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완, 청자 향로 우리 청자의 모든 것

이대박물관 9월 18일 -12월 30일까지 ‘청자’전 윤미연 기자l승인2017.09.09l수정2017.09.0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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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완에서부터 청자향로까지 우리청자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전이 열린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관장 장남원)은 오는 9월 18일부터 12월 30일까지 《청자》 소장품 특별전을 준비했다. 《청자》전에서는 고려시대 무문청자를 비롯하여 음각, 양각, 철화, 상감, 상형, 투각 등 고려를 대표하는 여러 장식기법과 기종을 망라한 소장품 200여점이 소개된다. 또한 고려의 전통을 재현한 근대기 청자와 한국 도예교육의 산실이었던 이화여대 도예연구소 제작품의 일부도 선보인다.

1실 음다飮茶와 음주飮酒

▲ <청자 완 靑瓷碗>고려 11세기. 높이 5.4cm| 선종禪宗불교와 다선茶禪의 유행으로 다완茶碗에 대한 수요가 커졌고 이것은 청자 제작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완碗’이라는 단어는 당대唐代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에 등장하며 고려의 다시茶詩에도 죽이나 차를 마시는 용도로 이 용어를 쓰고 있어 용도를 추정해볼 수 있다. 고려 중기가 되면서 완의 생산 비율이 크게 줄어드는데 상대적으로 발鉢의 생산이 늘어난다. 이는 차 종류 변화나 차를 마시는 방법의 변화와도 연관되는 것으로 보여, 발의 용도가 차 문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차 문화의 유행과 술 같은 음료의 발달은 청자 발달을 견인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선종禪宗과 다선茶禪의 유행은 중국산 다완茶碗 수입에 이어 국내의 청자 제작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사찰과 왕실에서는 차를 수양과 각종 행사의 필수 품목으로 취급하여 국가행사에서 진다의례進茶儀禮를 행했다. 고려 왕실에는 조정의 다례를 거행하는 ‘다방茶房’이라는 기구가 있었고, 수도 개경에는 차를 마시는 ‘다점茶店’과 차를 바치기 위한 ‘다소茶所’도 존재했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양온서良醞署’라는 관청을 두어 왕실에서 필요한 술을 관리했으며, 개경에는 6개의 주점도 운영하며 술을 판매하고 화폐도 사용하도록 했다. 고려사회에서 술은 문사들의 회합, 왕실 연회와 제의祭儀 등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품목이었고, 이 때 잔과 병, 주자 등이 청자로 제작되어 술을 마시기에 적합한 도구로서 활용되었다.

2실 의례儀禮와 완상玩賞

▲ <청자양각 용문 향로靑瓷陽刻龍文香爐). 고려 12~13세기. 높이 12cm. |향을 피울 때 사용하는 향로는 불교가 전래한 삼국시대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북송과 거란에서 새로운 향로를 수용하기도 하였고, 왕실과 불교 의례에 사용하는 향로의 형태가 명확히 구별되는 등 형태와 재질면에서 다양한 특징을 보인다. 고려의 왕실에서는 예제禮制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왕권강화를 위해 중국 고대 청동기의 형태를 모방한 청자 향로를 제작하기도 하였고, 훈향薰香이나 독서분향讀書焚香 등의 일상적인 용도로 다양한 동물장식향로를 제작하였다. 이 향로에는 동체 전면에 서주西周시대 청동기에서 유행한 고룡문顧龍文을 문양틀을 이용한 압출양각 기법으로 시문하였다. 둥근 동체에 2개의 반원형의 귀와 3개의 수면형獸面形 다리가 붙어 있는데 반원형의 귀는 수리되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다.

고려는 10세기경부터 중국에 이어 청자를 만들게 된 이래, 국가 행사나 각종의례 뿐 아니라 일상문화에서도 애호하고 완상하였다. 고동기를 완상하는 송의 풍조가 유입되면서 고려에서는 방고기물들이 제작되었는데, 향로가 중심을 이루었다. 주로 사각형의 방정方鼎이나 원형의 삼족정三足鼎 형태가 금속과 자기로 번안되었다. 또한 귀족은 물론 민간에서도 모두 향을 즐겼다. 다양한 향구香具가 만들어졌는데, 특히 향로는 상형의 동물을 본뜬 경우가 많았다. 이 밖에도 고려의 왕실과 귀족층, 문인들 사이에서는 화훼 애호 풍조가 유행하여 청자화분이나 수반 등도 제작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기형과 용도를 지닌 청자를 통해 고려의 다채로운 사회상과 예술적 취향을 살펴볼 수 있다.

