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동아시아의 원림은 평온, 신선, 귀향, 관조 같은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전통적 가치의 답습에서 벗어나 소통, 축제, 가족, 판타지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추구해야 하는 도전 앞에 직면해 있다. 추구했던 목표가 달라지면, 당연히 인간의 창조적 사고 또한 변하게 돼 있다. 전통적인 형식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조형의 세계를 찾는 일은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 원림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조형 문화에서 해결해야 할 공통적인 과제다.

소박한 맛과 은근한 멋 드러난 -한국 소쇄원

한국 원정에는 작은 경물이 유난히 많다. 특히 고전 원정에는 대부분 소박하고 질박하고 투박한 느낌을 주는 경물이 장식된다. 돌확, 분재, 작은 폭포, 장식용 취병 등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인해 마당에 소박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가 흐른다. 한국 원정은 ‘있는 그대로 안기는’ 태도로 자연을 설정한다. 한마디로 한국의 고전 원정에서는 ‘질박함’이 공간을 지배한다. 그리하여 단아함, 소박함, 무심함, 무관심, 미완성, 부드러움 속의 단단함, 꽉 짜이지 않은 느슨함, 아담함, 절제와 균형 등 여러 미학자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적 ‘소박한 맛과 은근한 멋’이 그대로 나타난다. 소쇄원은 처사 양산보가 귀거래를 실천한 곳이고, 그 이상을 도원경桃源境에 두고 이를 공간에 실현하려고 한 원정이다. 후손에게 소쇄원을 그대로 지키라는 그의 뜻과 김인후의 〈소쇄원 48영瀟灑園四十八詠〉 그리고 200년 후인 1775년에 제작된 목판본 〈소쇄원도瀟灑園圖〉가 있어 오늘날까지 그 형상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소쇄원은 한국에서 자랑할 만한 매우 귀중한 고전 원정이다. 소쇄원에는 시적 풍경과 회화적 풍경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시와 경물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한여름의 힘찬 폭포와 끝없이 흐르는 계류, 오동나무에서 홀연히 날아가는 산새, 가슴속까지 시원한 대나무 바람 소리, 적막한 분위기를 깨고 돌아가는 물레방아의 물 튀는 소리, 잔물결을 만드는 연못의 물고기 그리고 흐르는 물에 떨어지는 꽃잎 등이 시적 풍경을 만들어내는 동적인 요소다. 소쇄원은 시각적으로 다양한 층위를 쌓아 만든 아름다운 원정이다.

괴기하고 환상적이며 몽환적인 풍경, 중국 원림園林 - 쑤저우 주오정위안

중국의 원림미는 한마디로 ‘인간의 의지대로 자연을 끌어들이는’ 형식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원림을 꾸민다. 중국 원림을 둘러보고 나면 마치 하나의 장편소설을 읽고 난 듯한 인상을 받는다. 또한 중국 원림에서는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자주 나타난다. 괴기하고 환상적이며 몽환적인 풍경은 곧바로 지적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적어도 독창성이라는 관점에서는 매우 훌륭한 원림미를 보여준다. 중국 원림에서 우리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환상과 이상, 사실과 관념의 폭이 얼마나 넓은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중국의 고전 원림미에는 매우 독자성 있는 원림의 환상적 가치가 많이 담겨 있다. 중국 양쯔강 남쪽 쑤저우에 있는 주오정위안은 중국 4대 명원의 하나인데, 크기도 상당하며, 역사가 500년이 넘었다. 지금도 원내에는 수령 100년이 훨씬 넘는 오래된 수목이 많다. 1509년 왕헌신이 세운 이후 주오정위안은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고, 그에 따라 원림은 서원西園, 동원東園, 중원中園 세 곳으로 나누어졌다가, 점차 확장됐다. 그 와중에도 주오정위안은 건물만 늘었을 뿐 큰 뼈대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주오정위안은 규모가 크다고 하나 사가의 원림이기 때문에 황가원림만큼 크지는 않다. 크지 않은 공간에 광활한 자연을 끌어들여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려면 교묘한 조원 기법이 필요하다. 자연산수 위주의 풍경을 만들기보다는 건물과 경물로 어우러지는 시적 풍경을 연출하는 것이 훨씬 용이했을 것이다. 주오정위안은 시적 풍경이 지배적인 원림이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움, 일본 정원庭園 - 교토 료안지

일본 정원은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면이 있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바위의 배치, 식물을 경물과 연관시키는 이미지에서 좀 더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 정원에서는 시간이 정지돼 있다. 한순간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지키려 한다. 정원에서 일본인은 언제 급변할지 모르는 천재지변으로부터 마음의 평온과 안정을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일본 정원에서는 항상 정적이 흐른다. 조용함보다는 고요함이라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또한 일본 정원은 자연을 인간과 대조해서 바라보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늘 같아야 하는 장면이기에 당연히 회화적인 구성을 강조한다. 한 폭의 그림을 벽에 걸어놓는 것과 흡사하다. 료안지의 석정石庭은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대표적인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이다. 물결치는 모래밭과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이는 돌무더기 열다섯 개가 군도를 형성하듯 놓여 있다. 1450년경에 조성된 료안지는 선원禪院으로, 절은 후지와라가 세웠고 그 후 정원은 후지와라의 분파인 호소카와의 가쓰모토가 건립했다. 절의 남쪽에는 광대한 경용지鏡容池가 있고, 주위는 유람식 정원으로 꾸며졌다. 경내 북쪽에는 본당, 불전, 다실 장륙암 등이 있다. 석정은 본당 남쪽의 흙벽에 둘러싸여 있다. 료안지 석정이 주목받는 이유는 형태의 독창성과 탁월한 상징성에 있다. 석정에서 파도치는 문양이 있는 흰 모래밭과 열다섯 개의 돌만 가지고도 ‘운해雲海에 봉우리가 걸린 산으로도, 해원海原에 떠 있는 섬으로도’ 보인다. 이처럼 일본 정원에서는 회화적 풍경이 우선적으로 마당에 연출되는데, 일본 자연의 대표성을 공유하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서해문집. 값 16,000원

SNS 기사보내기
이능화 기자
저작권자 © 뉴스 차와문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