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가면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 선생의 고택이 남아 있고, 그 고택의 현판 가운데 하나가 '독락당獨樂堂'이다. 현판 이름은 그냥 짓는게 아니다. 현판에는 집주인의 당시 상황이나 바램, 또는 본인의 지향하는 바가 내포되어 있기 마련이다. '홀로 즐겁게 노는 집'. 홀로 독獨에는 고독이 있다. 거기에 즐거울 낙樂이 겹쳐 있는 이 말은 따지고 보면 이율배반적인 단어가 아닐 수 없다. 홀로 있으면 외롭고 쓸쓸하기 마련인데, 어찌 즐거울 수 있단 말인가!

홀로 있다는 것은 두 가지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다. 타의他意에 의해 고독한 경우이다. 자기는 어울리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어울려 주지 않는 것이다. 돈이 궁색한 형편이 되어 그럴 수도 있고, 직장을 잃어서 그럴 수도 있고, 끈이 떨어지니까 사람들이 외면해서 그럴 수도 있고, 병이 들어서 병고에 시달리느라 그럴 수도 있다. 자기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지만 사람들이 자기를 안 만나주는 경우라 하겠다. 자의自意에 의해 고독한 경우도 있다. 세상과 자기의 뜻이 안 맞아서 스스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있는 노선도 있다. 아니면 뜻이 너무 높아 눈앞의 이해타산만 쫒아 다니는 속인천하俗人天下가 싫어서 홀로 있는 삶도 있다. 입만 열면 돈 이야기이고, 입만 열면 누구 비판이고, 입만 열면 권력에 줄대는 일이다. 외롭다고 세상에 나가서 만나봤자 오로지 돈과 권력에 온 정신이 팔려 있는 범부凡夫들과 어울리기에는 자신의 영혼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보면 세상살이 부적응자이기도 하다. 진화가 덜 되었다고나 할까. 진화가 덜 된 영혼이 진화가 많이 된 영혼을 질투하는 것이기도 하다.

회재 이언적은 어떤 각도에서 '독락당'이라는 현판을 걸었을까? 공부가 되었나, 안 되었나의 기준은 홀로 있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홀로 있을 수 있는 사람은 공부가 된 사람이다. 주역의 '택풍대과澤風大過' 괘에 보면 '독립불구獨立不懼하고 둔세무민遯世無悶'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홀로 서 있어도 두려움이 없고, 세상에 나가지 않고 숨어 있어도 근심이 없다'이다. 조선시대 4대 문장가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는 택당澤堂 이식李植(1584-1647)은 이 '택풍대과' 괘를 좋아해서 자신의 호를 택당澤堂으로 정했을 정도이다. 홀로 있어도 외롭거나 두려움이 없고, 세상에 나가 출세하려고 버둥거리지 않아야 한다는게 내면 수양의 기준이었으리라. 이런 맥락에서 놓고 보면 독락당은 타의에 의해서 고독한 상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 것이다. 세상에 나가 마음에도 없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시대이다.

지금만 그러겠는가. 과거에도 그랬다. 아첨하고, 빌 붙고, 줄 서고, 아양을 떨어야 하고, 돈 있는 사람 앞에서 고분고분 해야 하고, 항상 갑甲의 기분이 어떤 지를 헤아려야만 밥줄이 유지되는 세상이다. '독립불구'와 '돈(둔)세무민'이 안되는 경지이면 세상에 나가서 빌 붙어야 하고, 독락당이 되면 가난과 고독을 감수해야 한다. 독락당파獨樂堂派는 무엇으로 일상을 즐기는가? 바로 차茶이다. 혼자 조용히 마실 수 있는 차가 있다. 아침 햇살과 고요함 속에서 탕관에다 물을 끓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매일 만지는 차호를 감상하면서 한 모금 마셔보는 차. 차는 독락당에서 마셔야 제 맛이다. 차를 아는 자는 '독락당파'에 속하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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