뀌면서 차의 생산과 유통이 위축되었다. 고흥의 두원면과 장흥의 보림사, 순전의 송광사를 중심으로 차와 선종사원과의 관계를 차의 정착과 발전의 새로운 연구 과제로 제시하였다.

불교계에서는 동아시아의 선사상은 남전불교가 아닌 대승불교에서 일어난 사상의 혁명이고 동아시아의 산물이라고 정의하고 사상사 시대구분의 분기점을 설정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차와 선의 밀접한 관련에 동감하면서도, 선의 기원을 북전불교에서 찾으려는 앞선 통설을 부정하고 철저하고도 남전불교에 연결시킨 이론의 혁명을 제안하였다. 남전불교는 동아시아에서 수행의 방법인 참선에서 차와 만나 확산되었다고 제시하였다.

이 책에서 선종은 상좌부불교의 수행법을 강화한 남전불교라는 관점에서 출발하였다. 동아시아의 불교는 중세에 다양한 종파가 경쟁하였다. 지관을 중요시하는 천태종과 참선을 수행으로 강조하는 선종은 차가 재배되는 따뜻한 동아시아 남방에서, 그리고 화엄종을 비롯한 교학을 중요시한 교종은 민족이동이 심하고 사막화로 자연환경이 거칠었던 북방에서 성행하였다. 종파불교에서 천태종과 선종에는 남전불교의 요소가 강하게 접목되었으나, 불교계에서는 이를 부정하고 북전불교만을 강조함으로써 점차 남전불교의 요소는 존재하면서도 실제로 이를 피하고 대승불교를 표방하기에 이르렀다.

동아시아에서는 본래 커피는 없었고 술과 차가 경쟁한 시기가 오랜 기간 계속되었다. 술은 인간이 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만들고 종류가 다양하므로 실제의 비용과 소비량이 많지만 차는 생산지가 한정되고 장기간 노력과 기술이 집약되는 특징이 강하다. 우리나라 차의 기원과 생산은 지리산자락에 있던 사찰인 장흥 보림사나 하동 쌍계사 등을 빼놓고 말하기 어렵다. 차는 사원과 상생하면서 재배되었고 가공과 유통과 소비가 발전하고 확대되었다. 한국불교의 전성기는 고려였고 사원은 차의 생산과 가공에도 관여하였지만 생산되지 않은 개경의 큰 사원에서도 소비는 활발하였다. 그리고 성리학의 불교에 대한 탄압과 쇠퇴기인 조선시대 이후로 차 문화 역시 쇠퇴하였다.

한국의 성리학은 동아시아의 제물의 기원을 지키고 영양을 다양하게 섭취하는 향상된 식생활과 관련이 있었다. 동아시아의 복고적 제의로 돌아가 남아시아에서 기원한 불교와 거리가 더욱 커지는 차별화가 강화된 경향이 나타났다. 한편 동아시아의 개방성이 제한되고 먼 거리의 문화와 융합하는 개방된 시야와 포용성을 상실하였다. 음료와 의약으로 출발한 인삼과 차가 주도적인 위상을 바뀌는 과정을 이 책에서 선명하게 밝혔다. 전통음료에서 수입한 차와 재배한 차의 전환과정에 대하여 철저하게 구별하고 당의 차와 신라에서 생산한 차가 균형을 이루는 시기를 찾으려고 시도하였다. 무엇보다 뇌원차의 생산지와 지공화상과 회암사와 기황후와의 관계를 새롭고도 깊이 있게 서술하였다.

도서출판 혜안. 값 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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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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