3실 공예工藝의 상호관계

▲ <청자음각상감 연화문 과형병 靑瓷陰刻象嵌蓮花文瓜形甁>.고려 12~13세기. 높이 21.5cm|화형의 구연부와 긴 경부, 참외모양의 동체, 주름문이 양각된 높은 굽으로 이루어진 과형병이다. 동체는 참외 모양의 형태로 각 면에 연화문과 국화문을 상감과 음각으로 교차하여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과형병은 중국으로부터 11세기 후반~12세기 전반 경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특히 고려에서 과형병이 제작되던 초기에는 경덕진요景德鎭窯 청백자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청자 과형병은 강진 사당리·용운리, 부안 유천리 등지에서 제작된 것이 확인되며, 의례에서 공양용으로 사용되거나 각종 연회를 장식하는 화병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공예품인 도자기·동기·금은기·목기·칠기 등은 서로 분리되어 생산·소비된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 혹은 경쟁관계 속에서 모방하고 대체하면서 공존하였다. 특히 청자는 청동기, 도기와 기종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어 서로 영향관계 속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종교 의식이나 일상에서 사용된 정병과 분묘 부장용에 활용된 반구병 등은 청자·동기·도기로 동시에 제작되었고, 편병은 도기의 영향으로 11세기 이후 청자로 제작되었다. 청자로부터 영향을 받은 도기매병은 거의 동일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마도 2호선에서 출수된 청자와 도기매병이 그 예로 확인된다. 일부 금속기로도 만들어졌던 표형병은 청자와 도기로 많이 제작되었는데 청자에서는 상감기법으로 기면을 가득 채운 양질청자로 나타나 도기와는 질적 차이가 있어 재질에 따른 위계가 달랐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상감기법은 금속공예 및 나전과 같은 고급 공예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수준 높은 기법으로 양질의 고급청자에 주로 사용되었다.

4실-5실 부안 유천리 가마터 수습 고려 청자 · 백자 도편

▲ <청자음각 연화문 화분 靑瓷陰刻蓮花文花盆>. 고려 12세기.높이 24.4cm|이 유물은 부안 유천리에서 수습된 원통형 화분을 복원한 것이다. 평저의 바닥은 시유하지 않았으며, 일곱 개의 둥근 구멍이 있다. 동체양면에 연화절지를 굵은 선과 가는 선으로 입체감 있게 음각하였다.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에 자리한 유천리 가마터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고급 자기 생산지 중 하나이다. 일제 강점기에 이곳이 고려 왕실의 자기를 제작했던 곳으로 알려져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가마가 도굴되어 토층이 훼손되었다. 이중 최상급 청자 생산지로 평가되는 12호 가마의 도굴 · 반출되었던 도편의 일부가 해방 후 본 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수장되었다. 본 박물관 소장 유천리 도편 자료는 1983년에 <부안 유천리요 고려도자>전을 통해 일부 공개되었으며, 기존 연구 성과와 함께 추가로 재정리하고 수리와 원형 복원을 거쳐 그 상세 내용을 공개하게 되었다. 소장도편은 청자와 백자, 소량의 도기가 포함되어 있다. 청자는 모두 30여종으로 매병, 도판, 뚜껑, 접시, 병, 발, 잔, 기대, 합, 잔탁, 반, 완, 주자, 호, 돈, 화분, 장고, 다연, 승반, 향로, 베개, 타호, 유병, 주발, 기와, 요도구 등 기타 특수기종이 확인된다. 백자는 접시, 합, 병, 뚜껑, 발, 장고, 잔탁, 완으로 모두 10종이다. 이중 접시와 뚜껑이 가장 많은 유형을 나타내며, 다양한 형태와 수량을 자랑하는 그릇받침(器臺)도 주목된다. 이와 같은 다종다양한 유천리 도편자료는 강진 용운리(10호-Ⅱ층 나·다 유형)와 유사한 기형과 제작기법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 전성기인 12-13세기에 전남 강진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던 부안청자의 다양한 장식기법과 고도의 제작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6실 근대기의 청자 近代靑瓷

▲ <청자상감 연화문 호 靑瓷象嵌蓮花文壺>.1910년대 후반. 높이 25.2cm. 삼화고려소 제작

조선말 일본의 고려자기 애호 취향이 확산되면서 근대기에 이르면 고려청자를 재현, 상품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 경성미술구락부(京城美術俱樂部)라는 미술품 경매회사가 설립되면서 청자는 중요한 거래의 품목이 되었다. 19세기경부터 골동거래가 시작된 이래 1910~1920년대에는 청자수집에 몰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국토에 대한 도굴이 심화되면서 골동품 거래는 호황을 맞게 되었다. 이때 청자에 대한 관심은 청자를 재현하고 기념품으로 출시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진남포에 개설되었던 삼화고려소(三和高麗燒) 등지에서는 재현품 고려자기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판매하게 되었다. 한편 황인춘(黃仁春, 1894-1950)은 개성에 고려청자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일본인이 독점하던 청자재현 작업에 뛰어든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화여자대학교는 1959년 미술대학 내에 도예연구소를 설치하고 황인춘의 아들 황종구(黃種九, 1919-2003)를 초빙하여 한국전통 청자를 계승하였다.

 

 


윤미연 기자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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