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 원고를 쓰고 난 이후에도 여기저기서 의뢰해온 많은 차들을 품명했습니다. 최근에 의뢰받은 차들 중, 가뭄에 갈라진 저수지 바닥만큼이나 필자의 가슴을 후벼파는 놈이 있어 소개해 봅니다.

의뢰인이 국내 모처에서 구입했다는 보이차를 우린 탕색입니다. 오래된 생차(노생차)나 숙차의 탕색처럼 보이는 이놈은, 일반적인 차탕에 비해 현저히 무겁고 탁한 상태인데 탕색을 통해 쉽게 느낄 수 있겠지만 이 놈이 정상적인 차맛을 가지고 있을 리가 만무하죠. 대개의 보이차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고품격의 다양한 향과 특유의 단맛은 전혀 느낄 수 없고 마치 쇠죽 쑨 국물처럼 욕지기를 부르는 강한 쓴맛과 역겨움 일색입니다. 보이차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의뢰인은 ‘보이차는 모두 이런가 보다.’ 생각했다니 백년하청百年河淸에 늘어가는 백발이 장탄식에 나부낄 뿐입니다.

운남에서 만들어진 이후 중국 내 여러 지역을 비롯해서 전 세계 곳곳에서 보관, 유통 되고 있는 많은 유형의 보이차를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만나 선농단 북창北窓 아래에 앉아 품명을 하게 되지만 최악의 악마성을 가진 놈은 단연 번압차飜壓茶가 아닌가 합니다. 번압차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 김중경,「보이차에 꼴리다」,(도서출판 프라하, 2014), P270에 수록된 번압차에 대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보이차의 엽저는 출생에서부터 제작, 보관 등에 이르기까지 그 차에 관해 판단 가능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중요한 메모리칩입니다. 사진 상에 뿌옇게 보이는 것은 표면에 온통 범벅이 된 하연 곰팡이입니다. 곰팡이가 덕지덕지 필만큼 과습한 장소에 모차를 쌓아두고 강제로 부패시킨 거죠. 전형적인 번압차飜壓茶입니다. 위의 탕색과 엽저를 잘 기억해 두셨다가 절대 가까이 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보이차 논단」에 소개된 석곤목石昆牧 선생의 글에 "일찍이 '재제차再製茶’, ‘재압차再壓茶’라 불렀고, 필자(석곤목)가 2001년 말에 ‘번압차翻壓茶’라 이름을 붙였다. 일반적으로 쇄청모차晒青毛茶, 즉 생차生茶를 고온다습한 창고에 두었다가 다시 증기를 쐬어 긴압한 차이다. 이렇게 긴압한 신차는 잡미가 많다. 90년대 중기에 한 차례, 적지 않은 운남 전청滇靑과 북월차北越茶(베트남차) 원료에 분무식 방법으로 습도를 높여 빠르게 진화陳化하게 하였으며, 1999~2001년 사이에 병차, 전차, 타차 등을 긴압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위 내용으로 보아 '번압차'는 긴압하기 전에 입창入廠을 거쳐 강제로 속성 변화 시킨 차청을 가지고 긴압을 한 차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그러나 번압차는 모차(생차)를 고의로 입창한 후에 긴압하여 노차로 속여 판매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만든 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창을 한 모차를 사용해서 새로 긴압한 보이차, 즉 번압차는 탕색은 노차처럼 보이지만, 차청은 윤기가 부족하고, 맛이 무겁고 탁하며, 활력, 차기, 회감, 생진작용 등이 부족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서 거풍을 잘 한 차들은 위의 의뢰인처럼 초보자 입장에서 생차 노차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맛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전혀 마실 수 없는 상태며 또한 절대 마셔서도 안 되는 흉측한 놈입니다. 그 흉측성을 아래에서 정리해 보겠사오니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고온고습의 밀폐된 공간에 넣어 급속 변화 시키는 과정에서 모차에 무수한 곰팡이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우려내 마실 경우 입안의 모든 부분과 목구멍까지 불편해지게 됩니다.

둘째, 보이생차는 오랜 시간에 걸쳐 찻잎 내부의 산화효소에 의해 진행되는 산화 변화와 더불어 미생물에 의해 서서히 진행되는 후발효에 의해 차품의 더딘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번압은 이와 달리 유해 곰팡이들에 의해 급속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조화롭고 균형 잡힌 맛을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셋째, 탕색은 급속도로 이루어진 부패에 의해 붉은 빛이 돌지만 표면에 서식한 무수한 곰팡이들에 의해 매우 혼탁한 상태입니다. 번압한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 경험에 의하면 5회 정도는 지나야 조금씩 맑은 물이 나오는데, 피해자들 가운데에는 초보자들이 많아 ‘아! 보이차는 원래 이런 건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합니다.

넷째, 엽저를 살펴보면 붉은색의 탕색과는 달리 별로 갈변이 안 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찻잎이나 줄기에 녹용의 표면처럼 곰팡이들이 무수히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번압차는 긴압 전의 모차를 고온고습의 밀폐된 공간에 넣어 급속 변화 시킨 후 이를 생엽과 섞어서 긴압하여 노차처럼 속이는 보이차의 패륜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굳이 패륜아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다. 이놈은 보이차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도리인 월진월향이라는 기다림의 미학에 어그러지는 행태의 전형이기 때문입니다. 비유컨대, 자식이 아비보다 더 나이가 많은 것처럼 세월을 거슬러 연륜을 조작하여 세상을 기만코자 하는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판치는 보이차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제 맘속에 굳건히 자리 잡아 이제는 보이차에 관한 한 하나의 패러다임처럼 제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금과옥조金科玉條가 있습니다.

"God sees the truth!"

”순금은 도금할 필요가 없다.”

위의 두 가지 문장이 보이차를 둘러싸고 있는 현상적 판단에 바탕한 가치명제라고 한다면 우공이산愚公移山은 왜곡된 현실을 바루어 올바른 가치를 세우고자 하는 적극적 실천의 필요성에 기반한 정책의 명제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차문화의 정착’을 위해 꼭 실천해야만 하는 절대적 가치인 것입니다.이 글을 마무리 하는 이 순간처럼 우공愚公이 이산移山을 위해 한 삽 한 삽 삽질을 할 때마다 즐겨 씨부리는 노동요가 있지요.

"장사는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성차사진품보이차 김중경

 

SNS 기사보내기
김중경
저작권자 © 뉴스 차와문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